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난 후

12시 30분이 좀 지나서였을거야. 아파트의 틈 사이로 햇빛이 내려왔어. 빛은 차곡차곡 쌓인 도시의 미세먼지 사이로, 낙옆이 떨어지는 속도로 천천히 내려앉았어. 빌어먹을 미세먼지에 대해서 저주를 하면서도, 빛이 타락한 공기를 밀쳐내며 밝음을 펼치려는 정경이 아름다웠어. 멸망하고 난 뒤, 세상의 잔해를 뒤덮은 먼지 사이로도 빛은 그렇게 깃들겠지.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거야. 몸이라는 것, 그것 없이, 정신이라든가 넋만 홀로 있다면 어떨까? 신체라는 물리적 한계가 없는 넋과 정신이 아픔이라든가 아름다움과 더러움, 더 나아가 쾌락을 느낄 수 있을까? 느낀다면 물리적 한계가 없겠지. 결국 끝이 없는 고통과 쾌락이 되고 말 것이라는, 그런 허접한 형이(形而)적인 생각들 말이야. 하지만 영혼이나 정신과 같은 형이상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없지만, 사유를 통해서 느끼기란 더욱 어렵지. 안다고 해봤자, 결국 내 몸은 밥에 굴복하고 말 것이라는 정도지.

그러니까 영원같은 것보다, 밥이라는 구체의 것에 굴복하다보니 살(肉)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었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유같은 것은 없을꺼야. 이유가 있다면 자살을 한다거나 이런 고민같은 것 없이, 그 이유를 붙들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며칠 만 더 이 지상에 남아 있게 되기를 바라는 날이 다가올 것이야.

7월이 되었다

2016.07.02일(토)의 일몰시각 19:57

이 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서쪽은 개활지처럼 보인다. 하늘이 낮고 넓다. 저녁 햇빛의 극명함이 사위고 사물들의 실루엣이 땅거미 속으로 침몰하려는 즈음, 개활지 곳곳에 세워진 러핑 크레인 위에 경광등이 켜진다. 그러면 도시에 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밤이 오는 고공에는 러핑 크레인에서 드리워진 후크와 철제 빔들의 늑골 사이로 노을이 핀다. 그 실루엣은 죽창 위나 마른 나무가지에 교수된 하루의 모습이다. 낮 최고기온은 28°C, 일몰시각 가까이가 되자 24°C 정도로 낮아졌을 것이다. 바람에는 아직 낮의 건조한 열기가 묻어났다.

노을은 처참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그리고 오늘 나의 노동도 끝났고 집으로 돌아가 부은 발을 찬물로 식히며 밤을 맞이해야 한다.

먹고 산다는 것은

이씨는 참새들에게 몇년동안 모이를 주었다. 쌀알을 바닥이나 댓돌 위에 한움큼씩 올려놓으며 “배가 고팠어? 어서 먹어.” 중얼거리고는 참새들이 쌀알을 쪼아먹는 것을 배부른 듯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곤 했다.

캐노피 천장의 철제 앵글의 가리키며 “저 틈새에 새집들을 짓고 올 봄에만 한 오십마리 쯤 새끼들을 보았지요. 저기 봐요. 저 놈이 어미한테 먹여 달라고 입을 벌리는 것 봐요.”

나의 시력으로는 캐노피 어디 쯤에 둥지가 있는지 찾지도 못하고, 어느 새가 새끼고 어미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침, 점심, 저녁 때가 되면 참새떼들이 캐노피 쪽으로 날아와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돌려가며 모이를 기다렸다.

이씨는 오륙십마리 정도되는 참새들을 위하여 쌀을 뿌렸고 참새들은 먼지처럼 날아와 옹기종기 쌀을 쪼아먹었다.

“쌀은 녀석들 먹기에는 크기가 커서 부리로 쪼아 깨먹는 거예요.”

이씨가 없는 날, 동료들이 쌀을 뿌린다.

참새들은 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이를 쪼고, 삼키고, 주위를 살피다 못해 잔바람에도 놀라 달아났다가, 다시 날아와 모이를 쪼는 일을 몇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이 사람에게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는 모든 것에 다 그러한 모양이다.

늙어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싫다는 것은 아니다.

문득 졸고, 바지 앞을 여미는 것을 종종 까먹고, 쓸쓸하기도 하고, 그냥 하루가 저물고, 자꾸 아내가 아프고, 심심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멈추지 않고 돌아갈 것이고 더욱 더 늙어가리라는 생각을 하면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