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하는 책들…

Books/capture

지난 주 목요일인가 도서정리를 해주는 무료 프로그램이 있어서 다운을 받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죽치고 앉아 도서정리에 매달렸다.

이 프로그램은 ISBN 넘버를 쳐 넣거나, 컴퓨터 카메라로 바코드를 스캐닝하면 책의 표지와 제목, 저자, 역자 및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자동으로 등록된다. 물론 데이터는 아마존과 같은 곳에서 제공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책은 알라딘이나 다음의 도서정리 플러그 인을 깔면 데이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임으로 이틀동안 시간을 소모한 까닭은 책이 많아서라기 보다, 우리나라에서 제공해주는 데이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책과 학습지, 잡지를 제외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587권이다. 전에 책꽂이의 한 칸에 들어가는 책의 권수를 가지고 측정해보았더니 500권 정도였는데, 당시보다 시간이 지났고 추가로 구매를 해서인지 약간 더 많다.

분당 1권씩 등록이 된다고 하면 10시간이면 작업이 끝나야 한다.

1. ISBN No.로 본 우리 출판계의 현 주소

ⓐ 영문판의 경우, 한두권만 빼고 ISBN 넘버로 등록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등록에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책에 대한 소개도 잘되어 있고 각종 데이타도 적절하게 제공된다. 아마존이 e-판매를 위하여 관리를 잘한 탓 같다.

ⓑ 반면 우리 책의 경우, 검색율이 절반을 밑돈다. 알라딘이나 다음의 정보를 끌어오기 위하여 오히려 해당 싸이트로 가서 책 제목을 친 후, 도서를 골라 ISBN 넘버를 거꾸로 조회해야 했다.

▷ 일부 도서는 검색조차 안된다. 검색이 되는 경우는 ISBN 넘버가 모두 바뀌어 있다.

넘버를 부여하는 국립중앙도서관이 ISBN 관리를 개판으로 했거나, 출판사에서 귀찮지만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에 팔아먹기 위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ISBN을 부여했고, 대형서점 또한 ISBN 넘버에 슈퍼에서 상품의 판매 및 재고관리용으로 쓰는 바코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러다 보니 관리부재로 ISBN 넘버가 꼬여있는 것이다.

▷ 게다가 알라딘이나 다음의 데이타를 보면, DB에 대한 기본개념조차 없는 것 같다.

저자, 삽화가, 역자, 편집자 등의 데이타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나, 저자란에 함께 등록해 놓았다. 도서분류 또한 표준분류에 입각하지 않고 자의적이다. 이런 데이타는 없는 것이 났다. 데이타를 분해해서 제 자리에 갖다놓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게다가 책에 대한 소개는 광고용 멘트에 불과해서 있으나 마나다.

▷ 판(版)과 쇄(刷)에 대한 인식, 즉 출판일을 어떻게 부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책의 판은 책의 내용의 수정, 쇄는 몇번째 인쇄를 했는가를 의미한다. 외국의 경우 초판에서 2판, 3판으로 중판되었을 경우, 초판과 다른 Second Edition이라고 표지에 명시한다. 우리나라는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책의 초판과 중판은 엄연히 다른 책이라는 인식은 출판사는 물론 소비자도 함께 가져야 한다.

판본에 대하여 둔감한 우리나라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어왔다.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변경, 국한문혼용에서 한글전용, 맞춤법 및 띄어쓰기의 잦은 변경 등으로 출판업계 및 문교정책 의 혼선으로 불가피하게 판이 바뀔 수 밖에 없는 점이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출판업자들의 양식없는 짓거리다. 우리 출판업자들의 뻥튀기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의 원서는 한권이다. 처음에 이 책은 두권으로 번역되었다가, 어느 날 세권으로 둔갑한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처음에는 두권이었다가 판매가 시들해지자 한권으로 합권하여 보다 싸게 판다. 그리고 활자와 종이를 바꿔서 문고판을 큰 책으로 만들어 판다. 이러다 보니 장사 속에 판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판이 바뀌다보니 나처럼 책을 낱권으로 사서 보는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전에 태백산맥을 7권까지 읽다가, 8권을 사서 보는데 갑자기 내용이 튀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를 까보니 판이 다르다. 다행히 오래된 판이어서 서점에 가서 판이 틀리다고 바꿔달랬더니, 서점의 주인이라는 작자가 “판이 다르다는 것이 무슨 말이오?” 하고 묻는다. 그래서 설명을 해주고 반품을 하고 책을 새로 받는데 몇일이 걸린 기억이 있다.

외국의 경우는 중판을 잘하지 않는다. 이는 한번에 잘만들어 오래 오래 팔아먹겠다는 뜻이다. 불가피하게 판이 바뀔 경우, Second Edition이나 Third Edition으로 책의 겉 표지에 대문짝 만 하게 표시를 하고 책이 어떻게 달라졌음을 선전한다. 사전과 같이 신규어휘 때문에 중판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일어사전인 코지엔(広辞苑 岩波書店刊)의 경우 2008년에 6판을 내놓았을 때, 이를 사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할 정도로 5판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판에 이렇게 중대한 차이가 있음에도 우리의 인식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이는 대충 팔아먹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책은 내용은 빈약한데, 호화양장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 이외에 중문판 책의 경우, 도서검색 플러그 인을 찾을 수 없어서 완전 수작업을 했다. 나중에 찾아서 등록을 할 계획이다.

2. 내가 지닌 책들의 현 주소

보유하고 있는 책은 587권이다.

      한글       중문       영문       일문         계
시와 소설        109           9         14           2        134
인문 학술        303         78         29           4        414
    기타          16           5         17           1          39
     계        428         92         60           7        587

주) 기타는 학습서, 사전, 여행가이드, 도서(지도 그림책 등) 등 실용서를 의미함.

① 소설류 : 요즘 소설은 읽지 않는 모양이다. 총 106권 보유, 이 중 삼국지 만 25권 1황석영 11권(부록포함), 이문열 10권, 영문 2권, 중문 1권, 삼국연의연환화 1권(중국만화로 60책 한질로 되어 있음) , 태백산맥 10권, 김훈의 소설 7권, 움베르토 에코 소설 6권, 보르헤스 전집 5권, 홍루몽 4권 2중문 3권, 홍루몽 회화본 1권(중국만화로 16책 한질로 되어 있음) , 알베르 까뮈 4권을 빼면 몇권 없다.

② 시집류 : 원래 시를 싫어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총 28권 보유

③ 책으로 본 관심분야

▷ 주역

– 관련서적(15권) : 원문 5권(한글 1, 한문3, 영문1), 해설서 10권

주역은 周 文王이 유리에 유폐되어 자기 아들의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살벌한 시간 속에 완성했다는 책이다. 의미를 발라낼 수 없는 384句의 효사(爻辭: 64괘X6효로 각 괘의 효에 대한 占辭)와 64句의 괘사(卦辭: 64괘, 각 괘의 대표 占辭)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사들은 3000년 이전의 글이며, 일상의 글이 아니라 점(占)을 치는 과정에서 얻어진 말(辭)이다. 너무 오래된 말이라서 해석이 애매하고, 그 뜻이 명확하다 해도 점사라서 무엇을 뜻 3예문으로 주역의 마지막 효(未濟 上九)를 보면, 술을 마심에 있어 믿음이 있으니 허물이 없다. 그 머리를 적신다면 믿음이 있어도 옳음을 잃으리라.(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하는 지 알 수 없다.

이 448句로 된 책 위에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기 시작한다. 본문에 대하여 64괘와 384효의 해설(상전 상하), 64괘의 종합적 해설(단전 상하), 대표괘인 건과 곤의 윤리적인 해석(문언전)을 달고, 64괘를 전체적으로 전관하면서 일견 무작위해 보이는 각괘의 배열의 질서를 탐구(서괘전)하거나, 괘의 모양과 공능을 분석(설괘전)하고, 대립하는 괘를 대비(잡괘전)해 본다던가, 전반적으로 주역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유를 탐구(계사전 상하)한다.

이 책에는 본시 진리란 없다. 이 책은 알 수 없는, 그래서 공허할지도 모르는 질서가 있으며, 흘러가며 끝이 없다.

중국인들은 이 책 위에 자신들의 철학과 우주와 역법, 의학 등을 세우고 자신들의 문화를 이룩해 나가기 시작한다.(예제: 마방진 洛書)

주역과 관련하여 15권의 책을 갖고 있음에도 단 한권의 점책도 없다. 그래서 점칠 줄 모른다. 공허할지도 모르는 이 주역을 그저 읽는다. 그래서 주역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 해석학(Hermeneutics)

– 관련서적(5권) 외 수많은 소논문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는 神의 전령이자, 통역자, 인간을 명계로 인도하는 신이라고 한다. 그는 나그네, 도둑놈, 매춘부 등 온갖 잡놈들의 수호신이며, 교활하며 능수능란하다. 음악·문자·숫자·천문·체육·올리브 재배법·도량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헤르메스로 부터 해석학이란 명칭이 나왔다.

신탁의 해석에서 출발했겠지만, 해석학은 성서의 번역과 해석의 기술로 발전된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슐라이어마허는 성서나 기타 고전의 정당한 이해를 위한 방법을 연구하면서 함께 인간의 이해 자체를 문제 삼았다. “해석학에 있어서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다만 언어이고 가장 먼저 발견되어야 할 것도 언어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해라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해의 보편법칙을 파악하려고 했으며, 이해의 과정을 의식적으로 직접 구체적인 언어와 결합시켰다. 딜타이는 “자연은 설명하고 정신생활은 이해한다”고 하며, 자연과학과 구별되는 인문과학의 방법론으로 해석학을 생각했지만, 삶에 대한 철학적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인간의 삶 자체가 해석학적이며 이해한다는 것이 인간의 삶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는 신학자가 성서를 해석하듯이 철학자는 역사적으로 주어진 삶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딜타이의 사상을 이어받은 하이데거는 이해를 존재론적 문제로 다루면서 인간존재의 실존적 구성으로 파악한다.(좀더 보려면: 헤르메스의 노래)

소크라테스가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 이외에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떠든 이후, 서양의 인식론과 이해는 해석학을 통하여 “선이해(선입견) 없이는 어떠한 이해도 불가하며, 우리가 이해한 것은 단지 오해일 뿐이다.”는 소크라테스의 無知의 知로 되돌아온다.

이해를 연구한다는 이 놈의 해석학 서적들을 읽어보면 정말 이해는 고사하고 오해조차 안된다. 이해가 안되는 이유는 우선 번역이 개판이라고 치자, 둘째 너무 어려워 나의 선입관이 쑤시고 들어갈 틈이 없다, 셋째 나의 머리가 돌대가리다, 넷째 이해를 한다고 해 봤자 오해일 뿐인데 왜 이해하려고 하느냐 하는 자포자기 중 하나일 것이다.

해석학의 위치 : 독일, 20세기의 철학

▷ 구조주의

– 관련서적(10권)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몇편의 논문 외에 단 한권의 책도 저술한 바 없다. 제네바 대학에 초빙되어 비교언어학 등을 담당하다가 1907~1911년에 일반언어학을 담당한다. 1913년 2월 작고한 후 그의 제자들이 강의노트를 모아 집필한 것이 <일반언어학강의>라는 책이다. 몇 쪽이 안되는 언어학 서적이지만, 구조주의는 이 책의 술어와 사유를 질료로 하여 세워진 구조물이다.

차이, 변별, 기표, 기의, 공시태, 통시태, 빠롤, 랑그 기타 등등

앙리 레비스트로스는 남미의 원시부족의 혼인관계를 연구하다 어떤 질서가 있지만 그 질서를 풀어내지 못하여 그것을 수학자에게 보낸다. 수학자는 그 혼인관계를 현대에 개발된 행렬규칙에 대입하여 질서를 알려준다. 레비스트로스는 열등하다고 생각한 미개인들이 복잡한 행렬규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삶의 양태를 결정짓는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구조인류학을 창안해낸다. 그가 찾아낸 구조란 바로 소쉬르가 공시적인 질서였으며, 바로 차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은 불란서의 학계를 강타했고, 라캉(J.Lacan)의 구조심리학, 푸코의 해석학과 구조주의 결합을 통한 역사학, 알튀세르, 데리다, 질 들뤼즈 등의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을 불러냈다.

이 구조주의는 결국 데카르트(Descartes)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주체(我)를 없애고, 주체를 타자화한다. 라캉(J.Lacan)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말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근대의 주체개념은 사라지고 구조만 남는다.

이 구조주의는 읽어보면 오묘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구조주의는 우리의 사회와 역사와 심리와 삶을 설명할 뿐, 우리의 존재(실존)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구조 속에서 주체를 상실한 채,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인문과학이라고 한다.

구조주의의 위치 : 프랑스, 20세기의 인문과학

▷ 불교관련

– 관련서적(30권)

부처는 자신의 가르침을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불가사의란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열반에 들 때까지 평생을 통하여 팔만법문을 설하고서도, 돌아가실 때가 되자 “한 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不說一字)고 고집을 피운다.

삼십년이 넘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해 왔다. 그런데 한마디도 배운 바가 없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중 단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로 나는 짐승(중생)이다. 부처님의 가피로 짐승의 탈을 벗어야 한다.

나의 삼십년 문자선의 법력은 대단해서 재가신도는 물론 스님, 조사도 울고 갈 만하고, 부처님께서도 내가 설법한 것이 저런 뜻이었나 머리를 긁적거릴 터이지만, 사실은 나의 구업은 깊어 산문의 일주문조차 돌아들기 힘든 것이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나같은 자를 위해서 만든 주문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불가사의를 알고 싶고, 문자선(依言眞如)을 박차고 나가 말을 떠난 진리(離言眞如)속에 언젠가는 돌아들고 싶다.

▷ 읽을 수 없는 책들

진리가 없기 때문에 읽어도 읽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책(주역)을 읽거나, 결국은 이해에 다가갈 수 없어서 오해라는 개인의 고유한 섬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세계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삶의 역사 속에서 왜곡 해석될 수 밖에 없다는 책(해석학)을 읽는다. 때로 언어의 구조 속에 갇혀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주체를 상실하고 타인의 눈으로 그저 책(구조주의)을 읽는다. 결국 우리의 언어와 사고로는 아무 것도 배울 수도 알 수도 없다는 책(불교) 또한 읽는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책들을 까닭없이 읽는다. 그 끝이 없는 이야기를 하염없이 읽는다.

이것만이 아니다. 나의 책장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책들이 많다. 나의 한문실력과 영어실력은 형편없다. 그리고 나의 이해력은 평이한 산문조차 흡수해내지 못한다. 그러니 저 어렵고, 이국의 그림문자나 꼬부랑 글자로 쓰여진 책들을 소화할 역량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또한 나는 현상이니, 관념이니, 실체니, 타자니 하는 아주 정교한 개념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떻게 저 책들을 읽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때때로 저런 책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