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투리 휴가 중…

어제는 이유도 없이 집에서 쉬었다. 그냥 마지막 휴가로 쉬었다. 그러자 정말 여름이 끝나버리는 것 같았고 집에서 뒹굴어도 한낮은 선선하기만 했다.

아침에는 그냥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차를 몰고 새벽 안개가 가득한 – 아니 안개가 아니라 썩은 공기와 태양빛이 만나 광합성을 일으킨 부유물일지도 모른다 –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팔당호가 펼쳐진 곳으로 갔다. 결국 호수인지 강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곳의 건너편은 안개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주역의 한문의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 영문 I-Ching을 펼쳤다. 그러나 나의 실력으로 해석이 불가할 지경이다. 사실 고문 중의 왕고문인 주역의 효사를 제대로 번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효사라는 것이 전혀 논리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특히 상(象)은 괘효사를 풀이해준다고 하는 데 오히려 괘사와 각 효사간의 흐름을 방해할 뿐 전혀 도움이 안된다.

포몽 길, 납부 길, 자극가 (包蒙 吉, 納婦吉, 子克家)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싸고 입히면 좋다. 아내를 바치면 아름답다. 아들이 그 집을 다스리는 데 능하다>라고 해석이 된다. 그러나 책에는 <몽매한 자를 포섭하는 것이니 길하다. 며느리를 맞아도 길하다. 자식이 집을 잘 다스릴 것이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잎싹님의 난중일기에 대한 포스트를 읽으며 영웅 이순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손자병법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옛날에 잘 싸운다는 사람을 돌아보면 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에서 이기는 자이다. 그래서 잘 싸우는 사람은 이겨도 이름을 얻지 못하고 그 용맹에 공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잘 싸운 사람들 중에는 영웅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손자의 이야기는 너무 타당하여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손자의 말을 빌자면 이순신은 잘 싸우지 못한 자이다. 늘 이길 수 없는 전장에서 피빛노을을 받으며 간신히 간신히 스물세번을 이겼다. 터무니 없는 전쟁에서 싸워서 이겼기에 영웅이 되어 버린 자. 그러나 이순신은 늘 이기는 함수를 이해했던 사람이었고, 적들과 우리는 이순신이 이해했던 함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영웅이 되었고 신화가 되어버렸다.

<칼의 노래>는 신화가 되어버린 이순신을 인간으로 끌어내렸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 이순신의 정한에 서글퍼하며 이순신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고 영웅의 삶조차도 구차하면서도 치열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메주뜨는 냄새와 밥과 피비린내 나는 칼과 창이 동일한 가치로 남쪽바다 위에 삶 쪽을 향하여 즐비하다. 오래전 최인훈은 그의 소설 <서유기>인지 <구운몽>에서 왜 백의종군까지 하면서 조선을 지켰는 가를 묻는다. 이순신은 그렇게 말한 것 같다. <나의 시대에는 충이라는 논리 외에는 없었다.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라고…

영웅은 없다. 단지 주어진 상황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영웅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그 시대가 비굴한 자들과 간신배와 온갖 잡놈들이 드글드글하고 갖가지 얼토당토 않는 일들이 벌어져도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풀 길이 없어 방치되는 시절이라 그러하다.

<불멸의 이순신>이 KBS에서 종영되었고, 우리가 난세로 인식하던 어느 날, <칼의 노래>를 의미심장하게 읽었던 대통령이 “새로운 정치문화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전제된다면, 2선 후퇴나 임기단축을 통해서라도 노무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지와 결단도 생각해 봤다”고 갑자기 말한다.

그러나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김훈이 평하기를…

“이순신의 내면은 무겁게 짓눌려 있고 삼엄하게 통제되어 있다. 그는 이 통제된 내면의 힘으로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한다. <난중일기>와 그가 조정으로 보낸 전황 보고서들은 무인다은 글쓰기의 전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바다의 사실에만 입각해 있다…
이 통제된 슬픔의 힘이 “저녁 무렵에 동풍이 잠들고 날이 흐렸다. 부하 아무개가 거듭 군율을 범하기에 베었다.” 같은 식의 놀라운 문장들을 쓰게 한다. 바람이 잠든 것과 부하를 죽인 일이 동등한 자격의 사실일 뿐이다.
이순신의 글은 영웅다운 호탕함이나 과장이 없고 무협의 장쾌함이 없다. 그는 악전고투 끝에 겨우겨우 이긴다. 그는 영웅된 자의 억눌림의 비극을 진술할 때는 단호하게 말을 아끼고 온갖 정한에 몸을 떠는 한 필부의 내면을 진술할 때는 말을 덜 아낀다.”

이 글을 우리의 말많은 대통령에게 대입하면 그의 정치력이라는 Y값이 어떻게 나올 지가 궁금하다.


古之所謂善戰者,勝于易勝者也.故善戰之勝也,無智名,無勇功.(손자, 군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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