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은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 해는 발자크의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했건만 지금은 발자크의 소설은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카잔차키스의 소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읽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꿈꾸던 세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란 언어가 형성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보고, 듣고 한 것들이 언어로 추상화(단순화)되어야 기억할 수 있다.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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