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mmxix 오르세에서

오르세미술관과 퐁피두센터를 다녀왔다.

루브르보다 오르세가 좋다는 이유는 관람자에게 전시공간이 편하고 작품의 양도 적당하기 때문이다. 루브르는 너무 크고 작품들이 너무 많다. 터무니없이 높은 천장과 흘러드는 빛보다는 깊은 그늘, 몰려드는 관람객에 떠밀려 흐트러진 동선 탓에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낡은 철로 역사를 개조한 오르세의 낮은 공간과 밝은 조명은 관람하기에 적당했다. 또 다리를 쉴만한 적절한 공간들이 안배되어 있다. 작품들도 대체로 친숙하다.

인상파들의 작품과 그 이전의 바르비종파의 그림과 쿠르베의 오만한 그림들이 있다.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1사실주의 화가이자, 아방가르드의 선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커서 아틀리에 안에서 그렸을 것이다

인상파는 이전 유파와는 몇가지 다른 특징이 있다. 이전에는 스케치는 야외에서 그림은 아틀리에에서 그리던 방식이었으나, 스케치와 그림 모두 야외에서 직접 그린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물감을 공방인 아틀리에에서 제작해야 했으나, 19세기가 되면서 튜브로 된 유화물감이 나오면서 야외에서 사생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미술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비중있게 다루어진 것은 자연보다 인간이었으며, 자연이 재현되더라도 그것은 장면의 배경이나 주제를 보충하기 위한 연극적인 공간으로 제시되었다.

영국의 윌리암 터너와 컨스터블에서 시작된 풍경화는 불란서의 밀레 등 바르비종파로 넘어오고 그 이후 인상파 또한 인물과 풍경을 동등하게 다루기 시작한다.

당시 식구들에게 보낸 카톡에서 댕겨온 내용….

오르세는 주로 인상파 화가를 중심으로 전시하며, 대부분의 작품이 프랑스 작가들이다. 물론 앵그르, 들라크루와 등의 신고전주의, 까미유 코로처럼 풍경화를 그렸고 살롱전에도 출품하였지만 사실주의의 쿠르베, 밀레를 중심으로 한 바르비종파, 인상파들과 교류가 있었던 사람의 작품도 있다.

르네상스에서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불란서 왕립아카데미에 이르기까지 외부에서 사생은 하여도 색칠은 이른바 아틀리에(공방)에서만 했다. 로코코 시대까지만 해도 튜브로 된 물감이 없어서 아틀리에에서 그려야만 했지. 인상파 시기에 튜브가 개발되기는 했지만 왕립 아카데미는 프랑스 고전주의 푸생의 영향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속에 빠져 있던 탓에 풍경의 사생조차 필요없는 상상화에 빠져 있었다.

장 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와 워즈워드 등 영국의 계관시인들의 영향으로 영국에서 컨스터불, 터너와 같은 풍경화가가 나왔고,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까미유 코로와 같은 바르비종파와 같은 풍경화가들이 태어나고, 바깥(外光)에서 색칠까지 하는 경향이 탄생하지. 반면 야외에서 그리다보니 그림의 크기는 작아진다.

그후의 인상파란, 이러한 영향을 받았지만, 살롱전에 낙선한 모네를 중심으로 한 일파들을 말한다. 그들의 경향을 하나로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모네는 과거의 회화를 재해석(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올랭피아로)하고, 왕립아카데미의 화풍을 비꼬고, 그림을 평면화한다고 비판을 받았고, 마네는 빛과 그림자와 색을 추구했고, 르느와르는 풍경보다는 인물에 집중했다.

마네의 ‘올랭피아’ 21865년 파리 샬롱에 출품되어 “음란하고 상스럽다”는 비난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의 특히 아카데미의 누드화는 그리스 여신이나 요정을 표현하려고 그린 반면, 마네는 현실의 여인, 그것도 매춘부를 그대로 그렸다. 게다가 올랭피아는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새로운 해석이기도 하다. 이들 베네치아 화풍의 비너스는 입체적이고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있으나, 올랭피아의 몸은 평면적이고, 피부는 건조하며, 걸치고 있는 장식품도 싸구려인데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관람자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사실주의의 쿠르베와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아방 가르드(avant-garde)인데, 전위로 전통을 파괴하고 앞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이후 고흐, 고갱, 쇠라, 세잔느 등이 있는데, 세잔느의 경우 현대화 즉 모더니즘의 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그는 원근법에 의해 정물을 그리지 않고, 다촛점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 옆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쇠라가 사물의 견고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점묘화법을 썼다면, 세잔느는 세계는 삼각형, 원과 같은 기본적인 기하학으로 되어 있다고 보고 생뷕트와르산 등을 그리지. 그러다 보니 쇠라의 그림과 세잔느의 그림을 보면 이상한 정적과 침묵을 느끼게 된다.

… 당겨온 내용 끝

로댕의 ‘지옥의 문’ 31880~1900년에 걸쳐 제작됨. 이 지옥의 문 위의 턱을 괴고 있는 시인은 1904년에 ‘생각하는 사람’으로 재탄생한다. 이 지옥의 문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치의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로렌초 기베르티 작)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보인다. 또 ‘생각하는 사람’은 바티칸에 있는 ‘벨베데르의 토르소’를 완벽한 조각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오르세의 작품들은 건물에 짓눌리지 않고 작품으로 관람하기에 적당하다. 그리고 동선도 적당한 편이다.

하지만 오르세의 안내도를 참고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들을 놓칠 수도 있다. 미술교과서에 나온 작품들은 생각지도 않게 5층(나는 오르세 미술관이 3충인 줄 알았다)에 다 있다. 안내도를 잘 읽지 않는 – 나의 시력 탓이다 – 내가 오르세 전경을 보려고 5충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 그림들을 놓쳤을 것이다.

철도역사였던 오르세의 전경

오후에는 퐁피두 센터로 갔다. 전시장의 배치가 환상적이다. 게다가 안내 팜플렛은 모던 아트의 교과서라고 해도 좋다. 하나 더 얻으면 좋을 것을 하나만 가져왔다.

내가 포스트에 올린 포스트 모던 및 모더니즘에 대한 글들은 대부분 진중권의 글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진중권 본인의 이론이 아니라, 불과 두세 명의 서구 비평가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도 대부분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비평에 의존한다.

하지만 비평이라는 것은 몹시 신학적인 주제다.

랍비들은 “마지막 예언자들인 하가이,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의 죽음 이후, 성령은 이스라엘을 떠났지만 천국의 말씀은 바트 콜 bat kol(‘목소리의 딸’로서 구전전통, 즉 토라에 대한 해석과 주석을 의미)을 통해 계속된다.”고 가르쳤다. … 즉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교 내부에서도 해석학이 선지주의를 대체했고, 이제 예언은 해석의 형태로만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4조르죠 아감벤의 ‘벌거벗음’ 중 9쪽

이제 창조사역의 완성에 해당하는 구원사역에는, 이제 선지자도 없고 구세주도 없다. 오로지 토라나 신약에 대한 해석에 의지해야 하게 되었다.

근대 문화에서 철학과 비평은 (이전에는 성스러운 영역에서 주해에 맡겨져 있던) 예언자의 구원작업을 계승한다. 그리고 시, 기술, 예술은 창조라는 천사의 작업을 계승한다.5조르죠 아감벤의 ‘벌거벗음’ 중 14쪽

즉 미술이라는 불완전한 창조 행위는 비평이라는 해석에 의해서 그 온전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는 이 아감벤의 신학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회화나 예술이라는 창조행위가 철학가나 비평가들이 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오거나 나아갈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들이 예정조화를 주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의 좌표조차 모른다. 지금의 좌표조차 모르는 판에, 앞 날에 우리가 어디로 튈 지는 더욱 알 수 없다.

단지 이들의 해석이 이 복잡한 포스트 모더니즘 회화를 설명하는 원리로 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이들이 거짓 선지자 해석일지라도, 믿고 따르는 것 뿐이다.

하나와 세 개의 걸상 63대 포스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개념미술’로 이 작품은 다른 곳에 전시된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또 다른 하나와 세 개의 책상을 보고 싶다면 그림을 클릭하시오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숙소의 주인장이 퐁피두 센터에 가면 테라스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음료를 한잔하면서 파리 시내를 바라보는 풍경이 좋다고 했다. 거기서 바라보는 파리는 낮고 광활했다. 그리고 북쪽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보였고, 그 위에 성당이 있다. 거기가 몽마르뜨 언덕이자 사크레쾨르 성당이다.

몽마르뜨언덕과 사토레쾨르 성당 7퐁피두센터의 국립현대미술관 안의 옥상에서 잠시 나와 찍음

20191010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1848년 이전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 1848년에서 1914년 작품은 오르세, 1914년 이후의 작품은 퐁피두 센터가 담당하도록 분할되어 있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blueprint

    여행기를 주욱 읽어보니 떠나기 전 많은 준비를 하신게 느껴졌습니다. 전 여인님보다 열흘쯤 먼저 오르세를 다녀왔네요. 작년 9월말에.
    말씀대로 익숙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Gae Aulenti에 의해 재탄생한 공간 때문에 참 좋아하는 미술관이지요.

    올해 계획했던 여행은 다 취소되고 외출도 자제해야 하는 요즘… 여인님의 여행기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1. 旅인

      런던에서는 얼떨떨했고, 파리에서도 루브르에서는 몹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오르세부터 그림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멎고 입이 벌어지는, 그러한 사태는 없었습니다. 저는 위대한 원작을 보면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뛸 줄 알았는데, 가슴으로 보기보다 머리로 작품을 바라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다음에 간다면 좀더 천천히 즐길 수 있겠지요.

      Blueprint님도 늘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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