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도서관

이 글은 계속 쓰여지는 글이다. 하염없이 부풀어 오르고 혼미하여 사악함과 정의에 대한 애매모호함 속에서 나는 방황하고 있다. 방황하는 지점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다.

이 무너진 도서관은 소설이 아니다. 사실은 바벨의 도서관일지도 모른다. 이 글에 달린 하이퍼링크는 꿈과 허위와 또 다른 사실들과 버려진 믿음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무너진 도서관

– 어느 벙어리의 독백에서 –

———— 前說 ———–

예수가 죽고 사도의 시기가 도래한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아는 예수를 가슴에 품고서 산과 광야를 건너 제국의 열방으로 흩어졌다. 요한이 환상에 취하고 도마가 예수의 상채기를 손으로 만져보아야 한다는 지식을 구하는 그노시스(영지)의 사람이라면, 어부인 베드로는 아는 것은 없어도 가슴으로 살아가는 피스티스(믿음)의 사람이었으며, 바울은 예수를 알 지 못한 자였다. 사막과 광야에 둘러싸인 소아시아에는 오시리스의 무당과 비학의 제의, 플로티누스의 철학과 바빌론의 수비학과 사제의 말씀이 혼효되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엮어서 신에게로 가고자 했다. 광야에 흩어져 때론 사악한 주문을 외우거나 진리에 다다르기 위하여 묵상과 고행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진리 또는 마법에 취하여 은둔의 길을 택하였다. 이것이 그노시스의 길이었다. 진리를 위해서 어떠한 도그마도 권위도 인정할 수가 없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것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의 말씀과 비학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섞어 무수한 자료들을 만들어 냈다. 반면 베드로는 서쪽, 제국의 심장부로 갔다. 그에게는 강렬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믿음은 세월을 헤쳐나가고 신도들에게 펼쳐지기에 너무나 나약하였다. 그래서 바울과 함께 교리의 체계를 세우고 강력한 도그마를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생겼다. 교회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졌으나 세월이 지나자 믿음도 진리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교회를 통한 세속의 권위가 중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한 조직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광야에서 진리를 안다는 자들이 와서 미묘한 언어로 침 뱉고 자신들의 권위를 훼멸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 공의회를 소집하고서 신은 알 수 없노라고 한다. 인간은 스스로 신에 다가갈 수 없으며 다만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자신들마저 세속의 인간이 되었다. 사제들에게는 세속적인 권위 외에 추구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죄, 음욕, 지옥, 배신, 저주 등등 온갖 사악한 단어를 섞어 복음서와 경전을 만들고 이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소아시아를 떠돌던 영지주의의 망령이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문서마저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로마제국이 사라지고 교회의 권위마저 사라지고 제삼제국이 사라졌다. 그리고 전설 속에 떠돌던 영지주의의 봉인이 열렸다. 바로 나그 함마디(Nag Hammadi) 문고이다.

In Hoc Signo Vinces

우란테골, 광야는 서북쪽으로 지평선을 그리다가 비아스몬 산맥에 부딪혀 탄식한다. 불모의 땅 위에는 오로지 빛과 바람의 울부짖음만이 스쳐 지난다. 외지인들은 이카텐 반도의 남쪽 이 곳에 와서 절망한다. 황야가 끝나는 곳, 야트막한 언덕 위의 마을을 보면 더 이상 나갈 길도 지친 삶의 이유도 찾지 못하는 이 곳에서 사람들은 창을 북쪽으로 내고 살아간다. 창에서 내려다 보는 광야는 항상 절망보다 강렬한 빛의 광휘와 바람의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휩쌓여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광야를 내려다 보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마을 사람들의 입을 빌자면 우리는 침묵의 수도사들이다. 우리의 침묵과 운명은 이미 천수백년 전 호교론자들이 믿음(피스티스)의 이름 아래 광야에 흩어져 있던 사악한 지식의 자식(그노시스)들을 피의 바다로 몰아넣고 거짓된 자료들을 불길 속으로 던져넣을 때 결정되었다. 젊은 마키비온티는 스승의 명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료들을 수집, 광야가 끝나는 곳인 이 곳에 보관했다. 여기가 세계의 끝이었고 그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는 지 모른다. 그는 이곳을 봉인하고 친구이자 진리를 이끌 이욜테를 찾아갔으나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

마키비온티는 진리가 끝난 것을 탄식했다. 신은 이욜테를 죽임으로써 드디어 예언의 시대를 종지부 찍고 사람 스스로 신에게로 갈 수 있는 길을 차단했던 것이다. 또한 잉태한 아내와 현자였던 스승의 죽음에 절망했다. 그는 지친 몸과 분노에 들뜬 영혼을 끌고 이 곳 광야에 돌아와 신을 저주했다. 허기와 밤의 찬 이슬 속에 차라리 광인이 되고자 하였다. 그는 눈을 뜨고서도 꿈을 꾸었으며 잠을 자면서도 분노하였다. 그는 봉인된 서고의 주위와 광야, 비아스몬 산을 방황하던 어느 날 허기와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는 명료한 의식으로 모든 황무지와 연봉들과 광막한 공간이 현재 속으로 함몰되고 각 세월의 시점들이 여기에 응축되는 것을 보았다. 그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더 이상 꿈꾼 자도 깨어난 자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깨우침을 얻음으로써 죽은 이욜테의 영혼이 되었고 이미 사랑과 죽음, 분노와 절망,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지금 여기 속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봉인을 풀고 교단을 세웠다.

그는 새로운 진리가 없는 만큼 자신의 말을 세상에 더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단지 수호자를 두어 정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한편, 역사와 진실을 위하여 파수꾼을 두었다.

나는 파수꾼이다. 밖의 세계는 뜨겁게 불타고 있는 데 나의 세계는 지극히 단순하고 차갑다. 나에게 부과된 임무는 침묵. 지난 삼십년 간 침묵해 왔다. 나이 스물다섯에 나는 교단에 들어왔다. 침묵은 참으로 힘든 시련이었다. 첫 하루, 침묵의 고통은 그 후 일주일 침묵의 무게였고 일주일은 한달과 일년의 무게. 말하지 못하는 혀는 끊임없는 두통으로 이어지더니 일년이 지나자 머리는 공허해졌다. 머리 속을 괴롭히던 무수한 말들이 고독과 침묵의 대양, 심연 속으로 흘러내려 갔다. 간혹 그 심연의 바닥에서 기억들이 근육을 드러내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 기억 속에는 분노와 젊은이의 열정과 욕구, 때론 밀도 깊은 정액 내음 같은 것이 나타나 뇌수 속에 비린내가 넘치도록 했다. 간헐적인 기억의 표류 속에서 혼절하거나 몸살을 알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드디어 수호자가 와서 내게 명했다, 이제 말을 하라고. 그러나 말을 할 수 없었다. 나의 혀는 마비되었고 두개골 속 언어를 통제하는 신경들은 이미 고사해버렸던 것이다.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나는 멈춰버린 혀를 느끼면서 절망했다. 그러나 혀가 멈추어버리자 인생은 단순해졌다. 침묵의 벽이 나를 보호하고, 세속의 욕망이 지난 세월의 고통과 혼절의 길 속에서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수호자는 진실의 봉인을 풀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봉인을 풀고 자료를 보았다. 그러나 오년동안의 침묵은 글조차 읽지 못하게 했다. 혀의 움직임이 없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침묵 속에서 백치가 되었던 것이다. 리듬이 없이 널부러져 있는 글자들. 글자들이 눈 앞에서 죽은 채 있었다. 글자들을 부활시켜야 했다. 오년동안의 칩거를 풀고 마을 뒷산에 올라 하염없이 세상을 보았다. 시장 골목에서 사람들이 수다를 떨거나 서로 미친 듯이 싸우는 모습,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텅 빈 머리로 모든 것을 보고자 했다. 때론 머리 속에 아무 상념도 떠오르지 않는 데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가슴은 가냘픈 꽃잎처럼 가벼운 미풍에 흐느낀다. 저녁 짓는 냄새에도 눈물이 났고 손등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에 환희로 떨고 있었다. 머리가 멈추자 가슴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떨리면 몸이 따라 춤췄다. 나는 벙어리요, 백치이자 광인이었다. 슬픔과 행복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 말할 필요도 욕망도 없었고 세상을 그 자리에서 보고만 있었다.

무위의 세월이 지나자 수호자가 말했다. 당신은 파수꾼이요. 이제 당신의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됐습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이미 전임 파수꾼은 늙어 자리를 내게 물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또한 벙어리였으나 그의 얼굴에는 진리의 한쪽 구석을 아는 듯한 미소가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자료를 보거나 뭔가를 쓰거나 했다. 나는 점차 읽는 기능을 회복하였는 데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기 시작했다. 가슴은 진리와 허위를 명료하게 분간해 냈다. 경전을 읽을 때 진리는 뚜렷한 에너지를 가지고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고 열광과 환희 또는 절망과 비탄으로 몰고 갔다. 분명 이성의 작용에 의하여 읽고 판단하지만 마음은 허위와 진실의 에너지량을 측정해냈다.

우리는 함께 정원을 거닐거나 산보를 했다. 둘 다 벙어리기에 한마디도 나누지는 못했으나 우리의 우정은 깊어 갔다. 내가 웃으면 그도 웃었고 내가 아프면 그도 아파했다. 우리는 서로의 가슴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따뜻한 미소, 그리고 차분한 발걸음, 그의 웃음, 얼굴의 주름들. 이런 것들은 조화와 평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와 함께 침묵의 심연을 고요히 흐르는 하모니에 도취하였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단의 권고사항대로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교단은 엄청난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으며 그 문헌은 최근에 공개된 쿰란(Qumran)이나 나그 함마디(Nag Hammadi)의 문고보다 방대했다. 케린투스(Cerinthus), 마르키온(Marcion), 오파이트파(Ophites), 카인종파(Cainians) 등 영지주의 문서 뿐만 아니라 아리우스(Arius)의 편지, 마니교 문서, 사라져버린 플로티누스의 문헌들, 아리스토텔레스의 회교문서, 초기교회의 무수한 부본들. 아베스타와 조로아스터 문서, 멀리 인도에서 들여온 경전들, 부패해가는 문서의 필사본, 사라진 문고, 사멸한 복음서들, 단편들, 바오로와 베드로의 서한 이본들, 콘스탄틴의 증여와 같은 날조된 문서들, 예수의 가계보, 총독의 밀서, 그리고 전승에 대한 문헌들, 공의회의 녹취록과 주교 간의 동맹결의서 등등. 이 살아남은 문서들을 읽고 관리하기에 5명의 교단으로는 불가능함에도 천수백년 동안 교단은 이를 관리하고 또 존재해왔다.

저주처럼 살아남은 문서를 읽어나갔다. 역사가 허구 속에 허무하고도 장중한 걸음을 걷고 있음을 보았다. 침묵 속에 깃들지 않았더라면 진실의 광기 속에서 실신하거나 허무 속에서 좌표를 잃었으리라.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진리의 신이 아니었다. 영원을 채울 진실이 권력의 욕구 아래 가녀린 새처럼 처참하게 죽어감을 목도하였다. 지친 영혼을 일깨우기 위하여 때론 다락으로 올라가 하늘과 비아스몬 산맥을 보았다. 그러면 대지는 진실을 몰라도 빛으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늙은 파수꾼은 낡고 육중한 장부를 가져왔다. 장부를 열었다. 그리고 천수백년 동안의 침묵의 흔적을 보았다. 선배들은 자기가 읽은 것과 안 것에 대해서조차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아무런 문서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한 문서의 문장을 다른 문서의 문장과 결부 짖는 일, 그것만을 했다. 연결된 교차색인, 그것은 진실의 나침반이었던 것이다. 날조된 진리는 몇 번 연결이 되다 그 후 진실의 연결고리에 접목되고서는 허구로 사라져 버린다. 연결과정이 지속될수록 진실은 정화되고 강력한 실체로 자리잡는다. 선배들은 침묵한 채로 무수한 자료 속에서 이렇게 진실을 여과해 냈던 것이다.

나는 교차색인을 따라 진실의 미로를 여행하였다. 그것은 명상이었다. 여행은 한 시대의 공시적인 공간 속에서 방황하다가 때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때론 내려오곤 했다. 자료를 보다가 좌표를 잃고 영원히 진실의 그물에 갇혀버린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내려오면서 진실에 관한 한 훌륭한 고전보다 기사모험담 혹은 값싼 책, 혹은 싸구려 잡지 속에 순도 높은 진실이 함유되어 있음을 보았다. 교단이 관리해 온 비밀조직의 계보 속에서 정치권력의 함수관계, 신흥종교 운동과 기사단의 역할, 그리고 비밀결사들의 역사 속에서의 변용과정과 자기 핵분열을 하면서 생존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권력을 위하여 자신의 이형동체를 잡아먹고 그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끝없는 진실의 미로를 방황하면서 존재하였던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이 언어 속에 불멸의 포로가 되어버린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주의 이법도 진실도 언어의 현전에 불과하지 더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언어가 얼마나 나약한가와 집요한가를 보았다. 모든 언어는 나의 관념이다. 그러나 내가 죽어도 언어는 타인의 관념에 기생한다. 그래서 어떠한 진실도 타인의 관념의 끊임없는 변화일 뿐, 실체를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진실들은 왜곡된 관념의 흐름일 뿐이다. 그래서 경전에 쓰여진 진실은 말한 자의 관념이 아닌 읽는 자의 꿈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경전으로는 살아있는 진리를 담을 수 없다. 진리는 언어를 넘어 있는 만큼 경전은 박제된 진리일 뿐, 살아있는 진리는 없다. 사람들을 열광케 하던 말씀이 그때 그 자리를 벗어나 경전으로 변할 때 진리는 종교가 되고 부패하는 것이다.

지금 종교는 내연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나그 함마디(Nag Hammadi)의 봉인이 풀렸다. 그리하여 영지주의의 망령들과 천수백년 간 죽어있던 진리의 파편들이 세계 도처로 흘러나가고 있다. 여성 목사들이 신의 모습은 여성이라고 부르짖고, 흑인들은 검은 성모를 떠올리며, 사탄종파가 일어나 진짜 신은 사탄이며 여호와는 더러운 물질을 창조한 배반의 천사라고 웃음 짖고 있다.

모든 종교는 권위와 협잡의 반석 위에 거대한 금자탑을 세우고 신이라는 미명으로 무수한 인간들의 싸구려 보혈과 가난한 자의 피고름으로 만든 영생의 길. 무지한 인간들이 천국에 이르면 만날 자란 누구인가? 결국 천박한 인간. 그들은 기도소리로 천국을 메우고 남보다 더 빨리 신에게로 다다르기 위하여 서로 헐뜯고 싸우다 지친다. 만약 영혼이 있다면 소리칠 것이다. 아아 죽고 싶어! 진화되지 못한 영혼 위에 부어지는 영생은 끔찍한 형벌이라는 것. 잠자지 않는 사념, 죽어버리지 아니한 자아, 사악한 불멸의 영혼을 어찌 신이 깨끗게 할 것인가! 신이 정화할 수 있는 영혼은 자신의 것일 뿐, 인간의 영혼이 아니다. 만약 여호와(YHWH)께서 나를 잔잔한 물 가으로 인도하고 영혼의 아픔을 치유하실 수 있다면 나는 여호와의 꿈이요, 내가 여호와인 것이다.

시간마저 침묵과 명상으로 정지한 교단에도 세월이 흐르고 늙은 파수꾼이 죽었다. 우리는 이미 이십년 가까이 함께 했고 같이 자료들을 읽곤 했다. 그의 옆에 있으면 항상 따스했으며 모든 나의 생각과 마음을 그가 들여다 보고 있는 것마냥 생각되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는 지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것은 침묵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간단하게 썼다.

나의 아들아! 침묵을 알고 나서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진리를 버리고 나서 나는 더 행복해졌다. 왜냐하면 진리는 경전에도 어디에도 없고 단지 나에게만 있을 수 있는 것이기에 더 이상의 추구와 욕망은 없어졌다. 그리고 내 마음이 비어버리자 사랑이 와서 앉았다.

그가 죽자 나는 외로움에 떨었다. 새로운 파수꾼이 왔으나 아직 서로의 침묵을 나눌 수는 없었다. 너무나 많은 것을 비워버렸고 포기했다. 말을 포기했고 생활을 버렸으며 심지어는 생각마저도 버렸으니 남은 것은 하나, 진리 뿐인데, 그것을 포기할 길은 없었다.

어느 날인가 수호자가 자료실로 왔다. 그는 한동안 침묵 속에 있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때가 없었으나 하잘 것 없는 우리의 시대를 종지부 찍을 때가 왔습니다. 오랜 명상을 통하여 나는 알았습니다. 이 곳을 역사 속에 묻어야 한다는 것을. 비록 이천년 가까이 이 곳을 지켜왔으나 더 이상 필요 없음을 알았습니다. 내가 지닌 진리는 받아들일 사람이 없고 또한 우리가 지켜온 진실은 허구가 될 뿐 입니다. 나그 함마디(Nag Hammadi)의 봉인이 풀렸으나 세상은 변화가 없습니다. 이미 인간에게는 종교적인 열정이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돈과 물리학적 법칙에 있습니다. 우리가 봉인을 풀고 모든 자료들을 그들에게 공개해도 사람들은 한 발자욱도 진리와 진실에 다가서지 못할 것입니다. 혼란이 있을 것입니다. 그 혼란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변화는 못됩니다. 단지 기득권을 가진 자에게 던지는 돌팔매질. 또는 그들의 자리를 짓밟고 올라서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 인간은 그렇게 운명 지어졌습니다. 우주에 편만한 위대한 진리와 진실도 삶이라는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것을 결단코 능멸할 수 없습니다. 저들의 지친 삶 때문에 진리의 광휘와 진실의 무게가 오물 속에 가라앉아 제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때론 우리들이 너무나 잘못된 길을 걸어왔고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들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오고 있는 데 우리는 하늘을 이야기했고 땅을 외면해 왔습니다. 종교와 과학과 모든 신념들이 세상 저 멀리를 이야기 하면서도 한번도 인간을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진리를 떠들어 왔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 자리를 파하고자 합니다.

그는 말을 마친 후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오랫동안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벙어리요, 머리 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그렇게 있었다. 단지 간헐적으로 가슴에서 서글픔이 올라왔다. 나의 인생이 투명한 재로 무화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등이 머리 속을 표류했다. 그러나 지친 모습으로 망연히 쳐다보는 그의 공허한 눈을 보자 교단을 폐쇄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천년동안 한번도 잠들지 못한 것처럼 피곤이 엄습했다. 잠을 자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지친 웃음을 지었다. 웃음은 하찮은 나의 인생을 일깨웠고 그럼에도 평화 속에 깃들은 세월과 내가 얼마나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해 왔던가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그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는 갔다.

나는 광야를 지나 멀리 바닷가까지 여행을 하였다. 세상을 보았다. 내가 땅의 끝에 머물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했으나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고통 속에 있었다. 나의 젊은 시절에도 그랬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한 여자를 사랑함으로써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 가와 고통 속에서도 행복했으며, 그 행복이 고통을 치유하고 또 그녀에게 헌신할 수 있게 했고 어떤 수치심과 유치함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마저 주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행복에 집착하면 할수록 끊임없는 갈증에 그녀 집 앞에서 서성이게 했었다. 그러한 갈증이 못내 그리워졌다. 고통이 없는 삶을 살아왔던 내가 진리를 알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역사나 진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것은 침묵 그것 뿐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더 이상 자료를 읽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루 하루가 지나가면 그에 따라 머리 속은 투명해져 아무런 사념의 그림자도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절정과 무지의 사이, 소음과 침묵의 사이, 때론 내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의 사이를 표류하고 있었다. 세월의 열병과 추억 그리고 황무지에 쏟아져 내리는 폭양. 마을 사람들의 지친 몰골과 말라버린 나의 혀. 이런 것들이 표류하고 있는 영혼에 다가와 소리치곤 했다. 진실이란 인간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환상이다. 그리고 절망을 넘어서면 생활이 살 비린내를 뿜어내며 네가 말하는 진실과 저 망할 놈의 광야의 빛을 뭉개 버릴 것을… 그리고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너한테 이야기하리라 너는 결국 삶에 속아버린 것이라고…

다락으로 올라가 밤의 하늘을 본다. 장엄한 가을 밤, 수많은 별들이 명멸한다. 나의 혀는 그대로 굳은 채 있고 머리는 정지하였다. 그리고 피곤을 느꼈다, 아주 나른한.

지평선 저 멀리에서 새벽이 오는 지 잠시 빛이 일어서더니 사라지고 더 짙은 어둠이 내린다. 조금 있으면 새벽이 소리치듯이 일어날 것이다.

총성이 들렸다. 광야 저 쪽에서 울리는 총성은 어둠 아래서 벌벌 떨면서 울려 퍼지더니 개들이 짖어대고 마을의 창에서 불빛이 하나 둘씩 일어났다. 한동안 있은 후 다시 불빛들이 사그러들고 광야와 마을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한 집에서 여인이 나왔다. 여인은 마을을 마을을 벗어나 광야를 향하여 걷기 시작한다.

지평선 저편에서 한줄기 또렷한 미명이 지난다. 그러자 산맥의 능선으로 희미한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개 한마리가 울부짖는다. 여인의 집에서 사내가 나온다. 사내는 여인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한다. 빛이 밝아지는 지 가을대지 위로 먼지가 발자국을 따르는 모습이 보인다. 저 멀리서 차가 달려오는 듯 가느다란 먼지가 선분을 그리며 마을로 다가온다. 투명해진 광야 속으로 여인은 점으로 사라지고 달려오던 먼지가 멈춰 섰다. 그러자 사내는 죽을 듯이 달린다. 다시 한줄기의 먼지가 기나긴 선분을 그리며 광야의 저쪽으로 달려간다. 사내는 그 자리에 선다.

해가 떠오른다. 광야 위로 그림자들이 웅성거리며 일어난다. 빛의 흔들거림과 정적 속으로 다시 한번 총성이 울린다. 정지해 있던 사내는 대지 위로 내려 앉는다. 비상한 새들이 하늘을 선회한다.

그러자 하늘은 차라리 백색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거친 아침 내음이 대지로부터 비상해 오르기 시작했다.

【끝】

노천기숙盧川寄宿을 보며….

노천기숙이라는 것은 아무 뜻 없이 내가 예전(대략 87년쯤)에 썼던 글이다. 단문의 논문도 수필도 아닌 잡문이다. 그때 미술을 전공하였던 누님에게 한 번 혜람해 주실 것을 부탁하였으나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셔서 다시 새로이 글을 고쳐 쓰고자 한다.

1997.12.31일 홍콩에서

화랑의 한 쪽 구석에 『盧川寄宿』이라는 동양화가 있다. 발묵으로 그려진 풍경은 여름의 기나긴 장마 속에 농염히 젖어있다. 寄宿하는 사람은 어디 있을까? 강변의 정자에는 아무도 없고 개천은 미동도 없이 흐른다. 침묵 속으로 풍경은 빗소리와 함께 녹아내리고 유구한 세월의 다양한 싯점들이 묵의 퍼짐과 함께 화폭에 맺힌다. 과연 그림에 있어 사물들은 명료하게 인식될 수 있는가? 과연 그림의 주인공인 기숙하는 자는 어디 갔는가? 혹은 관람자인 내가 노천을 굽어보며 기숙하는 자란 말가?

예술을 싸잡아서 미학이라는 테두리 속에 끼어 맞춘다는 것은 대롱을 통해 하늘을 보고 자신이 본 하늘 만이 옳다는 편집일 것이다. 아름답다, 좋다, 슬프다……등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변을 통하여 설명한다는 것이 과연 옳을 것인가? 이성적이고 수학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것 또한 맞는 말이기는 하다. 우주의 움직임, 그 자체가 피타고라스가 말한 코스모스적인 하모니 하에 움직인다는 점, 그리고 그 하모니야 말로 엄밀하게 물리학적이라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가 아무리 오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육신과 감정 전체가 오성의 굴레에 갇혀 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볼 때 『노천기숙』이라는 이 그림은 서양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양식의 패턴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는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보다는 이 그림을 포괄하는 동양화(동북아 3국의 그림)와 르네상스에서부터 근대(로코코)에 이르기까지의 서양화의 양식 상의 차이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 동양화와 서양화는 양식 상 그토록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가?

분명 단순한 논리로 양식 상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며, 양식의 차이를 만들어 낸 무수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마르크스의 하부구조(붓이나 종이)가 상부구조(예술적인 관점)을 결정한다는 토대결정론에 입각하거나, 예술이라는 것이 탄생한 배경인 무속이나 제의로 되돌아가 원초적인 인간의 의식을 바탕으로 예술의 발전과정을 유추한다던지(통시적인 분석) 구조인류학적(공시적인 분석)인 입장에서 양식 상의 차이를 규명해낸다던지 하는 능력은 나의 가방 끈 길이 상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내가 아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 사전에 쓰여진 말과 남이 한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섞어 아는대로 씨부리면 되는 문화사적인 입장에서 논구하고자 한다.

밀라노의 싼타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구내식당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템페라화 『최후의 만찬』이 퇴락한 채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벽화는 하도 낡아서 제자들의 얼굴표정이나 다빈치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빛의 미묘한 거리감이나 색조는 사라지고 말았으나, 벽화의 가운데에는 예수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느그들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 뒤 공허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으며 제자들은 “시방 선상님이 무신 구신 씨나락 까 잡수시는 말씀?”하며 서로를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 지를 의심하고 서로 의혹에 찬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그 날, 그 다락방에서의 만찬 마지막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다.

본래 다빈치는 르네상스 때 개발된 원근법이 지닌 기하학적인 견고성과 입체감으로 인한 투명성과 명확성이 화면 전체의 유기적인 통일과 조화를 해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스푸마토(공기원근법)에 의하여 원경을 뿌옇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공간 상에 존재하는 먼지를 그림에 개재 시킴으로써 보다 조화되고 사실적인 화면처리를 했으며, 모노크롬에 가까운 단색조로 화면을 도색함으로써 광선이 사물에 부딪혀 산란하는 미묘한 분위기와 색조를 만들어 냈다. 이리하여 동시대의 여타 그림들과 비교해 볼 때 빛과 그림자가 오묘한 깊이를 더 하는 예술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시도는 그가 예술을 추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간과 자연, 예술과 과학의 세계 간에 나타나는 대립을 해소하고 조화시키는 데 있었다고 하나, 그렇다고 그가 그 시대의 사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만년에 『원의 구적법』과 『만곡면의 기하학』등을 집필한 점과 『삼왕조래』와 『최후의 만찬』의 습작에서 보여준 치밀한 기하학적인 계산은 바로 피타고라스의 수적 질서와 하모니의 계승자로써 구도와 원근법을 더욱 발전시킨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미술이 지닌 기술적인 특색을 종합해보면 조각이라는 공간예술이 회화라는 평면예술로 치환되는 역사적인 과정에서 평면예술에서 결여될 수 밖에 없는 입체감은 원근법과 뎃셍기법의 괄목할 발전에 의해 보완되었으며 이를 위해서 빛이 사물에 부딪히는 각도와 그림자에 대한 충분한 관찰과 분석이 계속되어 왔을 것이다.

천재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요놈이 바로 누구다」라는 화살표로서의 머리 뒤 광배를 제거함으로써 비현실적인 신격을 배제하면서도 다락방 만찬장의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이마에 소실점을 두어 관람자의 눈이 자연히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쏠리게 하는 동시에 화면의 소실점이 관람자가 서 있는 공간과 연결되는 느낌을 주어 싼타 델라 그라치의 그 벽은 단순한 벽이 아닌 『최후의 만찬』이 열리는 그 날의 그 곳으로 시공이 합류하는 차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아멘!

그렇다면 동양화에서 기본원칙은 무엇인가? 나도 잘 모른다.

동양이 테오리아라는 이론지에 입각한 보편타당성을 추구하지 않고 프락시스라는 실천지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사고를 발전시켜 왔다는 점에서 동양의 전적을 통하여 동양화의 미에 대한 보편타당한 답을 할 수 없으며 장자의 미에 대한 소견을 보면 미의 절대성 또는 보편타당성은 장자의 일절, 서시라는 미녀가 물가으로 가면 물고기들이 도망간다는 상대성에 의하여 무차별적으로 폭격 당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이론적 어프로우치보다는 나의 직감적인 어프로우치로는……

동양화 특히 산수화의 표현양식은 서양화가 취하고 있는 기하학적인 엄밀성보다 도식적인 정형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

물론 동양화에서도 중국 淸朝의 『佩文齊書畵譜』에 쓰여진 「山水畵家 繪宗12忌」를 보면 구도는 단순하게(布置迫塞)하게, 원근에 따라(遠近不分), 사물을 입체적(石止一面)으로 표현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이는 曲尺(기하학)에 의한 원근법을 요구한 것이 아닐 것이다. 謝赫은 육법을 내세워 사물의 본래 모양대로(應物象形), 잘 옮겨그려야 한다(傳移模寫)고 하였으나 더욱 중요한 제일원리는 기품과 자아표현(氣韻生動)에 있다.

정형화라 함은 비록 위에서 권고하듯이 보이는 것을 그 모양대로, 구도에 맞게 그리라고 하고 있으나, 동양화는 상당히 양식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저 그림에서와 같이 산수화는 이런 것이다라는 표준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산이다. 저것은 물이다. 그것은 구름이다라는 묵계가 화가와 감상자 사이에 개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화를 감상하면서 기본적인 양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부분, 즉 바위나 물 등을 보았을 때 사실 상 판독이 어려울 때가 많다. 저 그림에서 강물은 빈 배가 떠 있음으로써 강물이 되며, 사물들은 서양적 사고방식인 사물과 사안들은 쪼개야 알 수 있다(분석)는 식으로는 이 동양에서는 점점 더 모호해질 뿐이다. 서양의 분석은 원자론적인 가분할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분석된 개체를 조합하면 전체가 종합될 수 있다는 망상은 완전히 기계론적이다. 그래서 생명에 대한 관점은 사그라든다.

물활론적인 동양에서는 相對보다는 相待의 개념이 중요하다. 相對는 대립이나 相待는 서로 교호하는 차원이다. 배가 있음으로 강물이 존재하고 산이 있음으로 하늘이 그려지는, 서로가 의존하는 그래서 융통 화해된 우주(천지)와 사고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그림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양식을 선체험하고서 그를 바탕으로 그림 전체를 바라보게 될 때 비로서 사물들 각각의 부분들, 돌이나 하늘 그리고 강물 등이 명료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또한 동양화에서는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도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림에서 폭포나 호수, 산봉우리들은 함축적인 표현일 뿐이다. 노자의 도덕경이 삼천자에 불과하지만 오만자의 해설서로도 그 내포된 의미를 설명치 못하고 본의에서 더욱 멀어져 가듯 그림의 여백이 더 많은 것을 그리고 있다. 이는 노자가 말하듯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쓸모가 있는 것은 텅빈 곳의 충만함이라 하고 바큇살이 모이는 그 중심은 결국 빈 구멍이라 하듯 저 그림에서 배를 그림은 강물을 표현코자 하는 역설이다. 파라독시컬한 로직이 하나의 논리로 자리잡고 수천년을 지속해 온 문명의 보편성, 그 찬란함은 끝내 화면마저 초월해 버리는 것이다. 과연 저 그림에서 산구비를 돌아가면 또 무엇이 있을까? 노천에서 기숙하는 자는 어디 있는가? 혹은 내가 기숙하는 자가 아닌가? 나는 노천을 배회하는 하나의 과객으로 변화하여 그림 속으로 스며들고 서양화에서 느낄 수 있는 대물적인 긴장감은 사라져버린다.

이와 같은 나의 이야기는 단순히 서양화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차이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종말론이 지배하는 서양에 있어서는 시간의 흐름은 천국과 지옥의 도래를 의미하며 역사라는 개념으로 대입해 보면 시간은 인간의 자유 혹은 경제의 발전, 기술의 진보를 이룩하기 위한 동력으로 이해되며 이런 목적론적인 시간의 과정 속에서 질료인 과거의 산물들은 부단히 비판되고 재해석된다. 미래를 위한 부단한 창조라는 강박관념은 또한 새로운 양식의 산출을 촉발했다. 반면 동양은 현상세계나 현재를 지양함으로써 이상세계나 절대존재(신) 속으로 흘러들 수 있다는 발전사관을 취하지 않는다. 현상세계의 파행성, 불완전이야말로 道의 움직임을 가능케 하며 만물이 생성 화육할 수 있는 변증적(서양의 대립 발전적 과정으로서의 변증법적 과정이 아님) 토대가 된다고 본다. 따라서 현상세계와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에 주안점이 두어져 왔다.

분명 인간은 원초의식을 바탕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상을 초월한 어떤 지고의 존재나 이법에 대한 갈구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접근법이 달랐으며, 이 차이야 말로 동서양이라는 거대한 문화의 단층을 형성했던 것이다. 플라톤이 현상세계를 초월한 이데아의 세계를 상정하면서 인간은 다시 이데아의 세계로 회귀할 수 없으며 이 세상은 불완전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오로지 이성 만이 이데아의 세계를 상념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숲의 천자만홍은 기하학적 질서에 위배되며, 우주 상에는 완벽한 직선이나 원운동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으며, 모든 인간의 노력은 엄밀한 의미에서 근사치에 접근하는 과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절대온도, 무중력, 절대진공, 초전도 등은 결국 도달될 수 없는 지평인 것이다.

이와 같은 플라톤적인 사고는 결국 기독교의 역사에서 나타나듯 기원후 3백년 경 니케아 공회에서 사도신경을 만들고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강령을 채택하여 「신을 알 수 있다」라고 보았던 그노시스의 무수한 전적을 분서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결코 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신과의 결별을 고하였던 것이다. 결국 신은 섭리와 이법 속으로 스며들고 인간의 역사 속을 배회할 뿐 인간 속에 스며들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후 임마뉴엘 칸트란 작자가 왜 과학이라는 것이 현상세계와 왜 고로코롬 짝 맞아 떨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연구 논문인 『순수이성비판』을 씀으로써 종교로부터 과학으로 신권을 이양토록 하였지만, 인간의 이성을 단지 사유하는 기능적 기관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결국 연혼, 시와 예술, 믿음과 사랑, 의지 등은 인간 속의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그는 마지막 휘니시 불로우로 인간의 사유구조 밖에 있는 「物-自體」는 결국 인간의 사유구조 상 인식될 수 없기에 알 수 없다는 악 소리도 할 수 없는 불가지론을 맹글어 냈다.

결국 이 전부는 인간의 이성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현상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으로도, 믿음으로도, 도덕률에 의해서도 실체와 간격을 줄일 수 없음을 단언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천지창조』에서 여호와와 아담의 손가락 사이의 틈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안타까움인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이데아는 誠이며, 인간의 가능성은 誠之이다. 이때 誠(誠者)은 현상세계의 천지만물의 운행(天之道也) 속에 드러나며 이러한 하늘과 땅의 움직임에 참여(誠之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도리(人之道也)라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을 초월한 신이란 동양인의 사고체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염라대왕과 옥황상제도 시공의 제약을 받는다. 단지 특권이란 장생불사하고 초능력을 가지고 인간을 컨트롤할 수 있을 뿐, 천지조화에는 간여할 수 없으며 만약 간여할 시 봉고파직임에 틀림없다.

道 자체도 자연을 지배하는 원리가 아니라 자연을 따르는 것(道法自然)이라고 한 것처럼, 자연이란 생명을 지니고 자기 컨트롤해 나가는 자기원인에 의한 자기 조절 시스템인 것이다. 당연히 신은 자연에 개입할 수 없으며 우주원리에 신적 요소가 배제되고 만다. 대신 우주원리요 인간에게 제시된 규범적 틀인 주역과 음양이 비판없이 수용되고 이의 확충과 다단한 응용이 문제로 남게 된다. 이리하여 서양철학이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면 동양철학이 불교를 수용하고 발전시켜 왔음에도 주역의 각주에 다름없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말도 않되는 논지를 바탕으로 볼짝치면 서양화가 이데아를 배경에 깔고 신의 형상에서 사물로 이전해 오면서 피타고라스의 수적 완전성과 하모니를 바탕으로 양적 엄밀성, 즉 관람자가 보았을 때 빛과 그림자 그리고 표현의 정확성 등에 주안점이 두어져 왔다면 동양화는 그림을 통하여 부단히 변화(易)하고 움직여 가는(行) 자연의 표현은 불가능하므로 정형화를 통하여 질적 깊이 쪽으로 천착해 들어갔다.

사물을 계량화할 수 있다는 양적 세계관은 주관의 개입을 배제(수의 특성)시키고 대상의 객관화를 추구케 하였으며, 이데아론에 입각한 자연(현상세계)에 대한 영혼의 우위는 미의 대상을 자연스럽게 인간에 집중시켰다. 또한 표현하고자 하는 내면세계도 현실세계가 낙원의 변경이며 인간은 고통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비탄과 절망, 분노와 공포, 기원과 갈구 쪽으로 흐르게 되어 그림은 드라마틱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동양은 인간이 하늘과 땅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이상, 자연(현상세계)에 대한 인간의 우위는 주장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 관심의 대상은 자연에 귀착되는 데 항상 꿈틀대고 숨을 토하는 생명이 충만한 자연은 계량화될 수 없는 엄숙성을 지니고 있다. 측정할 수 없으되 자연을 느낄 수는 있다. 이러한 느낌의 차원을 표현할 경우 불가피하게 부딪히는 것은 표현의 한계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라는 이 유명한 언명은 이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릴 것인가? 표현하지 않는 표현이다. 분명 동양에서도 그리지 않는 그림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화가도 먹고 살아야 한다. 또 어떻게 하면 우미하게 그릴 것인가, 웅혼하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고심도 한다. 그래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또 사물을 객관적으로 그리고자 하기도 한다. 그래야 욕을 안 먹는다.

문제는 붓이 스치지 않은 자리, 여백이다.

이른바 烘托(홍운탁월법). 이는 대상(달)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 대상이 아닌 것(연기)을 그림으로써 대상이 드러나게 하는 파라독시컬한 방식이다. 이러할 때 산을 그린다는 것은 하늘을 그리기 위함이요, 산중턱에 걸친 구름을 그리기 위함이다. 표현되지 아니한 하늘, 공허한 구름, 사라져 버린 노천에 기숙하는 자. 이와 같이 동양화는 빛과 그림자가 혼돈되고 선과 면은 엄밀성을 잃고 여백 속에 함몰되는 것이다.

이러할 때 그림에서 중시되는 것은 그릇이 아닌 텅 빈 공간,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부분은 결국 그림의 풍부성을 더하면서 작품은 화가가 지닌 觀과 삶의 폭에 있으며 그러한 것이 여백 속에 스며들어 새로운 조화로 관람자를 유혹한다.

이와 같은 사변적인 논지가 과연 동서양의 획을 그을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나의 지적 유희의 하나일 분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그림을 보면서 막연히 생각하고 느꼈던 점을 하나의 글로 써 봄으로써 그러한 막연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함이다.

노천기숙은 하나의 산수화다. 텅 빈 정자, 텅 빈 배, 공허한 하늘, 부드러운 산허리며, 사립 너머 보이는 초가집, 그리고 여름인지 가을인지 모르는 단색의 발묵, 이러한 그림이나 실존치 않는 그림이다. 즉 동양화와 서양화를 초월해 있는 상상이다.

내다봐 씀

1997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