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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ostic Epicurian(영지적 쾌락주의자)이자, 고리끼 소설의 서기관처럼 살면서 -아니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감옥 생활보다 못한 생활을 한다고 느끼면서 ? 도 정신적 백수이다. 그러니까 자유는 구속된 시간보다 가치가 없더라도 무한한 시간과 등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는 못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자유란 시간과 돈의 혼인이다. 그래서 자유는 민주적인 가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산물이며, 상당히 부르조와적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시간만 있거나, 돈만 있거나, 시간과 돈을 다 가졌거나 둘 다 없는 자들이 있다.

영화란 극장에서 비디오가 되면서 그 은밀한 현혹시킴을 상실하고 천박한 것이 되었다. 가난하고 고독한 자들이 쉴 수 있는 어둠과 침묵에 휩싸인 이본동시상영의 동굴에는 낡은 카페트에서 올라오는 오래된 습기와 여기 저기에서 뿜어대는 담배연기, 무수한 사람들의 손길이 스쳐지난 좌석의 공단 감촉, 이런 것에 적응하면서 매료되기 시작하면 화면이 보다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낡은 필름의 스크래치 비가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은빛 스크린 저 너머로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빛과 환영일 뿐이었다. 그 빛 속에 몰입되면서 명멸하는 짧은 시간동안 자신이 고독하다는 것도, 돈이 없다는 것도, 굶주림에 대한 집요한 기억들을 상실한다.

비디오가 나오자 자신의 상실을 통한 영화에의 몰입은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이들은 영화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영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타는 아틀란타의 석양 속에 버틀러 선장의 폭력적인 키스 속에 무너져 내리는 스칼렛, 카사블랑카 공항에서 은빛으로 촉촉히 젖어오르는 잉그리트 버그만의 눈동자, 어린아이들의 영화인 공룡 백만년에 등장하는 라켈웰치의 관능적인 두다리 등이 영화의 모든 것이자 대부분이었다. 감독의 이름과 음악 등은 관객들에게 부차적인 것이었고, 개봉관에서 영화가 재빨리 상영된 후 변두리의 이류극장에 까지 흘러내려오기를 애인 기다리듯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비디오가 나오고 영화가 재미없어지면서, 영화는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지식의 차원으로 변모되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비디오로 보기 시작했고, 단순히 킬링타임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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