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이 책을 옮긴이(송의경)의 말의 맨 끝에 프랑스 아카데미 공쿠르 회장인 에드몽드 샤를루의 찬사인지 헌사가 실려있다.
“키냐르의 책 한권을 읽는 것은 다른 책 1000권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에드몽드가 말한 다른 책은 어떤 책인가는 별개로 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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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72쪽에 키냐르는 함정을 하나 파놓았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속아넘어 갈 그런 함정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 동화는 나의 비밀이다.”
9~126쪽에 불과한 키냐르의 본문 중 72쪽에서 이 문구를 발견한 독자들은 멍청하게도, 키냐르의 비밀을 탐색하기 위하여, 눈에 불을 켜고 남은 54쪽을 읽은 뒤, 다시 앞에서 부터 책을 읽는 등 키냐르의 비밀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공쿠르의 회장인 에드몽드도 비밀을 찾기 위하여 천번은 못되어도 골백번 쯤 읽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냐르의 비밀을 알아내서 어쩌려고? 본인 자신의 비밀이나 거짓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키냐르의 비밀을 알아서 뭐에 써먹을 것인가?

키냐르가 마치 언어학자처럼 파롤 등의 용어를 구사하는 만큼, 언어학으로 부터 프로이트 심리학을 재구성해나간 자크 라캉의 흉칙스런 괴물, 라멜라(lamella)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라캉은 아메바처럼 생긴 어떤 생명체처럼 그리지만, 인간의 심리 속에 그런 것이 들어있을리가 만무하다.

“라멜라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고집스럽게 자신을 주장할 뿐이다. 그것은 실재가 없이 순수한 허울 만 있는 것이며, 텅 빈 내부를 덮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로, 그 지위는 순전히 환영일 뿐”이라고 술라보에 지젝은 풀이한다.

그런데 ‘비밀’처럼 라멜라의 속성과 일치하는 것도 없다. 비밀은 그 비밀을 아는 순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비밀이라는 것이야말로 막강한 힘으로 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비밀을 알게 될 때 더 이상 비밀은 없고, 다양한 추측과 무성한 기대들로 뒤덮힌 허울이며 그럴듯한 환타지였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그 비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을 기억하는 그 키냐르의 비밀은 바로 ‘기록, 글쓰기’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수능과 토플 등 제도권의 시험들이 남긴 지독한 부작용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의 거의 대부분은, 무지 혹은 미지수로 남아있다.

거품이 잘이는 합성세제를 빨래감에 풀어넣듯, 키냐르는 “이 동화는 나의 비밀이다”라고 72쪽에 은근슬쩍 집어넣은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들의 상상력은 키냐르가 생각조차 못했던 허울(거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키냐르는 마치 동화를 풀이하는 에세이와 같은 ‘메두사에 관한 소론’을 통해서 하나의 허울(Fiction)의 가능성을 만들어 냈고, 비밀이 풀리지 않는 한 그 허울은 하염없이 자신을 주장하며 존속하며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라는 이 책을 그럴 듯한 무엇, 청동거울과 그림자로 바라보아야 할 언어와 침묵에 대한 수상록으로 기억하게 할 것이다.

여기에서 나도, 비밀이 아닌 동화 하나 쯤은 남겨야 할 것 같다.

한 이십년전 쯤 꿈 속에서 세상의 모든 진실이 담긴 16자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 16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 (꿈 속에서) 삼백년동안 외우고 또 외웠다. 하지만 깨어나자 단 한자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런데 꿈과 현실을 넘나들 수 있는 ‘글쓰기’란 가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