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만이천원(김훈의 글 중)

…반반한 개활지에서 대체로 삼만이천원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산허리나 질퍽거리는 수렁 위에서는 삼만오천원까지도 받았다. 일당전표를 받는 저녁마다 장철민은 삼만이천원이 많다고도 적다고도 알맞다고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장철민은 삼만이천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장철민은 삼만이천원의 구매력과 삼만이천원의 변제능력을 생각했다. 삼만이천원은 대두 서 말 정도의 쌀, 열두어 근의 돼지고기 혹은 한 달 방세의 반이었다. 삼만이천원의 그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장철민은 삼만이천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김훈의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중에서

어제 중국에서 온 고객을 만나고 돌아와 업무매뉴얼 작성 차 온 컨설턴트와 잠시 면담을 했다. 그는 매뉴얼 작성과 그 후 교육에 대하여 걱정을 하며 말했다. “와서 면담을 해 보니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뭔가 개선된 업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좀 새로운 것을 가르쳐드려야 하겠는데…” “그의 막연함이 이해되어 그에게 말했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 막연한 것을 확연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 번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표준화고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퇴근 후 철커덩거리는 지하철에서 빗살무늬토기처럼 투박한 김훈 씨의 저 글을 읽었다. 그리고 삼만이천원 때문에 무력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다>고 자명하게 인식하는 것도 위대한 지식이라는 점에서 김훈 씨의 저 투박한 글은 아득했고 반짝였지만,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삼만이천원 때문에 답답했고, 결국 답을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대체로 내가 얼마를 버는 지조차 모르고 있다. 월급은 아내가 가진 통장으로 입금되고, 월급의 명세를 볼 이유가 나에게는 별로 없다. 가끔 은행들에서 요구하는 근로소득세원천징수를 띄었을 때, 합계난에 쓰여진 나의 소득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숫자를 보곤 퍼뜩 놀라곤 잊어버린다. 그렇게 많이 벌어들인 나의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를 사기 위하여 융자를 낸 돈의 이자와 남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자식 놈을 만들기 위하여, 학원과 과외선생의 호주머니에 찔러넣는 돈 등등으로 허무하게 소모되고 결국은 나날의 저녁 밥상에 올라오는 일용할 양식은 늘 빈한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늘 축쳐진 옷가지로 한해를 지내곤 했다.

김훈 씨가 말한대로, 아내와 나는 월급봉투에 적혀진 그 금액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이자와 학원비와 시장에서 얼마라고 불리워지는 값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난한 지, 부유한 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아내가 홍콩에 있을 때, 동료의 부인이 늘 홍콩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서울에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 데… 라고 말하던 그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겠다고 말한다.

아내는 최근에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를 처분하고, 새로이 산 아파트 값이 오르는 것을 보며 즐거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웃음 속에 깃든 가난에 대한 인식이 뼈저렸고, 집 값이 치오르는 이 엄동을 넘겨야 하는 집 없는 사람들이 애처로왔다.

영국의 영란은행권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나는 이 은행권의 소지자의 요구에 의하여 (액면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 I POMISE TO PAY THE BEARER ON DEMAND THE SUM OF (액면금액)

그러나 무엇으로 액면금액에 해당하는 것을 지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또 미국 달러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이는 公과 私에 걸친 모든 채무에 대한 합법적인 지급수단이다.”
  — THIS IS LEGAL TENDER FOR ALL DEBT, PUBLIC AND PRIVATE.

돈이란 결국 조폐공사에서 찍어낼 때부터 근본적으로 빚이고, 갖고 있는 자는 채권자이며, 결국 빚을 져야 활용가치가 있을 뿐이다.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으며, 그 위에서 잘 수도 없다. 빚을 져야 사용할 수 있는 이 가소로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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