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03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놈은 늘 나를 싸부라고 불렀다.

놈은 나를 따라다니며 이러저런 것을 묻곤 했다.

“싸부, 너 수레바퀴 밑에서 읽어봤냐?”
“그래, 읽어보았지. 읽어보니까 어떻든?”
“뭐가 그런지 모르겠어. 왜 한스란 놈은 자살을 했을까?”
“사실 자살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아마 작가도 설명하지는 못할 꺼야. 누군가에게 들었는 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소설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주인공을 죽도록 만들었고, 작가가 주인공을 살해했다고 소송이 붙었다는 거야.”
“그래서?”
“작가는 법정에 서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작가는 <제가 죽였다기 보다 주인공은 소설이라는 운명에 따라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라고 답변했다더군.”
“니가 지어낸 노가리지?”
“넌 헤르만 헤세가 그 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한스를 죽이려고 작심했다고 생각하니?”
“아니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을 지도 모르지.”

놈은 나와 만난 후, 정말로 훌륭한 제자가 되어 나한테 “나는 이제 더 이상 너한테 가르칠 것이 없다. 이제 하산하도록 하여라.”고 할 정도로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너 게오르규의 25시 읽어봤니?”
“아니, 못 읽어보았는 데…”
“이거 신나는 데, 니가 못 읽어 본 소설도 있다니… 야! 그것 읽느라고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내내 꼼짝도 못했다.”

내가 황석영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놈의 덕이었을 것이다.

놈이 하루는 옆구리에 <객지>라는 책을 끼고, 교정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 보여서

“거 뭐냐, 니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
“너 이것도 모르냐? 황석영의 중단편집이다.”
“어떤데?”
“이런 것을 읽어야 소설 쫌 읽었다는 축에 드는 것 아니냐? 객지다, 객지.”

놈은 그 해가 저물어 갈 때 쯤 자신은 <문과>를 간다고 했다.

“싸부, 너도 같이 문과로 가지 않을래? 난 소설가가 될꺼다.”
“아니, 나는 이과로 갈꺼야.”
“아니 왜? 넌 이과 적성이 아닌데…”
“나는 항해사가 될꺼다.”
“뭐하려고?”
“나는 일곱개의 바다를 지나서, 먼 세상을 구경하려고 해. 그리고 바다를 지날 때면 책을 읽을 꺼다.”
“그것 멋있는 데…”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마도로스가 될 생각이었다.”
“아참! 이번 겨울방학 때엔 아버지의 산막으로 올라갈꺼다. 수십권의 책을 들고 올라가 방학동안 그 놈들을 작살낼꺼다. 싸부, 너도 방학 때 심심하면 우리 산막으로 한번 놀러와라.”

놈의 아버지는 산지기였다. 지금의 개포동 앞에 있는 대모산 속에 산주인이 산막을 세워놓았고, 규동의 아버지는 사나흘 씩 산막에서 지내다 내려와 옷가지와 먹을 것을 들고 산막으로 오르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방학이면 자신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산막에서 지내곤 했다고 한다.

“겨울이면 산에 눈이 내려. 성애가 잔뜩 낀 유리창으로 눈송이가 스쳐지나면, 정말 끝내준다고. 라디오를 켜고 난로에 라면을 끓여먹으면 신선이 따로 없어.”

그러나 놈의 산막에는 올라가 보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영화 단체관람을 갔다. 아마 에디 듀친 스토리인 <애심>인 것으로 기억되는 데, 끝난 후 보니 놈의 눈은 눈물을 흘린 듯 좀 부어 있었다.

“짜식~ 또 울었지? 그동안 좀 짜지 않아서 사람됐는가 했더니… 이제부터 또 울려고 그러냐?”
“얌마! 감동스럽잖아. 싸부 넌 다 좋은 데, 애새끼가 싸늘해.”
“별로 슬프지도 않은데?”
“아무튼 나 감동먹었다. 그런데 너 영화같은 건 좀 보았냐?”
“영화라~ 한 오백편 이상은 봤을꺼다.”
“새끼 순 노가리는… 뻥을 쳐도 봐가며 쳐라.”
“이 사부의 말씀, 잘 들어봐라. 토요일 저녁에 주말의 명화하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한주도 한 빼고 보면 몇편이냐?”
“삼사오륙, 일이삼, 일. 팔년에, 일년이 오십이주라면 한 사백편? 사백편 밖에 안되잖아?”
“거기다가 극장가서 본 것은 어디가고?”
“그러면 극장에서 백편 이상을 보았다는 거냐?”
“그렇지, 임마 이래봬도 여섯살 때부터 극장을 들락날락 한 사람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난 영화관에서 본 영화란 한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주말의 명화 같은 것도 별로 못보고.”
“내 기억으로는 주말의 명화를 빼놓은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럼 식구들이랑 영화관에 자주 가냐?”
“아니, 주로 혼자 다녔어.”
“혼자 어떻게?”
“그냥 돈들고 가서 표사고 극장에 들어가면 되지 안될 게 뭐 있냐?”
“야 걸리면 정학 아니냐?”
“국민학교, 중학교 애들을 잡아다 정학시키면 어떻게 하냐? 문제는 고삘이 들이지. 겁나면 명찰 뜯고 가는 거야. 또 잡히면 드립다 튀면 되는 거고. 그런데 그렇게 극장에 다녀도 한번도 잡힌 적은 없다. 명찰 뜯을 일도 없고.”
“그럼 다음에 극장 갈 때 나도 데려가라.”

그 후 놈을 극장에 몇번 데려 갔고, 놈은 영화에 점점 미쳐갔다. 그때는 개봉관이 적어서 좋은 영화가 들어오면 표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수원까지 영화 원정을 가곤 했다. 서울의 개봉관의 영화가 300원 할 때, 수원의 개봉관인 서문극장에서는 150원이었다. 안양까지 전철로 가서, 안양역에서 버스를 타면 서문극장 앞에 버스는 섰고 차비는 한 30원 정도였다. 서문극장에는 늘 자리가 남았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비를 계산하고 저녁을 먹어도 돈이 몇십원 쯤 남았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서문극장에서 하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 영화를 보았고, 밤길로 돌아와 통행금지 전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놈은 이학년 때부터 반이 달랐고 교실 건물도 달랐지만, 늘 나의 주변을 맴돌았고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심심하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놈은 나의 방을 좋아했다.

“니 방은 분위기가 있어. 도서관하고 서점 빼고 니 방보다 책이 많은 곳을 본 적이 없다. 몇권이나 되냐?”
“모르겠는 데. 한 천권쯤 될까? 우리집에 있는 책을 몽땅 다 이쪽으로 몰아왔거든. 폼나라고.”
“그런데 너 <광장> 초판에 혁명공약이 들어 있었다는 것 아냐?”
“모르겠는 데…”
“얼마 전에 중고서점에서 <광장> 초판을 샀는 데 혁명공약이 들어있더라.”
“혁명공약이 뭔데?”
“박정희가 군사혁명을 일으키고 나서 국민들에게 어떻게 하겠다고 씨부린 것이지. 뭐 반공을 국시삶아먹고 미국과 유엔군에게 말 잘 들을테니까 걱정 말라는 그런거야. 그런데 문제는 육항인가 거기에 쓰여있는 것이 문제인데…”
“머라고 쓰여 있는데?”
“자신들이 할 일을 다하면 다른 사람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자신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해체하겠다는 거지. 그런데 씨팔, 대통령도 해먹고, 삼선짬뽕도 아닌 삼선대통령이 되더니, 웃기는 짜장인 체육관 대통령(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까지 다 해먹은 거 아니겠어?”
“아직 못해 먹은 것 있어.”
“뭔데?”
“임금님! 육영수가 국모라면 박정희는 임금이고 싶었고, 각하보다는 폐하가 되고 싶었던 것 아니겠어? 차라리 그치가 왕이 되어 박씨왕조를 세우고 청와대에서 폼잡고 살고, 우리는 우리 맘대로 수상이나 뭐나 뽑아서 민주주의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만 하자. 이러다 우리 잡혀가겠다.”

놈은 결국 예비고사에서 지방에 간신히 붙었으나, 지방대에 갈 형편이 못되었고 취직을 한다고 하다가 내가 대학 삼학년 때,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들어가 우리가 존경하는 최인훈씨 밑에서 일년인가 공부를 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개포동이 개발되며 아버지가 불하받은 땅값이 오르고 아파트를 받는다 하면서 집안이 펴졌고, 놈은 다시 공부를 하여 경희대 영연과를 들어갔다.

그리고 놈이 졸업을 하고 충무로에서 제작사의 밑에서 기획을 하고 있었음에도 회사 일에 바빴던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고, 놈을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번 사부는 영원한 사부겠지만, 대학을 들어가고, 내가 대학 생활을 꾸리고 여자의 뒷꽁무니를 찾아 다니느라고, 놈이 나를 찾을 때 나는 늘 없었다. 혹여 집에 찾아 온 놈을 박대한 것이나 아닌지나 모르겠다. 놈이 집을 찾아오는 것이 뜸해지고, 전화통화수가 서서히 줄어들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며, 아직도 학원가를 전전하는 놈을 귀찮아 했을 지도 모른다.

놈이 13년만에 만난 나에게 거만했던 것이 아니라, 놈이 종로통의 학원을 전전하며 고달펐던 시절에 나는 서서히 서로의 우정을 지워나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군대갈 때에도, 장가를 갈 때에도 놈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면서, 13년만에 만난 놈이 나를 아는 척 하지 않았다고 섭섭해 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놈을 만나지 못했지만, 나는 늘 함께 본 <금지된 장난>과 무수한 영화, 수원 서문극장 옆의 허름한 국수집에서 함께 먹었던 저녁, 댓병 소주를 책가방에 찔러넣고 북한산에 오르다 병주둥이가 깨어져 책을 다 버렸음에도 유리가루가 섞이지 않았나 하며, 댓병 소주를 다 마시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오던 고삼 어느 토요일의 가을을 추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놈에게 문학과 영화를 알려 준 사부라서가 아니라, 오래 전 한사람의 친구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 때문이다.

다시 한번 놈이 멋진 영화를 제작하여
어린 시절과 같이 어느 조그만 극장으로 홀로 가,
어두운 극장의 한모퉁이에서 눈물을 흘리며
놈의 영화를 보기를 원한다.

친구야! 이제야 나는 너한테 미안하구나.

아마 우리들은, 우리들의 녹슨 시절의 녹을 조금씩 닦아가며 그 시절에서 바라보았던 지금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지도 모른다. 친구야! 그 시절의 우리나 지금의 우리나 모두 조금씩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들이, 지금은 우리가 어긋나 있을 뿐.

혁명공약 전문 펼치기…

<혁명공약 전문>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 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 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 정기를 다시 바로 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참고> 위의 육항은 박정희가 대통령 출마를 하면서 정권이양과 군 복귀라는 단어는 싹 빠져버리고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경주한다”라고 바뀌었으며, 그 후에는 혁명공약을 운운하기만 해도 잡혀가는 자기 부정적인 일들을 저질렀다.

 

녹슨 시절 -02

필름 2.0의 기사처럼 놈에게는 눈물이 많았다. 놈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법도 몰랐다. 놈은 훌쩍이며 교실의 구석에서 울었고, 복도에서 아니면 교실 밖 그늘 아래에서 울었다. 놈의 별명은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찌찔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놈은 한사코 뒷줄의 재수파들과 놀려고 했다. 자신의 생일이 58년 1월이니, 자신은 개띠가 아니라 닭띠들과 학교를 다녔다는 것이었다.

재수파들은 찔찔 짜는 놈과 함께 놀 생각은 없었기에 놈은 늘 따돌림을 당했고, 또 학교 어느 구석에서 울곤 했다. 울고 나면 금새 표정이 밝아져 또 재수파들 사이에 끼어들어 갖은 장난을 쳐대는 부단한 노력 끝에 <애들은 가라 파> 즉 그룹 몽따다에 자동 가입이 되었다.

강원도 양구에서 굴러먹다 서울로 내려온 털 빠진 강아지같이 생긴 데다, 재수파에게 끼어들려고 낑낑대는 것도 보기 싫었고, 뻑하면 울어대는 것이 웃기기도 했다. 그래서 놈이 내 곁에서 이소룡 폼을 잡고 “이야오~ 이야오~”하면,

“내 곁에서 지랄 말고 절루 가서 애들과 놀아라.”고 몽따다 정회원으로써 준엄하게 꾸짖곤 했다.

우리는 독어시간을 싫어하기 보다는 무서워 했다. 그리고 내가 보아온 독어선생들은 몽땅 다 싸이코였다. 아마 독일어에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불독>은 제일 악질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적으로 규정했으며, 자신의 인생은 우리가 망쳐놓았다고 생각했고, 수업시간 중에도 늘 트랙터 운전을 배워 캐나다로 이민을 갈 것을 꿈꾸었다.

“세번째 줄 대가리 삐딱한 놈! 본문 읽고 해석해 봐”한 후, 교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왼손은 트랙터의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핸들 옆에 놓인 기어를 댕겼다 놓았다 하는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리고 읽고 해석하기가 끝나면 “니들 영어는 대학가는 데 필요하다고 해석 잘하지? 시시껍줄한 독어라고 그따위로 밖에 해석을 못하냐”며 불러 올려 두드려 댔다. 그래서 우리는 불독에게 ‘좌우지간 걸리면 작살이다’고 독어시간 있기 전에는 ‘제발 오늘도 무사히’를 빌곤 했다.

그러던 어느 불독시간에 우리는 불독에게 걸릴까 봐 쥐 죽은 듯 자리에 앉아 있는 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칠판에 판서를 하던 불독이 아랫 입술을 코끝까지 치켜 올리며 돌아서서,

“누구지? 웃은 놈. 조용히 교단 위로 올라 와라”

그 말과 동시에 교실 안은 숨소리조차 멎었다. 어떤 놈이 미친 개 불독에게 물려 결단이 날 것인가로 스릴과 서스펜스에 빠져들었다.

그때 규동이 일어섰고, 웃음을 흘리며 교단으로 나가면서 오른손으로 아이들에게 ‘V’ 싸인을 날렸다. 놈의 엉뚱한 행동이 불독을 더욱 열받게 만들고 엄청난 구타로 이어질 것이었다.

여지없이 불독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브이 싸인이라~, 네 놈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거지. 네놈 꼴쌍을 보니 죽어나가도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듯 하군.”하고

교단에 올라온 놈의 머리를 팔로 감아잡고 12월31일 자정에 보신각 타종하듯 칠판과 벽 등을 두드려댔다. 그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고 꽤 오래 계속되어서, 혹시 놈의 두개골이 빠개지는 것이 아닌가 했다.

미친 불독이 분이 풀렸는 지 갑자기 벽에 부딪히기를 멈추고, “니 대가리를 빼서 자리로 돌아가라” 했다.

규동은 어지러운 지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고 비틀비틀 자리로 돌아왔는 데, 얼굴은 자신의 코피로 범벅이었다.

불독은 다시 판서를 시작했고, 쥐 죽은 듯 우리는 그것을 공책에 받아 적었다.

그때 불독이 갑자기 분필을 내팽개치며,

“이거 뭐야, 옷에 피 튀겼잖아? 에이 재수없으려니까… 아까 그 새끼 다시 나와!”소리를 지르면서 교단에서 내려와 엉거주춤 일어나 나가려는 놈에게 달려들어 따귀를 수차례 갈겨대더니 씨근거리며, 교단으로 올라가

“기분 나빠서 오늘 수업 끝!”하곤 나가버렸다.

정말 해도 너무 했던 것이다. 불독이 나가자 누군가 “우리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거냐? 저런 폭력교사는 추방해 달라고 문교부에 진정서 내야 하는 거 아니냐…”하고 말했다.

따귀를 맞고 주저앉아 있던 규동은 내 옆, 벽 쪽으로 비틀거리며 와서 머리를 부딪히며,

“아이 씨팔, ☆같아~. 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려” 하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불독이 나가고 수업시간이 이십분 쯤 남았는 데, 놈은 계속 울 것만 같았고, 옆에서 그냥 앉아 있기만 하기도 뭐해서,

“다 큰 새끼가 뻑하면 울고 지랄이야. 너 새끼 나 따라와!”하고 놈의 팔뚝을 잡아 끌었다.

“에이 씨발 놔, 놔봐!”
“찍소리 말고 존 말할 때 따라와!”

교실 건물 밖 세면대로 데려가 코피로 범벅이 된 놈에게 씻으라고 했다. 놈은 씻으면서, “개애새끼들. 다들 개새끼라구. 씨발 나를 사람 취급도 안해. 그 씨발 새끼들, 불독 그 새끼도, 너도… 씨발 다 ☆같은 놈들이야.”라고 구시렁거리며 훌쩍거렸다.

나는 그런 놈이 우습기도 하고 안됐기도 해서 다 씻은 놈을 데리고 학교 뒤 솔밭으로 가는 풀밭으로 데려가 앉으라고 했다.

“뭐가 그렇게 개같은 데?”
“애들이 날 상대도 않고 촌놈이라고 깔보잖아. 그 씨발 놈들 지들이 얼마나 잘났다고…으이씨”
“그래서?”
“그런데 나는 이게 무슨 꼴이냔 말이야. 불독같은 새끼한테 읃어터지기나 하고 말이야. 그럼 싸가지 없는 반 새끼들은 날 병신이라고 키들거리며 웃고 말이지. 다 개같은 새끼들이야.”
“그러지들 않아. 좋은 놈들이야. 니가 맨날 걔들 앞에서 까불고 울고 하니까 널 쉽게 볼 뿐이지.”
“씨발! 넌 공부 잘 하니까 잘 대해 주지만… 난 뭐냐 공부도 바닥을 기고, 건들거리기나 하고, 에이 씨발 뭐 한 구석이라도 잘난 곳이 있어야지.”
“내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무슨?”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글을 읽을 줄 알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난 쌈질이나 하고 사고나 칠 줄 아는 놈이었다고…

“믿을 수 없어. 너같이 공부도 잘하고 그런 애가?”
“이젠 공부 잘 못해. 반에서 20등하기도 힘들어.”
“그만 하면 잘하는 것 아니야?”
“하긴 나처럼 공부하고 20등이면 괜찮은 셈이지.”
“그런데 어떻게 지금처럼 되었냐?”
“글을 알고 나서 책을 많이 읽었지. 그랬더니 조금씩 변했어. 차분도 해지고.”
“책이 그렇게 좋은 거냐?”
“처음에는 읽기 힘들지. 그러나 읽다보면 차츰 나아져. 재미도 생기고”

놈과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다보니 우리는 다음 시간이 시작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럼 너를 나의 사부라고 할께.”
“사부라니?”
“그냥 나의 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