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02

필름 2.0의 기사처럼 놈에게는 눈물이 많았다. 놈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법도 몰랐다. 놈은 훌쩍이며 교실의 구석에서 울었고, 복도에서 아니면 교실 밖 그늘 아래에서 울었다. 놈의 별명은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찌찔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놈은 한사코 뒷줄의 재수파들과 놀려고 했다. 자신의 생일이 58년 1월이니, 자신은 개띠가 아니라 닭띠들과 학교를 다녔다는 것이었다.

재수파들은 찔찔 짜는 놈과 함께 놀 생각은 없었기에 놈은 늘 따돌림을 당했고, 또 학교 어느 구석에서 울곤 했다. 울고 나면 금새 표정이 밝아져 또 재수파들 사이에 끼어들어 갖은 장난을 쳐대는 부단한 노력 끝에 <애들은 가라 파> 즉 그룹 몽따다에 자동 가입이 되었다.

강원도 양구에서 굴러먹다 서울로 내려온 털 빠진 강아지같이 생긴 데다, 재수파에게 끼어들려고 낑낑대는 것도 보기 싫었고, 뻑하면 울어대는 것이 웃기기도 했다. 그래서 놈이 내 곁에서 이소룡 폼을 잡고 “이야오~ 이야오~”하면,

“내 곁에서 지랄 말고 절루 가서 애들과 놀아라.”고 몽따다 정회원으로써 준엄하게 꾸짖곤 했다.

우리는 독어시간을 싫어하기 보다는 무서워 했다. 그리고 내가 보아온 독어선생들은 몽땅 다 싸이코였다. 아마 독일어에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불독>은 제일 악질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적으로 규정했으며, 자신의 인생은 우리가 망쳐놓았다고 생각했고, 수업시간 중에도 늘 트랙터 운전을 배워 캐나다로 이민을 갈 것을 꿈꾸었다.

“세번째 줄 대가리 삐딱한 놈! 본문 읽고 해석해 봐”한 후, 교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왼손은 트랙터의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핸들 옆에 놓인 기어를 댕겼다 놓았다 하는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리고 읽고 해석하기가 끝나면 “니들 영어는 대학가는 데 필요하다고 해석 잘하지? 시시껍줄한 독어라고 그따위로 밖에 해석을 못하냐”며 불러 올려 두드려 댔다. 그래서 우리는 불독에게 ‘좌우지간 걸리면 작살이다’고 독어시간 있기 전에는 ‘제발 오늘도 무사히’를 빌곤 했다.

그러던 어느 불독시간에 우리는 불독에게 걸릴까 봐 쥐 죽은 듯 자리에 앉아 있는 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칠판에 판서를 하던 불독이 아랫 입술을 코끝까지 치켜 올리며 돌아서서,

“누구지? 웃은 놈. 조용히 교단 위로 올라 와라”

그 말과 동시에 교실 안은 숨소리조차 멎었다. 어떤 놈이 미친 개 불독에게 물려 결단이 날 것인가로 스릴과 서스펜스에 빠져들었다.

그때 규동이 일어섰고, 웃음을 흘리며 교단으로 나가면서 오른손으로 아이들에게 ‘V’ 싸인을 날렸다. 놈의 엉뚱한 행동이 불독을 더욱 열받게 만들고 엄청난 구타로 이어질 것이었다.

여지없이 불독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브이 싸인이라~, 네 놈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거지. 네놈 꼴쌍을 보니 죽어나가도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듯 하군.”하고

교단에 올라온 놈의 머리를 팔로 감아잡고 12월31일 자정에 보신각 타종하듯 칠판과 벽 등을 두드려댔다. 그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고 꽤 오래 계속되어서, 혹시 놈의 두개골이 빠개지는 것이 아닌가 했다.

미친 불독이 분이 풀렸는 지 갑자기 벽에 부딪히기를 멈추고, “니 대가리를 빼서 자리로 돌아가라” 했다.

규동은 어지러운 지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고 비틀비틀 자리로 돌아왔는 데, 얼굴은 자신의 코피로 범벅이었다.

불독은 다시 판서를 시작했고, 쥐 죽은 듯 우리는 그것을 공책에 받아 적었다.

그때 불독이 갑자기 분필을 내팽개치며,

“이거 뭐야, 옷에 피 튀겼잖아? 에이 재수없으려니까… 아까 그 새끼 다시 나와!”소리를 지르면서 교단에서 내려와 엉거주춤 일어나 나가려는 놈에게 달려들어 따귀를 수차례 갈겨대더니 씨근거리며, 교단으로 올라가

“기분 나빠서 오늘 수업 끝!”하곤 나가버렸다.

정말 해도 너무 했던 것이다. 불독이 나가자 누군가 “우리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거냐? 저런 폭력교사는 추방해 달라고 문교부에 진정서 내야 하는 거 아니냐…”하고 말했다.

따귀를 맞고 주저앉아 있던 규동은 내 옆, 벽 쪽으로 비틀거리며 와서 머리를 부딪히며,

“아이 씨팔, ☆같아~. 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려” 하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불독이 나가고 수업시간이 이십분 쯤 남았는 데, 놈은 계속 울 것만 같았고, 옆에서 그냥 앉아 있기만 하기도 뭐해서,

“다 큰 새끼가 뻑하면 울고 지랄이야. 너 새끼 나 따라와!”하고 놈의 팔뚝을 잡아 끌었다.

“에이 씨발 놔, 놔봐!”
“찍소리 말고 존 말할 때 따라와!”

교실 건물 밖 세면대로 데려가 코피로 범벅이 된 놈에게 씻으라고 했다. 놈은 씻으면서, “개애새끼들. 다들 개새끼라구. 씨발 나를 사람 취급도 안해. 그 씨발 새끼들, 불독 그 새끼도, 너도… 씨발 다 ☆같은 놈들이야.”라고 구시렁거리며 훌쩍거렸다.

나는 그런 놈이 우습기도 하고 안됐기도 해서 다 씻은 놈을 데리고 학교 뒤 솔밭으로 가는 풀밭으로 데려가 앉으라고 했다.

“뭐가 그렇게 개같은 데?”
“애들이 날 상대도 않고 촌놈이라고 깔보잖아. 그 씨발 놈들 지들이 얼마나 잘났다고…으이씨”
“그래서?”
“그런데 나는 이게 무슨 꼴이냔 말이야. 불독같은 새끼한테 읃어터지기나 하고 말이야. 그럼 싸가지 없는 반 새끼들은 날 병신이라고 키들거리며 웃고 말이지. 다 개같은 새끼들이야.”
“그러지들 않아. 좋은 놈들이야. 니가 맨날 걔들 앞에서 까불고 울고 하니까 널 쉽게 볼 뿐이지.”
“씨발! 넌 공부 잘 하니까 잘 대해 주지만… 난 뭐냐 공부도 바닥을 기고, 건들거리기나 하고, 에이 씨발 뭐 한 구석이라도 잘난 곳이 있어야지.”
“내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무슨?”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글을 읽을 줄 알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난 쌈질이나 하고 사고나 칠 줄 아는 놈이었다고…

“믿을 수 없어. 너같이 공부도 잘하고 그런 애가?”
“이젠 공부 잘 못해. 반에서 20등하기도 힘들어.”
“그만 하면 잘하는 것 아니야?”
“하긴 나처럼 공부하고 20등이면 괜찮은 셈이지.”
“그런데 어떻게 지금처럼 되었냐?”
“글을 알고 나서 책을 많이 읽었지. 그랬더니 조금씩 변했어. 차분도 해지고.”
“책이 그렇게 좋은 거냐?”
“처음에는 읽기 힘들지. 그러나 읽다보면 차츰 나아져. 재미도 생기고”

놈과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다보니 우리는 다음 시간이 시작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럼 너를 나의 사부라고 할께.”
“사부라니?”
“그냥 나의 싸부”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샤 론 09.05.12. 19:02
    첫번째 댓글 쓰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ㅎㅎ..선생님이 대단한 분이시군요..나도 어떤 여선생님이 무척 무서워서 쫄았던 기억이 나네요…그런데 저렇게 공부 안하던 애도 바뀔 수 있다는게 신기합니다…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하더니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 旅인 09.05.13. 08:58
    저 놈은 책 만 읽었지 공부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저놈과 붙어다니다 제가 망했습니다.
    ┗ 샤 론 09.05.13. 09:18
    ㅎㅎㅎㅎ…그럴 줄 알았습니다..어쩐지..저도 공부 엄청 못하던 애들하고 잘 놀았는데 전 같이 돌아다니진 않아서 별 피해는 없었답니다…학교서만 놀았기 때문에..ㅎㅎ..여인님은 어차피 평생 공부하실 분이니 뭐 그때 놀았던 것이 그렇게 한스럽진 않으시리라 생각이 되는데요..아닌가요?
    ┗ 旅인 09.05.13. 10:52
    맞습니다.

    유리알 유희 09.05.13. 13:05
    찌질이는 드디어 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싸부를 만나는군요. 복 많은 규동이! 허허. 그 시절엔 불독 같은 교사가 더러더러 있었지요. 저는 저런 취급을 당할까봐 비로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눈. 공부 못하는 애들에게 선생들이 던지는 독설, 그거이 무서워서요. ㅜㅜ
    ┗ 旅인 09.05.13. 13:44
    규동이는 절 잘 만났습니다. 그런데 짜식이 동창회 때 그따위로 나를 맞이하다니…
    ┗ 이슬 09.05.13. 14:03
    규동님의 싸부 여인님~~^^
    ┗ 旅인 09.05.13. 18:59
    대학 때도 사부라고 부르는 친구가 하나 생기더군요.

    라비에벨 09.05.13. 15:17
    ☆같은 독어 꼴통땜에 잠시 씩씩…싸이코 한 명씩은 꼭 있었죠? 규동이 드디어 싸부를 만나고… 티비는 사랑을 실고 뭐 그런데서 찾지않을까요?^^ 저두 싸이코 엿장수 수학선생이 생각납니다…
    ┗ 旅인 09.05.13. 18:58
    1학년 때 독어교생이 왔는데 사람 참하더니… 2학년때 선생으로 왔죠. 그러더니 이 역시 싸이코로 한달만에 돌변. 대학교 때 싸이코 독어 여자조교 땜에 2학기를 3학기로 연장. 이들 싸이코들 땜에 독일이라면 신물납니다.

    산골아이 09.05.14. 11:40
    불독의 광기를 어찌할꼬.. 학교폭력 앞에 나죽었소 하고 앉아있던 우리들 세대의 한 단면이 펼쳐집니다. 물론 여학교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 인격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건 지금이나 예전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합니다. 현재의 선생들은 무관심으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旅인 09.05.14. 14:12
    당시만해도 선생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체벌은 정당하다고 통념상 받아들여졌고, 그러기에 선생들의 폭행을 제어할 어떤 장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쥐죽은 듯이, 멍청이처럼 찍소리없이 살아가며 보신을 할 수 밖에요.

    truth 09.05.19. 21:54
    ㅠㅠ…..
    ┗ 旅인 09.05.20. 10:59
    폭행… 우리는 학교에서 폭행을 배웠는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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