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법정스님의 책은 처음이다.

글은 온유하지만, 청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구의 강골을 느낄 수 있다. 의지가 나약하다면 어찌 욕심과 번뇌를 억누르고 청정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집착을 덜어내기 위한 수행방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사적 호사라고 생각했고, 그의 글은 구업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다른 책을 몇권 더 읽어보아야 겠다.

참고> 오두막 편지

This Post Has 9 Comments

  1. frenger.me

    저는 무소유만 읽어보고서는 책 내용 자체만 생각해봤었는데..
    역시 시야가 넓으신 거 같아요. ^-^

    1. 旅인

      아닙니다. 전에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거처하시던 곳의 탁자 등속을 보고서 저것들의 값이 얼마나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신영복 선생께서 법정스님이 아닌 어느 스님의 무소유에 대해서 방대한 사찰 경제가 없는 가운데 무소유한 삶이 가능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과연 쪽방촌의 노인들에게 무소유한 삶은 무슨 의미이며 그것을 강요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법정스님께서 추구하는 무소유란 갖지 아니함이 아니라, 사물과 나 사이의 연기의 고리를 차단함으로써 집착과 번민의 뿌리를 끊자는 수행방편의 하나이기에 논리및 방편적 유효성은 갖겠지만,
      저자거리에서는 배곯고 서러운데 무소유를 말씀하니 불교가 산문만 머물고(上求菩提) 저자거리(下化衆生)에 떠돌지 못하는 근본원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 흰돌

    법정스님의 책은 <맑고 향기롭게>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요^^
    지금 읽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비구의 강골’, ‘수행 방편’, ‘문사적 호사’, ‘구업’
    이런 표현들이 시선을 사로잡아요+_+

    1. 旅인

      사실 理判(수도승)은 묵언정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글이란 스님의 몫이 아니라 글쓰는 이(文士)의 것이어야 한다는 고집스런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3. 후박나무

    좋게 생각하면 스님의 구업이
    어지럽고 무거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가르침과 위안을 주었지 않았나해요…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좋게만 볼 수도 없는 것 같고….

    결국은 법정스님이 남긴 글을 우리가 잘? 받아들여야 하겠죠…
    스님보다는 스님이 남긴 글에, 그리고 스님이 남긴 글보단 법(진리)에 의지한다면….

    1. 旅인

      말하여 질 수 없는 절대적 진리(離言眞如)로 중생을 이끌고 제도하기 위해서는 말에 입각한 상대적 진리(依言眞如)를 방편적으로 차용해 쓸 수 밖에 없다는 한계란 어쩔 수 없겠지요.

      제가 보기에는 법정스님은 우리들보다 불교계에 하나의 스승으로 큰 덕을 남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추기경님과의 사이에서 보여주듯 이종교 간의 융통화해하는 방식과 열린 사고를 많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제 세치 혀로 스님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정구업진언을 외어 입이 지은 죄를 씻어야 할 것입니다.

  4. blueprint

    다른책들을 읽어보신후 여인님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살짝 트랙백 올리고 갑니다.

    1. 旅인

      트랙백 감사합니다.
      다른 책도 한번 읽어보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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