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의 편지

The Pillow Book ; 枕草子

마쿠라노소시(枕草子)에는 ‘다음날 아침의 편지'(後朝便紙)라는 것이 나온다.

밤을 함께 보내고 새벽에 돌아간 남자가 보낸 편지다.

몸을 섞은 후 서로의 체취가 사라지기 전에 편지를 곧바로 보내지 않거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의 관계가 끊어지고 만다고 책의 귀퉁이에 쓰여 있다.

첫날 하루에 한하는 것인지, 관계를 가질 때마다 편지를 보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부언되어 있지 않다.

몸보다 글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대…

開…

마쿠라노소시는 1001년경 초고가 세이 쇼나곤(淸 少納言)이라는 궁녀(女房)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무라사키 시키부(紫 式部) 또한 같은 뇨보(女房)로 겐지이야기(源氏物語)를 쓴다. 경쟁자이기도 한 이 두 사람이 쓴 가나문학은 헤이안 시기의 여성문학을 대표한다.

그러니까 자국 글자인 가나(假名)가 이미 광범위하게 민중에 퍼져 있었고, 자국 글자를 바탕으로 일본 고유의 문화가 융성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쿠라노소시는 10~11세기의 글이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특별한 능력에 해당되며, 먹을 갈고 붓으로 종이에 편지를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아주 호사스러운 행위라는 것을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몸과 말이란 부락민과 같은 천민도, 일반백성도 가지고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지만, 글이란 아랫 것들이 어쩔 수 없는 고귀한 것이며, 편지에 남긴 흔적이야말로 시간이 감에 따라 흘러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몸보다 글을 나누는 것이 당시 倭의 귀족 상류층에는 더 중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조 초기에 사서 중 가장 얇은 대학과 중용의 가격은 쌀 20~30말이었다고 한다. 이는 논 두세마지기에서 나오는 소출에 해당하며, 머슴의 1년치 세경의 2~3배에 해당한다. 가장 량이 많은 맹자의 경우 지금의 시세로 치자면 80만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선비가 사서 전질을 들여놓는다면 150만원 정도가 들고, 삼경까지 세트로 준비하자면 300만원이 든다. 편지를 한 장이란 한 식구의 한끼에 해당되는 비용이 든다.

This Post Has 10 Comments

  1. 위소보루

    지금도 글로서 우리의 감정을 나누는 그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시대였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처음엔 답답하겠지만 적응이 될테고, 보다 서로에게 묵혀둔 진심을 말하기 쉬울테고 서로에게 상처를 덜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1. 旅인

      어렸을 적, 새소년이나 사이언스라는 잡지를 읽으면, 문명이 발달되면 여가시간이 많아지고 여유롭고 풍요로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지요. 그런데 왜 시간은 더 빨리 째깍거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받아보았던 편지에서 한번도 상대의 진심을 읽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보낸 편지를 읽고 상대 또한 제 진심을 들여다보지는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상대편의 진심은 지금 세대의 이메일이나 메시지에 더욱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명료함이야말로 진심의 지속력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하는 반면, 상대편의 진심을 헤아리기에는, 모호하지만 기나긴 문장, 공들여 쓴 것이 분명한 글씨, 그리고 짐짓 섞어 쓴 유식한 단어들, 그리고 편지 속에 간헐적으로 보이는 자신의 이름 따위의 의례적인 것들, 편지를 쓰기 위하여 보냈을 시간들, 그리고 고쳐쓰기 위해 밤새도록 찢어버렸을 종이들, 그리고 보낸이로부터 소유권이 자신에게로 이전된 사연. 이런 것들이야말로 내용을 능가하는 진심이라는 것을 모른 채, 받은 편지 속에서 상대의 마음을 찾기 위하여 읽고 또 읽는 행위야말로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 이것들이 옛날의 편지가 지녔던 위력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2. 아톱

    말은 곧 글이고 글은 곧 마음이니 몸에 대비되는 게 글이겠죠.
    저 또한 그런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글이라 해도 마음을 나눈다기엔 그 소요시간이 너무 짧은 듯합니다.
    문자와 톡같은 것은 아무리 읽어도 마음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시간이 흐를수록 편지와 같은 손글씨가 그리워지는 이유입니다.

    1. 旅인

      뜸들이다라고 상대의 편지를 읽고 다시 답장을 하는 그 시간들 속에서 뭔가 설익은 것들이 뜸이 들고 제 맛(의미)을 내게 되겠지요. 요즘같이 쉬익하고 메시지가 날라가고 까똑까똑하며 사람을 놀래켜놓고서는 “이것 안하시면 후회하십니다”라니…
      편지도 조금 있으면 사라지고, 청구서, 상픔카달로그, 고지서 등 속만 남게 되겠지요.

  3. 후박나무

    저도 카톡으로 ‘즐’ 한마디 남기는 세태보다는
    편지로 느리고 깊게 소통하는 시대가 지금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ㅠ

    1. 旅인

      말과 글을 정보냐 소통이냐 기록이냐 등으로 인수분해를 하다보면 결국 이것을 아우르고 있던 마음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습니다.
      카톡과 같은 조각난 글로 전할 수 없거나 잘못 전달될 마음과 감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이모티콘이 나왔다는 것도 그 맥락인 것 같습니다.

    2. 후박나무

      “인수분해 하다보면 마음이 사라져버린다…”를 읽는 순간 아차 하네요.
      오늘도 여인님께 배워가는거 같습니다.

  4. ree얼리티

    아톱님의 블로그에서 넘어넘어 왔어요.~~
    편지에 대한 그리움을 더 타는 사람이네요…
    그 그리움을 이렇게 젊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시니 보기에 좋네요.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엄마예요.
    이사짐을 정리하다 아이의 편지와 제가 모은 편지가 나왔어요.
    소중함의 차이는 마음의 무게란 걸 느끼면서 더 똑똑해진 아이들에게 정서를
    알려주는 일, 그땐 그랬지로 일축해 버리기에 못내 아쉬웠는데…
    이런 글을 함께 나누는 분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일전에 들어왔다가 긴 글 쓰신 것 보고 인생이 길다는 생각을 했네요.
    그 긴 인생에 서로에게 마음 나누는 일은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면 좋겠어요.~~

    1. 旅인

      반갑습니다.

      저도 아톱님의 블로그에서 님의 댓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깥에 있었던 탓에 답글은 달지 못하고 님의 다른 포스트를 읽어보았습니다. 글이 맑고 밝아 괜스레 그림자가 햇빛 아래에서 서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엄습했습니다. 제가 쓴 글들이 불투명하고, 음울하며, 가슴보다 머리에 가까우면서도 명료하지 못하다는 것을 비춰볼 수 있는 글들이었습니다.

      님의 블로그에 갔더니 마침 20문 20답이 걸려있었습니다. 저만 몰래 훔쳐본 것 같아서 죄송했습니다. 4년전에 받았던 거의 비슷한 릴레이가 있더군요. 참고로 http://www.yeeryu.com/829 입니다.

  5. ree얼리티

    여인님의 릴레이 잘 봤네요.~~
    서로를 알아간다는 건 관심이네요. 주고 받는 글들에서 정이 느껴져요.
    언젠가 아이에게 사람은 함께 모여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반기를 들었어요.
    5명 이상은 안됀다네요. 흩어나야 서로 할 일을 한다고, 모여 있으면 오히려 군중심리로
    좌지우지하면서 일이 핵심을 잃어버린다네요. 듣고 보니 그도 맞는 것 같아요.
    블로그를 하면서 괜찮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이런 분들 다 어디 계신가 했더니
    여기 다 모여 계신것 처럼요.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처럼 모아놓고 훈화하시는 분보다
    원시시대 사냥꾼처럼 모여앉아 경험담을 전해주는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아무쪼록 사냥꾼의 역할에 적합하신 여인님의 여정이 닉네임에도 묻어나네요.
    좋은 사냥꾼들이 모이면 아이들의 부정적인 생각도 사라지겠죠.
    마음을 열고 마음을 모으려 하고 있어요. 댓글이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는 것 같아 힘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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