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오후의 훈풍

북회귀선 위에 머물던 태양이 마카오의 포석 위로 기울어가던 오후 네시쯤, 그는 8월의 열기를 감내하기로 하고 세나도 광장의 한쪽 구석의 달구어진 계단 위에 앉았다.

전날 저녁에 이 곳에 당도한 그는, 오전 한나절 동안 홀로 낡은 도시를 배회했다. 도시라고 하지만 작은 이 곳에는 볼 것은 별로 없었다. 이끼에 새카맣게 탄 담벼락을 따라 길을 거닐었고, 아침 이슬이 마르고 도시가 열기에 휩쌓일 즈음에 생폴 성당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골목은 좁고 그늘이 져 어두웠다. 강에서 흘러온 퇴적물이 바위덩이에 엉켜 만들어진 좁아터진 섬에서, 정원을 갖는다는 것은 부유한 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은총이었다. 이 곳을 둘러싼 자연이라고는 대륙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섞인 누런 바닷물과 그 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다였다. 길거리에서 볼 것이라곤 식민지시대에 회벽으로 지어진 건물과 야자수나 파초, 벵갈용수의 그늘 밖에 없었다. 건물들은 아이보리라고 하기에는 노란색이 더들어갔거나 약간 빠진 색으로 회칠되어 있어, 외인부대의 사령부와 병영이 늘어선 느낌이었다.

온통 그늘에 뒤덮힌 집들의 문틈으로 짜디짠 양념냄새가 흘러나왔다. 문들은 굳게 닫혀져 있어서 주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는 없었다. 50만의 주민이 사는 황톳빛의 척박한 섬 위로 도박과 관광을 위하여 외지인이 덮쳐드는 이 곳은, 감당하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자연이란 사치에 불과한 이들이 맞이하는 쾌락이란 인공적인 것들, 돈벌기나 도박과 같은 오락 아니면 메마른 영혼을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 안식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 저녁이 오고 관광객들이 광장이나 호텔로 돌아간 시간, 굳게 닫혀져 있던 낡은 문들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어른 아이할 것없이 나와 잡담을 하거나 장난으로 골목은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그는 몇개의 골목을 기웃거린 끝에,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성당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성당은 언덕과 높은 계단 위에 성채처럼 하늘을 가리며 불안하게 서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석주와 박공, 그리고 조각상들로 돋을 새김이 된 벽의 전면에 난 문을 지났다. 문을 지나자 그늘에 찌들은 천장과 바닥에 깔린 침묵, 신도들을 위한 긴 의자나 성모상이나 십자가 대신 텅빈 공간이 하늘을 향하여 열려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과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는 오목한 공간 속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의 애원과 갈구가 깃들었던 곳이자, 영혼의 분비물들이 높다란 성소의 그늘 아래 머물던 그곳에서, 그가 맞이한 것은 폐허 위를 채운 새들의 지저귐과 높히 자란 나무의 녹음,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었다. 성당의 그늘과 묵송 그리고 궁륭을 울리던 성가 속에 차곡차곡 쌓여 무겁고 끈끈한 갈구가, 인간을 짖눌렀던 영혼이라는 것의 무게가, 폐허 위에 내려앉는 뜨거운 햇빛에 바싹 말라 바람에 흐트러진 것 같은 아늑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것이야말로 폐허가 간직한 관대함이었다.

성스러움은 물론 자신이 깃들어 있는 속된 생활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필요한 것은 대지를 느끼는데 근원적인 것, 약간의 시간과 한줄기의 햇빛, 신선한 공기, 자신의 삶에 대한 갈증이었다.

헐벗은 영혼들이 빛과 공기 속에서 자유를 얻었던 그 날, 성당이 타버린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전면에 벽조차 남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꽃이 피거나, 속된 삶으로 뒤덮혔을 것이었고, 신앙이나 영혼에 대해서 침묵했을 것이다.

그는 섬의 가장 높은 곳인 요새로 올라갔다. 사방을 둘러본 후, 마카오가 내륙에 가늘게 이어진 반도라는 것과 대륙의 눈물과 같은 타이파 섬과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겨우 기억했다. 그는 대륙과 이 도시 사이가 가로막혀 있던 탓에 이 주강 델타의 끄트머리에 이어진 조그만 이 땅을 그만 섬으로 기억하고 말았다.

정오의 태양이 머리 위를 스쳐지나는 것을 눈을 찌푸리고 바라본 후, 언덕을 터덜터덜 내려왔다. 습기는 사라졌지만, 더웠다. 낮은 언덕은 흘러내려 세나토 광장에 다시 그를 토해냈다.

그에겐 베풀어진 것은 지루한 시간과 한낮의 열기였다. 포르투칼 음식점으로 올라가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창 가에 앉아 시간을 들여가며 식사를 했다. 포르투칼산 포도주는 떫은 맛 사이로 은밀한 달콤함을 간직했다. 시간이 남아 광장을 다시 가로질러 이발소에 들어가 대화라곤 하나도 통하지 않는 노인에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했다.

이발소에서 나왔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뚜렷해지자, 금빛으로 서쪽을 물들이는 오후의 느긋한 햇빛 그리고 그림자로 인해서 또렷해지는 건물의 창과 격자들, 물결무늬의 광장 위에 기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고요한 침묵 속으로 용해되고, 다시 잃어버렸던 열정처럼 다가왔다.

아무런 아쉬움없이 그 하루를 소비하기로 하고, 찬란한 석양에 자신의 얼굴을 맡긴 채, 나른한 몸을 계단 위에 부려놓았고, 낮동안 달구어진 계단의 온기가 자신의 척추를 통하여 가슴까지 번져오르는 것을 환희와 같은 기분으로 맞이했다.

오후의 빛들은 건물의 끝에서 차츰 미미해지며 식어갈 것이고 어둠이 내습을 하여도 또 다른 곳으로 갈 이유는 없으며, 또 다른 하루가 아직도 그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기적같았다. 가족들은 멀리 서울에 있고, 자신 만이 고독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 해가 기울고 나면 광장과 거리의 모퉁이에 가로등이 켜질 것이다. 어둠이 매춘부처럼 가슴에 와 안기면, 모르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웃음과 남중국을 감싸고 도는 저녁의 훈풍에 휘날리는 도처에서, 외로움에 흠뻑 젖어들수 있으며, 아직도 남은 미지근한 열정에 도취되어 누구에겐가 편지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광장 한쪽에서 고적대의 트럼펫이 울렸다. 기우는 태양에 새카맣게 타오르다 마지막 푸른 빛으로 멀어져가는 하늘 위로, 비둘기 떼가 푸드득 공기를 찢으며 날아올랐다. 그러자 최초의 시간이거나 종말의 시간을 맞이한 것처럼 지는 해를 그는 바라보았다.

∗ 베이스 : 마카오의 이틀

마카오澳門의 이틀

이년전 여름 마카오를 들렀을 때 한가함을 만났다. 그때는 그 한가함이 허구가 아닌가 했다. 이번에 토요일과 일요일을 빌어 나 혼자 다시 아오먼(澳門)을 왔는데 한가함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내가 묵은 남유에호텔(南월酒店)은 페리부두(港澳碼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마카오 한쪽 구석의 형편없는 호텔이어서 내 기분을 잡치게 하였다.

며칠을 숙면을 취하지 못한 까닭에 한숨을 자려고 하다 낮잠도 오질 않고 하여 호텔 앞에서 호텔 리스보아까지 난 우중충하고 심드렁한 도로인 Avenida Do Dr Rodrigo Rodrigues(羅理基博士大馬路)를 따라 걸었다.

길모퉁이에 포르투갈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그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북회귀선의 상공으로 7월의 태양이 선회하는 오후 3시, 폭양은 수직으로 길거리에 쏟아져내리고 나른한 가로수들이 한가한 도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상점의 유리와 간판들이 먼지로 퇴락되어 있다. 질서없고 나른하며 오후 3시의 햇빛과 그림자—이런 것들이 혼합되더니 길거리로 한가함이 소리없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걸어 Leal Senado Square Correios(議事亭前地)에 갔다. 이 광장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노란색, 하늘색, 오렌지색의 파스텔톤 색조의 건물 위로 7월의 파란하늘이 내려앉는다.

볕을 피할 겸 광장 옆에 있는 성당 안에 들어가 벤치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마음이 편안하다. 광장의 소음이 안으로 스며들어도 성당 안은 자신의 고유한 침묵으로 조용하다.

바울성당의 폐허(Ruinas de S.Paulo)를 찾아 또 걷는다. 길을 잘못 들어 大包臺 밑의 주택가로 들었다. 길은 그림자와 습기 그리고 꾀죄죄함이 있었다. 삶은 그 안에 늘 꾀죄죄함이 있다. 꾀죄죄함이 깊을 수록 삶은 보다 단순해진다. 그러나 그 꾀죄죄함이 싫어 사람은 성스러움과 영광을 만든다. 그 예가 여기로 영광을 상징하는 대포대(Fortalezado Monte)가 있고 바로 아래 바울성당의 폐허, 그 아래로 서민들이 사는 그림자와 습기 그리고 더위에 휩싸인 꾀죄죄한 거리가 있다.

중앙대포대를 넘어 바울성당의 폐허에 갔다. 포대의 앞은 고층건물에 가려져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의 폐허에서는 두말할 것 없다. 이전에는 그들은 남지나해를 바라보면서 적을 맞이하고 순풍을 기원하기 위하여 이들을 만들었으리라.

폐허! 바울성당은 결코 폐허가 아니었다. 폐허 속에는 애잔함이라든가 회고할 과거의 영광이 없다. 본래의 실용성을 상실함으로써 기념비가 되어버린 폐허였다. 만약 건물이 화재를 겪지 않고 성당으로 존재하였더라면 그 앞은 사제와 신도들이 저자거리를 이루고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망설임을 지불하고서는 모자를 벗고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안을 들여다보아야 했을 것이다.

폐허가 됨에 따라 성당 안은 공허해지고 권위는 화재에 소실되고 자유로운 대기 속으로 열려져 있다. 단지 성당의 전면 만이 높다란 계단의 저 아래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미 제단과 지성소는 사라졌다. 그러자 성스러움은 허구로 변했다. 단지 과거에 있었던 영광의 흔적으로 전면 벽의 부조와 박공 속에 놓인 동상, 그리고 화강암의 황금분할, 조각된 기둥들이 남아있고 그 아래로 성·속을 가르는 높다란 계단이 속세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벽에는 해골과 괴물이 돋을 새김되어 있다. 죽음과 공포는 신앙의 반석인 것이다. 그러나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성당마저도 사멸의 이름다운 그림자 속으로 침몰 중이다.

정신적으로 진화되지 않은 인간에게 불멸이란 하나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는 영혼의 방황, 추잡한 사념들, 불면의 밤—인간들이 취하는 쾌락은 반딧불과 같은 짧은 명멸. 불멸이란 끝나지 않는, 밤이 없는 영원히 계속되는 오늘과 같은 것.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없어 과거와 미래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 불멸이란 사악한 저주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가 옳다. 「지금 여기에 살 수 있는 자는 해탈과 함께 불멸에 이르며 자유를 얻으리라.」

폐허 위로 시간이 조금씩 아름다움을 음각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 자리가 완전한 폐허가 된다면 바로 그 직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계단의 턱에 앉아 폐허를 본다. 그 턱은 낮의 햇볕에 달구어져 온돌처럼 따뜻하다. 나른하다.

다시금 의사당 앞의 광장으로 내려왔다. 광장에서는 마카오의 중고등학생으로 된 취주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오후 네다섯 시의 시들은 햇볕이 뉘엿뉘엿 서쪽으로 향할 때 무심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란 편안한 쾌락이었다.

심심하기도 하여 광장 옆의 이발소에 들어가 이발을 하였다. 이발사는 할아버지였는 데 내가 그들의 말을 모르자 상당히 난감해했다. 그러나 이발을 정성껏 해주었다.

이발소에서 나왔을 때 이미 연주는 끝나고 다른 팀이 연주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호텔로 돌아섰다.

가는 길에 호텔 리스보아를 들렀다. 호텔은 카지노와 연결되어 있었다. 값비싼 호텔에 걸맞게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반짝이는 구리장식들로 치장된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늘씬한 아가씨가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중국에서 돈을 벌러 내려온 매춘부들일까? 사람들은 카지노 입구에서 서성거리거나 웃음을 띠고서 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포도주를 사기 위해서 호텔 안의 상점에 들어섰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다음날 호텔 측과 계산 상의 문제로 불쾌한 느낌을 갖고 호텔을 벗어났다. 호텔 리스보아에서 차를 내려 다시 어제의 길을 거닐다가 옆으로 살짝 빠졌다. 거기에 대리석으로 만든 팔각정(Chinese Library라고 지도에는 되어있음)이 있는데 그 안에는 사람들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속내의 차림의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보자 중국과 포르투갈이라는 문화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각정을 지나자 공원이 있고 핑크색 벽을 바탕으로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를 끼고 계단을 올라가자 과거의 포르투갈 주둔군의 병영이 있었다. 병영의 마당에서는 호텔 리스보아가 나뭇잎 사이로 보였다. 그래서 거기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 익숙지 않은 것은 단순할지라도 그리기가 어렵다. 그림을 그리려니 한가한 마당에도 사람이 오고 가고 잠시 지나는 비가 내렸다. 그래서 대충 그리기를 마치고 의사당 앞의 광장으로 갔다.

일요일이라 광장의 성당에 미사가 있으려니 했으나 미사는 없었다. 미사가 없는 성당은 더 이상 성당으로서의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또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했다. 그러나 무수한 사념들이 혀를 내밀고 떠들어댈 뿐 진정한 묵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성기도를 하고 아버지 하나님하며 울어 예음으로써 자신의 사념 속에 깃든 무수한 소음들을 잠재우려 하는 지도 모른다.

광장을 지나 어제 보아두었던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주문했다. 포르투갈 음식인 데 백포도주와 곁들여 먹으니 맛이 훌륭했다. 그만큼 어제 호텔식당의 뷔페의 음식은 너무나 형편없어 억울했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걸어 호텔 리스보아로, 거기에서 택시로 페리부두로 가서 홍콩으로 가는 배를 탔다.

느슨한 마카오와 비교할 때 깔끔하기 이를 때 없는 홍콩으로 향하면서 그다지 내키지 않는 점은 이 세상에 배금주의자들의 땅이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홍콩이야말로 그들의 속성과 그들의 산물이 넘쳐흐르고 생활의 꾀죄죄함을 뒷골목 쓰레기터에 내다버린 만큼 비정하고 스테인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삶을 이어가는 나의 꾀죄죄한 곳이라는 점이 그 곳으로 가기를 저어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

태풍 1호 발령, 홍콩의 앞 바다가 모처럼 물보라와 거친 파도를 드러내었다.

2000년 7월15일과 7월16일의 여행
2000년 7월 17일 내다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