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 1959년작

허위의 사악함에 대해서 이 영화는 말한다. 힘없는 자의 거짓은 진실이 드러나면 그냥 사라진다. 하지만 부와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하여 진실이 은폐되고 조작될 때, 투명함은 사라지고 그늘이 거리와 골목을 뒤덮고, 정의란 보편으로 우뚝 선 것이 아니라 단지 강자의 논리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된다.

내멋대로 만든 줄거리

남편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베너블 여사는 아들마저 죽자, 인생에 남은 것은 돈 밖에 없다. 그녀는 사랑했던 아들의 죽음이 간직한 추악한 실상들을 마주하기가 싫었고, 아들에 대한 환상 속에 머물며, 어떻게든 아들이 아름답고도 순결한 삶을 살다 죽은 것으로 꾸미고자 한다.

하지만 아들이 죽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카 캐서린은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추악한 실상을 알고 있다.

여사는 아들의 추악함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하여, 아들 세바스찬의 시신을 보고 정신적 충격에 빠진 캐서린을 정신병으로 몰아 성메리병원에 감금시키고, 그마저 안심이 되지 않자 뇌수술로 캐서린의 기억을 영원히 제거하려고 한다.

기부금을 빌미로 뇌수술을 의뢰받은 신경외과 의사 쿠쿠로비치는 자신이 수술해야 할 캐서린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병이 조발성 치매가 아니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증세)에 갇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또 베너블 여사의 아들의 죽음이 단순한 심장마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의사가 진실에 다가가자, 베너블 여사는 기부금이 필요한 병원을 압박하고 캐서린 가족들에게 유산을 미끼로 수술에 동의할 것을 종용하여 조속한 수술날짜를 잡으라고 한다.

의사는 베너블 여사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세바스찬이 죽은 그 해 여름, 바로 그 해변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캐서린이 기억해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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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함께 휴가를 간 해변에서 세바스찬이 자신에게 물에 들어가면 속이 비치게 되는 하얀수영복을 입도록 했고 자신을 물에 밀어넣었다고 한다. 물에 젖어 속살이 비치게 되자 해변의 젊은 남자들이 침을 흘리며 자신 주변에 몰려들었고, 이 틈을 노려 세바스찬은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골라 남색을 즐기고 돈을 뿌려댔다고 한다. 해변에서 한동안 지낸 어느 날, 자신들이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 일단의 젊은이들이 식당을 에워싸고 깡통 등으로 만든 심벌즈와 타악기를 두드려 댄다. 식당을 나온 세바스찬은 몰려드는 젊은이들을 보고 겁에 질려 언덕 위로 도주를 했고, 젊은이들이 그를 뒤따른다. 자신이 경찰을 이끌고 언덕 위로 갔을 때, 이미 세바스찬은 무수한 젊은이들에게 살점이 뜯어먹힌 상태로 죽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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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진실이 토로되면서, 조카 캐서린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기억을 되찾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반면, 자신이 지키려던 허위가 무너지면서 베너블 여사는 의사를 아들 세바스찬으로 오인하는 등 착란증세를 보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 영화에서 조카 캐서린으로 나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20세기 최고의 미녀라는 데는 별다른 이론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함구한다. 그녀의 연기가 형편없다기 보다, 찬란한 외모 때문에 늘 그녀의 연기는 가려졌을 뿐이다. 흑백영화 속에 나타난 그녀를 기억하기 보다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등 그녀의 미모를 바탕으로 흥행에 성공한 총천연색의 초대형 영화를 우리는 기억한다.

하지만 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 젊은이의 양지, 그리고 이 영화는, 미모보다 지리한 대본을 바탕으로 내면의 심리연기를 어떻게 하는가가 관건인 영화다. 그런 점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모 뿐 아니라 연기력 면에서도 가치를 충분히 한 배우라고 생각된다.

20100609

참고> Suddenly, Last Summer

이스트먼을 죽음에 이르게 한 3분

단 3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그 3분이 자신의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강렬한 유혹이 있다.

유혹은 다름아닌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시골 청년 조지 이스트먼(M. 크리프트 분)이 안젤라(E. 테일러 분)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접어놓고,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아리스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럴듯한 도덕적 명제이다.

이 <젊은이의 양지> 라는 영화 속의 3분은 그러한 도덕적 명제가 과연 조지라는 청년에게 타당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묻게 한다. 합리적인 이성에 입각하여 도덕적 명제에 따르기에는 군침을 삼키며 멀리서만 보아왔던 안젤라의 모습은 너무 황홀하고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있으며, 또 배운 것도 돈도 없는 자신을 향하여 아리따운 그녀는

“저도 사랑해요. 그래서 두려워요.              
                       …… 하지만 기분은 황홀해요.”

라고 그 감미로운 입술로 속삭이지 않는가?

조지에겐 임신을 빌미로 사랑하는 안젤라와 헤어지게 만들었기에 증오할 수 밖에 없는 아리스와의 불행하고 지루한 결혼생활을 보내는 것과 단 한번의 죄악, 즉 아리스를 죽임으로써 사랑하는 안젤라와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 두갈래가 있다면…

나는 감히 도덕적인 앞의 길을 택함으로써 불행하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은 합리적이기 보다 몹시 충동적이며, 그 충동에 이성의 교활함을 섞어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려 하기 때문이다. 때론 죄악이 훨씬 더 인간적일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조지에게 말할 것이다.

“3분이라는 시간은 때론 영원보다도 길며, 한 사람의 생명보다도 큰 값어치를 지닐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시간동안의 사랑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라고…

비록 조지 이스트먼이 아리스를 호수에 빠트려 죽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영화의 장면을 보면 서로의 사랑을 고백한 연인들이 달콤한 기쁨에 빠져있기보다, 두려움에 휩쌓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사랑의 장면은 암울하다.

키스하기 바로 직전의 이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오! 안젤라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표현할 수 없오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엄마에게 말해요.
엄마에게 모두…

왜 안젤라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아닌 조지의 엄마에게 말하라고 했을 까? 그리고 조지가 안젤라에게 말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던가?

젊은이의 양지 그 3분간…

참고> A Place In The 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