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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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천자문과 삼자경

흰돌고래님이 방학동안 한자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리하야 천자문을 추천해주었는데…

천자문하면,

“왠 천자무~운?”할 수도 있다. 호랭이가 금연을 하겠다고 하던 시절에 서당에서 어린애들이 배우던 아주 고리타분한 책으로 치부할 것 같다.

하지만……

위진남북조 시대에 주흥사(周興嗣)가 양 무제(梁 武帝 AD502~549)의 명을 받아 하룻밤에 지었다고 하는 사언고시(四言古詩) 형태의 250句, 125對句(4자x2구) just 1,000字로 되어있는 이 천자문이란, 가히 중국 고대문물에 대한 개론서이자 백과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이조 초기부터 한자와 한문을 배우는 입문서로 쓰였던 모양으로 중종실록 24년(1529년)조에 보면, 정원(승정원?)에 전하기를, 처음 읽기에 천자, 유합, 토씨를 단 소학 등 20건이 쓰이고 있고… 1傳于政院曰 初讀所用千字 類合 懸吐小學 二十件… 라는 기록이 있고, 최세진의 훈몽자회(訓夢字會) ‘引’ 2이끈다는 뜻으로 서문, 해설 등에 해당됨 에는 반드시 천자를 배우고 난 후 ‘유합’ 3類合 : 기본 한자를 수량 방위 등 종류에 따라 구별하여 새김과 독음을 붙여 만든 조선시대의 한자 입문서, 저자는 성종 때의 서거정이라는 설이 있음 을 배운 다음 다른 책들을 읽기 시작한다.” 4世之敎童 幼學書之家 必于千字 次及類合 然後始讀諸書矣 고 나온다.

하지만 최세진은 천자문의 문장이나 속에 담긴 고사는 좋지만, 아해들이 글자만 익히는 바람에 그 효과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천자평(千字評)에서 천자문이 초경험적이고 사변적인 관계로 아해들의 교재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며, 괜히 형이상학적인 사고만 부추긴다고 본다.

천자문은 하나 만 알고 있으나, 워낙 장기베스트셀러인 관계 상 續천자문, 再續천자문, 別本천자문 등의 시리즈물이 나왔고, 이 외에도 송나라 때 호인(胡寅)이 지은 서고천문(敍古千文)이 있다. 이들은 다 천자문처럼 사언고시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는 천자문은 흔하지 않고, 오히려 삼자경(三字經)이 널리 퍼져 있다. 이 삼자경은 사언고시, 4자∙2구 대구 형식의 천자문보다 문장이 평이하고 대구의 수도 제한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배우기에는 천자문보다 월등히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讀史者 考實錄 通古今 若親目” 5사서를 읽는 자는 실록을 고찰하고 고금에 통달하여 직접 본 것 같아야 한다. (3자x4구)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너무 축약된 천자문보다 한문문체에 가깝고, 필요에 따라 3자x2구, 3자x4구, 3자x8구, 3자x14구로 문장을 편성하여 표현에 있어 글자수의 제약이 없다. 반면 천자문에는 단 한 글자도 중복도 없지만 삼자경에는 문자가 중복된다.

한마디로 천자문은 아해들이 글자나 배우기 위하여 사용될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천자문은 극동의 문명 전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천자문을 배운 지 불과 몇달 만에 책거리(冊禮)를 하고, 사자소학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아해들의 머리가 좋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서당훈장님이 경서와 고금, 동서(사물, 즉 격물)를 아해들에게 가르칠만한 실력이 못되어 음을 가르치고 새김만 알려주곤 난 후, 회초리로 득달을 했다는 의미 밖에 안된다.

천자문의 첫구절이자 자연문을 여는 <하날텬 따지 가믈현 누를황 집우 집듀 너블홍 거츨황> 이 여덟자만 하여도 ‘설문’ 6說文解字 : 후한의 許愼이 AD100년경에 지은 자서류로 이에 의하여 육서(六書: 指事·象形·形聲·會意·轉注·假借)의 원칙이 세워졌다. 小篆의 자형을 설명하는 한편 소전과 자체가 다른 혹체자(或體字:古文·籒文)는 따로 수록하였다. 설문으로 해서 갑골문, 금문 등의 삼사천년전의 상고문자를 해독할 발판이 된다. 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하다. 우리가 검을현이라고 새기는 玄자만 해도 선조 때에는 가믈현으로 되어 있다. 설문에는 ‘깊고 먼 것이다. 까맣지만 붉은 색이 감도는 것이 현이다. 그윽하고 들어가 되돌아오는 것(∞의 모습)을 본떴다’ 7玄 : 幽遠也. 黑而有赤色者為玄. 象幽而入覆之也 고 되어있다. 黃은 누르다고 되어 있다. 설문에는 ‘땅의 색이다. 田과 炗의 형성자이다. 炗은 고문의 光이다’ 8黃 : 地之色也. 从田从炗, 炗亦聲. 炗, 古文光 라고 되어 있다. 이를 보면 단순하게 검고 노랗다는 문제가 아니라, 우주가 멀고 멀어서 빛이 사라지는 모습이 玄이며, 지상의 사물에 햇빛이 어리는 모습이 黃이다.

우는 ‘집의 가장자리다. 주역에는 집의 위는 마룻대(지붕)이고 아래를 우라고 한다’ 9宇 : 屋邊也. 从宀于聲. 易曰 : 上棟下宇 고 하고, 주는 ‘배와 수레가 갈 데까지 가서 돌아오는 것이다.’ 10宙 : 舟輿所極覆也. 从宀由聲 라고 한다. 이 해설로 볼 때, 우는 공간, 주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보인다.

한번 책의 편제를 알아보자. 주흥사가 장절(章節)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 아니라서 편제라 할 것이 없지만, 어떤 내용이 있는지 구분하기 위하여 박영사의 편제에 따른다.

01. 자연(自然) :   9구 / 72자
후한의 장형(張衡)등에 의하여 고도로 발달된 천체물리학인 ‘혼천설’ 11渾天說 : 周代의 개천설(蓋天說: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에 의거한 아주 나이브한 천체관으로 주비산경이 수학적으로 Back-up)에 비하여, 고도로 발전된 천체관임. 지동설 이전의 천동설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정밀한 구면천체관이다. 하늘의 둘레를 365 1/4°로 보고, 북극과 적도의 각도가 91°, 黃道(천동설에서 태양의 궤도로 23°27′ 기울어져 있고 춘추분에 0°가 됨)는 적도에서 24°(남북회귀선은 23°27′)가 기울어져 있다고 본다 이 완성되고, 주비산경, 구장산술 등의 수학책이 구비되었음. 역법에도 정밀한 사분력(四分曆: 365 1/4일)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었고 ‘세차’ 12歲差 : 춘분점이 황도를 따라 1년에 50.3˝씩 서쪽으로 이동하여 2만 5800년 주기를 갖는 현상 등에 대한 계산이 완정된 상태에서 우주, 계절, 기후, 광물, 식물, 동물 등에 대해서 말함

02. 정사(政史) :   9구 / 72자
고대 성왕의 치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詩∙書 등의 출전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함

03. 수학(修學) :   7구 / 56자
공부하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하는가를 쓰고 있음

04. 충효(忠孝) :   9구 / 72자
여기에도 행동거지와 수학 그리고 당시의 지배윤리인 충과 효에 대해서 말함

05. 수덕(修德) :   6구 / 48자
행동거지와 공부를 통해서 벼슬하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칭송을 들어야 한다고 거론함

06. 오륜(五倫) :   6구 / 48자
오륜을 어떤 식으로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함

07. 인의(仁義) :   5구 / 40자
인의와 지조를 어떻게 지켜야하는가에 대해서 말함

08. 제도(帝都) :   8구 / 64자
고대의 도읍, 궁성, 건물의 모양과 연회 등을 거론함

09. 공신(功臣) : 12구 / 96자
고대, 춘추 전국시대의 인물들과 문서 등을 거론함

10. 군웅(群雄) :   5구 / 40자
춘추전국시대의 싸움과 한나라가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설명함

11. 지세(地勢) :   5구 / 40자
중국의 지리에 대하여 개괄함. 당시에는 이미 중원 개념이 획정되었을 뿐 아니라,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끝나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도가 완정되어 우왕의 九州 및 郡 개념이 포괄됨

12. 농정(農政) : 10구 / 80자
농사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고, 稅制 및 농사와 가사를 돌보는 것과 자식을 기르는 것, 그리고 자신 몸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함

13. 한거(閑居) :   9구 / 72자
머물 곳을 어떻게 찾으며, 자연과 함께하고 독서를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함

14. 식사(食事) :   3구 / 24자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함

15. 안이(安易) :   5구 / 40자
집에서의 부업과 소일거리를 찾고 잠을 자고 술자리 등에 대해 말함

16. 잡사(雜事) :   6구 / 48자
제사, 인사법, 편지를 쓰는 법, 목욕 등의 잡다한 일에 대해 말함

17. 경계(警戒) : 11구 / 88자
인물들의 행적, 천문계측기구, 예법 등에 대하여 말함

이 천자문의 편제만 보아도 걸치는 부분이 방대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움베르코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보면, 중세가 거의 끝나갈 무렵 유럽에서 제일 큰 도서관의 소장 도서가 만권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천자문을 지을 당시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에 채옹 개인이 소장한 도서가 물경 만권서였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시대가 쇠히고 나자, 그리스 시대에 만발했던 문화와 전적들이 유실되고 말지만, 동양에서는 주나라가 제정일치의 은나라를 멸하고 인문주의에 입각한 정치질서를 세운 이래, 무수한 전란과 분서에도 불구하고 인문주의적 전통은 지속되었다.

주흥사가 살았던 시대는 한족의 남조와 오랑캐의 북조의 여러나라가 단명 부침하는 시기이긴 했지만, 관료제가 이미 정착되고 중앙집권의 행정질서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관학인 유학과 민간의 도교가 혼효되고 있던 싯점이며 바야흐로 달마가 인도에서 와서 양 무제를 만나는 거대한 문명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다. 학문적으로는 훈고학이라는 치밀한 학문 속에 의리지학이라는 관념적 사유가 발아하는 시기다.

그래서 이 천자문은 현대와 이미 천오백년이라는 시기를 격하고 있긴 하지만, 동양문명의 굵은 선이 그어진 다음에 지어진 서적이며, 제자를 비롯 진한지제의 학문이 이미 정립된 시점 이후의 문화를 반영한 저작인 셈이다.

그리하여 예전에 천자문을 삼년동안 배워도 절반도 마치지 못했다는 농담같은 전설이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뽀르노 수준인 서양의 萬神殿(Pantheon) 이야기(그리스 신화)를 아이들에게 읽히면서도, 정작 동양의 인문주의적 전통 속에서 만들어진 품격있는 천자문은 읽지 않는다.

嗚呼, 痛哉라! 吾等이 不亦西夷乎아?

하지만, 천자문을 즐기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사야 한다. 그래야 책 속에서 글자의 원천을 배울 수 있고, 천자문에 있는 문구의 출전을 배워 그 내용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천자문을 네권이나 갖게 된 것도 좀더 다른 문구에 대한 해석이나, 좀 자세한 역법 등의 기술내용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해서다.

이런 점에서 천자문을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면, 설문이 들어가고 출전의 예시가 많은 책을 고르면 될 것 같다.

This Post Has 8 Comments

  1. 위소보루

    여인님의 글을 보면 항상 소논문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

    어릴 적에 어머니가 천자문을 외우라고 해서 억지로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뜻은 모르지만 한자를 많이 배워 나중에 공부할 때 좀 편했다는 점에선 이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푸핫

    1. 旅인

      저도 간혹가다 보면 글쓰는 것을 심하게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충 써도 되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저도 공부도 되고 좋습니다.

      저는 천자문 같은 것은 배우지 않았지만, 중학교 때 1년, 고등학교 때 1년 한자 수업이 있어서 한자를 조금 배울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 플로라

    아해들을 위한 것두 추천해주세요.
    저희집3,5학년짜리들이 요새 한자숙어 만화에 푹 빠져 서로 퀴즈내기 하고 있는데, 기왕이면 좀 좋은 예를 들어놓은 걸 보여주고 싶어요^^

    1. 旅인

      아이들이 한자를 배우는데 있어서 마법천자문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삼자경이 있는 모양입니다. 한번 사서 보시고 아이들이 싫증을 내지 않을지 한번 보시고 괜찮다면 한번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삼자경은 한자 뿐 아니라 한문을 배울 수 있는 교재도 될 수 있습니다.

  3. 컴포지션

    저도 한자공부가 하고싶었는데요… 여기서는 천자문을 어떻게 구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분명 중국서점에 가면 구할수는 있겠지만.. 기본이 안된상태에서 음도 없는 중국책은.. 아이고.. 저는 아직 갈길이 멉니다

    1. 旅인

      사실 한자공부를 위해서는 천자문이 적당하지 않습니다.
      한자공부를 하고 싶으시다면 http://www.cyberhanja.com/hansite.htm
      에 가보시면 입맛에 맞게 공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천자문을 한자공부보다는 동양문화에 대한 개론서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4. lamp; 은

    엥?
    제가 천차문 공부한다고 할때는 안갈쳐주시고
    막내 흰돌고래님이 천자문 공부한다고 하니 책 알려주시고~~~
    느무해욧!! ㅋ

    간만에 나타나서 삐짐모드. ^^;

    1. 旅인

      이 글은 흰돌고래님이 방학 중 한자공부를 한다고 해서 쓴 것이지만, 한자공부보다는 천자문은 상식 수준에서 한번 읽어보시라고 이렇게 장황하게 쓴 것입니다.^^

      어제인가 은님께서 범소유상의 相을 서로 상으로 보고 관계로 풀이한 것은 탁견이라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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