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강

산과 강에 대한 멋진 말은 산경표를 지어 백두대간의 개념을 확고히 한 여암 신경준(1712~1781)의 글에 있다.

그의 산수고(山水考)에 보면,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一本而分萬者山也 萬殊而合一者水也)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팔로(팔도)의 여러 물은 합하여 12수(水)가 되고, 12수는 합하여 바다가 된다.”고 그는 우리의 산하를 표현한다.

그러니 만가지의 다른 물이 모여 합하고 합하여 강이 되고 결국 바다로 합하는 것이다. 개울과 개천이 지류가 되고 강이 되면서 강의 폭은 넓어지고 그 유역은 광대해져 갯벌과 뒤섞이며 바다로 흐르는 것이 강이고, 지류가 몸을 섞으며 이름을 달리하는 것이 강이다.

그래서 한강만 하여도, 남 북한강이 합수머리(두물머리)에서 합하여 한강이 되고, 또 임진강과 섞이며 조강이 되어 갯벌과 노을에 몸을 풀며 바다가 되는 것이다.

황하는 퇴적이 되어 하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만조가 되면 밀물을 따라 강물이 황해로 넘어간다고 한다. 한강도 예전(고려조)에는 하구가 없어 바닷물을 따라 서해로 넘어갔는 데, 이조 때 큰 홍수로 하구가 열렸다고 한다.

열대초원을 흐르던 백나일과 이디오피아 산악을 흐르던 청나일이 카루툼에서 합한 후, 더 이상 유입되는 지류가 없다. 이후 나일은 열사의 사막을 지나고 나일 유역에 수분을 공급하면서 점차로 강의 폭은 좁아지다가 지중해로 흘러든다.

고대의 이집트인들이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남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강은 북으로 흐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 “저들의 강은 남쪽으로 흐릅니다.” 라고 파라오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이스파한의 가운데를 흐르는 자얀데 강(Zayandeh Rud)은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원하여 400Km를 남서로 달려 이스파한을 지난 후, 카비르 사막의 염호(Salt Lake)에 다다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소금 만 남는다.

강의 사라짐을 보지 못했지만, 이는 서글픈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세상에는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강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란 두바이-4

호텔 압바시(E3)

정원은 호텔의 안쪽에 있다. 호텔의 옆에는 푸른 돔을 지닌 모스크가 있다. 호텔은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아마도 예전에는 승원의 부속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호텔의 로비에는 회교의 문양이 천장이나 기둥에 아로새겨져 있고,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의 객실에 들어가 창문을 열면, 정원을 둘러싼 아취형의 객실 발코니가 보이고, 그 위로 호텔의 지붕이 연이어져 수풀 속에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객실은 하얗게 회칠이 되어있고 단순한 붉은 직선으로 벽을 장식했지만 그 간결함이 더욱 객실의 품격을 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 깃든 정원에는 노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호텔의 설명은 http://www.abbasihotel.com

세라자드(E4)

세라자드(Shahrazad)가 아름다웠는지 나의 기억에는 없다. 천일야화(alf layla wa layla)를 읽어본 적도 없다.

이 땅의 여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워, 오히려 정물과 같은 느낌이다. 그 아름다움은 고정되어 있어서 그녀들의 얼굴의 표정을 읽을 수 없도록 한다. 백옥같은 얼굴 위의 뚜렷한 눈동자와 길고 짙은 속눈썹, 말하기를 거부하는 듯 약간은 거만스러워 보이는 견고한 입술들을 쳐다보면 불현듯 내가 무엇을 쳐다보고 있는 지를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아라비아의 그 밤들을, 처절한 살육으로 이어져 왔던 밤들을 기억할 뿐이다. 세레자드는 낮이면 죽음의 밤을 건너기 위하여 천개와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예비하였고, 하늘이 납빛으로 어두어져 가면, 자신의 침실에서 뚜렷한 용기로 광기에 찌든 왕 샤흐리야르(Shahriyar)를 기다렸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우리는 거칠고 어두운 이스파한의 골목을 지나 육중한 나무문을 지나 내부가 목조로 치장된 세레자드란 식당에서 9시가 되어서야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