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불화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

– 김수영의 <거미> 1954.10.05 –

 

이 詩 아래 어디쯤인가에 강신주는 “(시인들에 반하여) 일반 사람은 관습이나 교육에 따라 사물이나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세계와 불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써 놓았다. 불화하지 않기 위해서 찌질한 것이 나의 용무일지는 모르지만, 더욱 환장할 일은 이놈의 세계와 화해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깐 채,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삼·사천원하는 점심을 먹다가, 오늘은 밖으로 나가 오천원 짜리 점심을 사 먹는다. 맛있다. 천원짜리 한 두 장이 맛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찌질함에 놀랐고,

서글펐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김수영의 <풀>의 일부 1968.05.29 –

 

도서관 창 가에서 바라 본 김수영의 시절이 아득하다.

This Post Has 3 Comments

  1. 旅인

    김수영 詩의 놀라운 점은 자신의 찌질함에 대한 처절한 인식을 통해서 더런 세상 위로 진실과 정의를 밀고 나가는 힘이다. 하지만 자신의 찌질함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란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그래서 풀은 눕고 드디어 울 수 밖에 없다. 그는 시인이 아니라, 투사다.

  2. 후박나무

    고등학교 때 배운 <풀>이 제가 아는 김수영 시인의 전부네요.ㅠ
    하지만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김수영 전집을 통해
    이 분을 좀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1. 旅인

      저는 시에 대해서 거의 젬병인 수준입니다. 그냥 감각적으로 좋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이고 김수영씨나 그의 시도 모르지만, EBS ‘명동백작’을 보고 김수영씨가 참으로 고단한 생활을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