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nte le stell (별은 사라지고)

이 음악을 들으면 내용은 몰라도 삶이 비극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삶이 비극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미스테리이다.
왜 하필이면 비극적일까?

비극적일 만큼 인간이란 <그 누군가 아니면 무엇인가에 대하여> 하찮은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환희에 대한 보상인가?

아니면 슬픔이나 고통은 삶의 비젼을 달성하기 위하여 초극하여야 할 무엇이란 말인가?
내 삶에 흘러넘치는 이 사랑은 또 무엇이던가?


별은 사라지고(Spente Le Stelle)

당신은 이 마음을 잃었습니다
신기루를 쫓는 동안
당신은 이 마음을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미워하는 것밖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대여 나의 고통에 귀 기울여줄 순 없나요?
당신의 목소리는 이제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나는 하염없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잊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수 없을테니…
그때는 오직 어두운 밤이 그 밤이 있을 뿐이니!

별들은 사라지고
희미한 달빛과 함께
사랑이 구슬피 울고 있습니다
파도처럼 전진하다가는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밤은 텅 빈 채로
그리고 희망마저도 아스라이 끊어질듯한데
쓰라린 눈물만이 흘러내립니다
상처입은 마음이 그 체념이
바람처럼 스쳐가듯….

텅 빈 꿈속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요
그 짧았던 유혹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Carmine Meo 중에서

…Emma Shapplin


삶의 야박함이란 무엇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데 있다. 비극이 없다고 평화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을 때, 이 심심함은 어디에서 다가오는 것인가? 삶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권태에 있는 지도 모른다. 권태란 지금 현재, 바로 이 자리의 삶 – 그 무의미성으로부터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심심함을 매장하기 위해서, 삶의 무의미성에 대하여 숙고를 하기 보다는 외면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자살마저도… 이 권태를 말짱한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이 권태 앞에서 어떠한 철학적 경구도 무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쾌락을 찾아 떠나지만 그것이 때론 비극이 되기도 한다. 사랑마저도…

한 사내가 바에서 외로운 여인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홀로 오셨습니까?> 그는 젊잖게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 말이 없다. <참 아름다우시군요.> 의자 옆에 걸터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여인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제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여자는 술을 홀짝이기만 할 뿐 사내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내는 인내심을 갖고 자신이 누구이며,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고, 자신이 낯선 마을의 허름한 바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 지를 아주 소상하게 이야기 한다. 그러나 여인은 한번도 사내 쪽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사내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앞 만을 바라보며, 천천히 술을 마시고 있는 여인에 대하여 약간의 살의를 느낀다. 아주 조금.
그리고 사내는 마지막으로 신음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발! 절 보세요. 그럼 제가 비밀을 말씀드리지요.>
그러자 여인이 얼굴을 돌려 그를 보았다. 그러나 사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은 없었다. 여자는 그 비밀이 무엇이냐고 묻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건 말입니다. 그것은…>

여인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제 한쪽 눈이 개눈이라는 것이죠. 개눈! 으하하하…>
그 후 사내와 여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변두리에 도달하더라도 한가지 쯤의 비밀은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교훈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거짓을 말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며, 그것은 치명적일 지도 모른다. 삶이란 살아있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길에 뒹구는 돌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에서 상기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랑조차도 치명적인 것이다.

왈기曰記

책방에 가서 찾던 책이 장 그르니에의 ‘섬’이 아니라 ‘지중해의 영감’임을 알았다. 엉뚱한 책에서 빛의 옴실거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섬’을 읽고 난 후, 곧바로 ‘지중해의 영감’을 읽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두 책이 한 권 ‘섬’으로 기억의 지층 속에서 압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섬’을 읽으면서 억지로 빛의 기억을 환기해내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지중해의 영감’을 펼치는 순간, 책에서 북위 45도의 각도로 품어져 나오는 빛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카알 젠킨스의 CD를 몇 개나 사고 난 후, 마지막으로 내가 듣고자 하는 곡을 만날 수 있었다. 중세의 성가와 아프리카 무속의 혼혈인 애니그머(발음은 자신할 수 없다)보다는 성가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반복성과 천사와 유령의 목소리가 혼합된 듯한 노래가 나의 영혼을 흡혈한다.

뉴 에이지 뮤직도 도그시나타스(Dogsinatas 1doG si nataS = Satan is God)의 부류라고 하는 데, 나도 종자가 그런지?

엠마 샤프린의 노래는 심장을 사각거리며, 슬픔과 비탄의 절정으로 몰고 가는 데 어느 날 그녀의 숨 길이가 짧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광화문 사거리에 떨어져 내리는 오후 네시의 폭양은 사람을 어지럽게 한다.

그래서 나는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 지하철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