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xmmxix 서쪽으로

비행기는 혼몽(昏懜) 속으로 날았다. 잠과 깬 것 사이로 엔진소리와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새어들었다. 몸으로 속도를 받아낸 탓인지, 의자가 좁은 탓인지 피로가 몸을 세로로 찢어 내고 있다. 08시 40분에 인천에서 비행기는 이륙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 탔고, 히드로 공항 제 3터미널에 18시 10분에 도착했다. 서쪽에서는 태양이 9시간 가량 늦게 떴고, 또 썸머타임이었다. 9시간 가량 구겨진 시간은, 다시 1시간 가량 펴져 서울과 8시간의 차가 벌어진다. 17시간 30분 만에 히드로 공항에 내린 셈이다.

면세점에서 값싼 조니워커 한 병을 샀다. 아내가 지난 여행 때 사용했던 오이스터 카드에 40파운드를 적립했다. 오이스터 카드에 남아있는 잔액은 1파운드에 불과했다. 구글 맵이 시키는대로 피카딜리 라인에 오른다. 탄광의 갱로에 타일을 바른 것 같은 통로를 걸어 언더그라운드 열차에 올랐다. 같은 협궤열차이지만, 홍콩의 지하철보다 좁고 낡았다. ‘피카딜리 써커스’에서 ‘엘레판트 & 캐슬행’으로 갈아탄다.

그동안 가장 멀리 가본 곳은 두바이와 테헤란이었다. 이맘 호메이니 공항을 벗어났을 때, 광야를 처음 보았다. 힘줄이 갈라질 정도로 며칠을 걸어도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모를, 사방을 둘러 보아도 똑같은 지평선을 갖고 있는 무책임한 대지를 보면서, “여긴 참으로 고독한 곳이구나. 나는 참으로 멀리까지 왔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는 내겐 이란고원보다 더 아득하다. 조그만 땅에 사람들이 몰려 살지만, 천수(千手)∙천안(千眼)을 가지고, 여의자재하여 세계사를 자신들의 뜻대로 비틀고, 세상을 멋대로 주무르면서,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지하철에 오르자, 맞은 편 자리에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은 젊은 여자가 다리 사이에 캐리어를 끼고 앉아 있다. 그때 너무도 뻔한 일상이 경도 135도 서쪽 지점으로 잠시 이동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이 별로 새로울 것 같지 않았다. 여자는 중간에서 내렸다. 그녀의 여행이 즐겁고 알찬 것이 되기를 빌었다. 종점에 도착했다. 우르르 내리는 런던사람들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예약된 숙소에 전화를 했고, 사람이 마중 나왔다.

방을 정하고, 피로를 지우기 위하여 공항에서 산 조니 워커를 들이키고 그대로 뻗는다.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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