카오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고 난 후,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를 읽다가 “물리학자들이 주류 경제학에 대해 가장 큰 목소리로 비판하는 것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이른바 데카르트적 환원주의의 관점에서 기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는 글을 보고 쓴 웃음을 짓게 되었다.

환원주의란 사전에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상(事象)이나 개념을 단일 레벨의 더 기본적인 요소로부터 설명하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 의미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 나오고 있는 두번째 방법인 분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검토하는 문제를 가능한 작은 부분으로 나눈다’ 이것이다. 이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세번째 방법, 종합과 함께 근대과학의 기초적인 방법론으로 자리잡는다. 이 분석과 종합은 사유의 속성을 가진 정신을 설명하기에는 무력한 반면, 연장의 속성을 지닌 자연을 해석하고 설명하기에는 몹시 유용한 도구다.

따라서 데카르트적인 환원주의란 근대 물리학의 도구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정재승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점유물로 오해했거나 호도하고 있다. 경제학이 비록 계량화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인문과학과 같이 인간 사회일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 현상은 결코 계량화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재현성 또한 없고 예측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점은 경제학자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데카르트적 환원주의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다고 가정하고…) 등의 전제조건으로 사태를 단순화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겠으나, 책에 쓰여 있는 가정을 믿는다면, 경제학 이전에 국어부터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재승의 일부 곡해에도 불구하고 ‘과학콘서트’는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정재승이 고전물리학에 입각하여 책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카오스 등의 복잡계 이론에 입각하여 과학콘서트를 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래 전(1993년)에 사서 읽다가 내팽개친 ‘카오스’란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이 책은 1989년인가 미국에서 출간된 책으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하여 유학을 갔던 친구녀석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에 잠시 돌아와 함께 북한산을 오르던 중 배낭에서 꺼내 폼 잡고 읽던 책이었다. 영어도 못하는 무식한 친구 놈들의 야코를 죽이겠다는 심산이었는지 영문으로 된 그 책을 다 읽고 이해했다는 듯, 책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미국의 인문주의적 축적은 대단하다. 고도로 복잡한 과학에 대하여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번역되자 마자 책을 구입하여 읽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물론, 우리말로 된 번역서마저 제대로 소화를 못하는 나의 지적 수준에 참담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재미도 없고 이해할 수도 책의 내용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관계로, 아주 쪼금 읽고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치부하며 내팽개치고 말았다.

그동안 카오스적인 사고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는지 지금 다시 읽어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며, 상당히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책 속에 들어있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일리아 프리고진의 말대로, 종래의 과학이 주로 연구해 온 코스모스가 카오스의 극히 미세한 일부분이라고 한다면, 피타고라스가 말한 코스모스를 이데아계라는 실체계로 치환하고, 현상계를 이데아계의 미메시스(모사)로 보는 것에서 시작한 ‘서구의 사유’ 120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화이트 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고 한다. 란 결국 부분을 깔짝댄 것에 불과하며, 데카르트 이후 과학은 ‘공기의 마찰이 없다고 가정하고…’ 식의 배제와 단순화의 논리는 카르테시안 좌표계에 그릴 수 있는 선형방정식을 구하겠다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결국 서구의 정신과 과학을 지탱해왔던 이데아와 코기토는 카오스라는 대국면을 설명할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것이다.

카오스의 국면에 들어서면, 서구의 과학이 자랑해왔던 수학적 엄밀성과 재현성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며, 각종 시뮬레이션 기법과 방대한 데이타를 해석해 낼 초고속 컴퓨터로도 일기예보에 있어서 장기예보는 예측불가할 뿐 아니라, 오늘 내일의 단기예보조차도 상당 부분을 경험과 직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카오스이론으로 대변되는 복잡계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향후 얼마만큼 세계를 설명하고, 앞으로 얼마동안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서구의 사유가 현상계의 저쪽 이데아계에서 설명 논리를 빌려왔고 수학 또한 숫자라는 추상으로 선형함수를 구해왔다면, 이 복잡계는 이데아계의 정태적 모델로 현상계을 설명하기 보다, 현상계의 혼돈 그 자체로 세계를 해석하며, 예측불가능한 비선형의 세계를, 추상보다 구체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새롭고 의미심장하다.

또한 서구 사유의 중심에 있는 이데아란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운동이나 다양성을 부정하고, 존재의 유일하고 영원불변함을 주장한 엘레아 학파의 존재(Being)에 기반하고 있는데 반하여, 카오스 이론은 상태보다 과정, 즉 존재보다 변화의 과학이라고 한다. 이로써 서구에서 배제되었던 헤라클레이토스적 변화(Becoming)의 세계를 추구하며, 이러한 생성과 변화의 과학은 엄밀하게 동양적이란 특징을 지닌다.

동양에서는 신이나 존재, 자연계의 배후(Meta-physics)를 상정하지 않고 현상세계의 천차만별과 생생불식이야말로 바로 진리라고 보고 있다(道法自然). 특히 자연이란 어떤 규칙이나 질서를 찾아내고 지배해야 할 대상이 아닌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상태이다. 동양의 성경, 주역은 변화의 책이다. 초기입력의 미세한 차이가 출력에서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에서 보듯, 침으로 경혈에 미소한 자극을 가한 것(양쯔강의 나비날갯짓)이 신체의 특정 환부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카리브해의 허리케인 발생)하고 질병을 치유한다는 한의학의 설명모델로도 유효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직 얼마 읽지 않았지만 이런 책은 한번 독서클럽 같은 것을 만들어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해주고 하면서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참고> 카오스(현대과학의대혁명)

This Post Has 8 Comments

  1. 위소보루

    전 예전 고등학교 1학년때,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다가 집어 던진 후로는 이런 쪽으로의 관심을 아예 끊었었는데 한번 기회가 되면 봐야겠네요. 여기서 지내다 보니 이제껏 모자랐던 인문소양에 대해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이 없는 곳에 있으니 책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ㅋ

    1. 旅인

      저는 일어를 못해서 그러는데, 일본놈들이 책은 저렴하고도 알차게 만드는 것 같던데…

      그냥 일문판으로 도전해보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와나미에서 발간한 철학소사전을 사 보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전을 만드는 놈들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고요.

  2. 클리티에*

    책 소개 고맙습니다. 장하준님 덕분에 경제학적인 시각을 조금이나마 기를 수 있었는데, 곁들여진 여인님의 설명을 들으니 이 책도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

    1. 旅인

      장하준씨의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쓰다가 내버려두었고, 이 카오스에 대해서는 사실 제 나름의 생각이 주를 이루다보니 만약 제 글을 보시고 이 책을 보신다면 전혀 다른 내용이라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3. firesuite

    사진을 기대하고 들어오고 나서는 깜짝 놀랬어요. ^-^
    저는 사진을 빌리지만, 旅인님께서는 글을 빌리신 것 같아서요.
    지식과 생각의 깊이가 깊은 것 같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종종 들러서 저도 같이 생각해볼게요.

    1. 旅인

      저는 사진이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찍기는 많이 찍어도 이런 곳에 올려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Firesuite님의 사진에는 꼭 춥고 눅눅한 가을날의 낙엽과 수풀과 같은 색채가 낡고 울 것같은 표정으로 살아난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저는 되는대로 씁니다만 열심히 쓰는 글입니다.
      firesuite님께서 사진 아래 써놓으신 짧은 글, 생각이 잠시 멈춰가게 만들더군요.

  4. 후...

    일단 카오스를 보고 나서 “인문학적 축적” 어쩌고 이런 걸 느끼신 친구 분도 그렇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글레이크의 카오스는 정말 좋은 책이지만, 물리학을 하는 저는 비선형 동역학의 입문서를 읽고 나서야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겠던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보고 싶으신 걸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듭니다.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카오스 이론은 비선형 동역학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조정인자(parameter)들이 특정한
    값들을 지닐 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고, 뉴튼 역학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선형 근사와 마찰 없는 계와 같은 이상화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요.
    카오스 이론이 발전한다고 해서 물리학이 고전 물리학과 근본적으로 달라질 부분은
    전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모두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걸 동의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skepticalleft 같은 곳에 가면 경제학이 과학이라고 마구 우기면서,바로 그 점에서 꽤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경제학 전공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얘기하는 과학이 뭔가 봤더니, 꽤나 형식적인 정의이고 사실 경제학이
    별로 선전만큼 대단한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걸 또 자백하더군요.
    그럴려면 과학이라고 하면서 오만한 자세를 취하지나 말던지..

    1. 旅인

      몇번이나 답글을 달려고 하다가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후님의 댓글에 답글을 달려고 하니, 우선은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고, 두번째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연과학은 설명하되 인문과학은 이해의 측면에서 다루어진다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경제학이 도덕철학을 전공하는 아담 스미스에서 기초지어졌다는 점에서 볼 때, 자연과학에서의 과학이 아닌 인문학적 전통에 입각한 인문과학의 하나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문과학은 보편타당성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분석과 종합을 통하여 어떤 Function 속에 A만큼 Input을 하면 B만큼의 Output이 나오는 재현성이나 실험이 불가한 점에서 자연과학과는 달리 평가되어야 하며, 인문과학을 자연과학 수준으로 올려놓으려고한 실증주의가 실패한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시장의 정보가 평형하다면…, 다른 외부요인이 없다면…, 다른 조건이 미치는 요인이 미미하다면… 하고 전제조건을 두고 수요와 공급곡선을 그리고 수요와 가격이 결정되는 지점을 구하는 등의 자연과학적 분석방법을 택하고는 있지만, 현실 세계의 시장에서 이윤이 발생하고 피튀기는 경쟁이 벌어지고 정경유착 등의 비리가 발생하는 지점은 결국 시장의 정보를 독점하고 비평형화하여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고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현실은 함수(이론)의 저 편에서 아득하게 펼쳐지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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