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앞의 잣나무

무풍교 위에서란 글을 쓴 이유는 금각사라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이웃분의 포스트에서 알리 칸의 카왈리라는 파키스탄 전통음악을 듣고, 상당한 감동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티벳 불교의 삼밀(三密)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점도 가세했다.

통도사의 통도(通度)란 <몽땅 다 피안의 세상으로 건너가다>라는 뜻으로 사홍서원 중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일체의 중생, 즉 생명체를 구제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도달하겠다는 맹세)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나, 그 직접적인 본의가 잇닿아 있는 글은 우리가 잘 아는 반야심경의 <바라승아제>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사바하(Gate Gate Para gate Para samgate Bodhi Svaha) 라는 주문은 가자, 가자, 모두 가자 모두 다 저 언덕으로 가면, 깨달음을 얻으리라 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주문(呪文)이란 만트라를 말한다. 만트라(Mantra)는 입이 짓는 업을 씻는다는 구밀(口密)에 해당되며, 육자대명왕진언이라는 옴 마니 반메 훔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몸이 지은 죄를 씻는 신밀(身密)은 부처님의 손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는 수인(手印 : Mudra)이 있고, 생각이 지은 업을 제거하는 의밀(意密)에는 만다라 등의 도상으로 표현되는 얀트라(Yantra)등이 있다.

그러나 불교도 모르는 내가 밀교까지 알 수는 없어서 통도사의 글의 한 모퉁이에 이런 것들을 쓰려다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글을 쓰면서 용을 만나러 간 그날 오후에 경봉스님을 만났으면 지금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으며, 남도의 절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공양(절밥)을 받아 먹으면서도 불교를 사이비 혹은 네다바이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불교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접하는 책이 보통 부처님의 전기이거나 금강경, 아니면 법구경, 혹은 대승기신론 등이 될 것이다.

나도 초기에 부처님의 전기와 숫타니파아타, 법구경, 대승기신론 등을 읽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전기를 읽으면서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 만큼의 감동도 없었다. 남전불교 경전인 숫타니파아타나 법구경의 경우 진부한 잠언 이상은 아니었고, 우파니사드보다 진리에 대한 치열한 갈구가 없어 보였다. 결정적으로 대승기신론소의 경우, <마하야나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기 위한 에세이 및 그에 관한 주석>이라는 제목임에도 나는 단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불자들은 말한다. 무명의 베일이 벗겨지면 확철대오하여 부처님의 팔만법문의 의미가 주악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쌍계사의 툇마루에 앉았을 때, 옆 방의 강원을 막 마친 스님이 말했다.

“개울물 소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때에야 화엄의 뜻이 밝아질께요.”

그 힘든 강원을 나왔다는 스님께서 무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던가?

아비달마구사론, 중관론, 금강경, 유식론, 기타 경전이나 여래장 등을 설명하는 그런 것들을 읽었다, 그러나 불교는 대웅전의 여래좌상이나 되는 듯, 오불관언, 중생인 나를 제도하는 것에 눈 돌리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눈을 안으로 돌려 입정에 들어있기만 했다.

이러한 불교는 요지부동, 내가 알 수 없는 것(불가사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쌍계사에서 지나던 어느 날, 친구가 총무스님 방에서 가져 왔다는 책에서 김일엽 스님의 오도송을 읽었다. 그 구절이 전혀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 글을 읽는 순간, 쌍계사 주변을 감싸고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멈춰버린 듯한 느낌과 자칫하면 알 것 같기도 하고, 평생을 용맹정진하여도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율배반적인 감상이 떠올랐다. 또 그 뜻을 아는 즉시 나의 내공 수위가 일엽스님과 차등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취산에서 부처가 설법을 할 당시, 꽃비가 내렸는 데 부처께서 꽃을 약간 비틀어 대중에게 내어 보이셨고(拈華示衆),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고 하며, 그로 인하여 부처의 정법이 가섭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그 후 구구절절한 말들이 안출되었지만, 말로써 진리를 전할 수 있다면(依言眞如), 남들도 알아듣게 말로 하지, 가섭은 왜 씨잘때기 없이 웃음(離言眞如)으로 전했을까?

후일 내 나름대로 얻은 지식을 더듬어 선가(禪家)의 화두(話頭)에 대하여 생각해 보니 이러하다. 이른바 시공이라는 물리학적 조건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생멸문(生滅門: 현상)에 대해서는 언어로 말할 수 있으나, 시공을 초월한 진여문(眞如門: 실상)에 대해서는 언어가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바그완(후일 오쇼라고 개명함) 라즈니쉬는 깨달음의 경험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깨달은 자는 사라지는 데 누가 깨달음을 전할 것인가 라고 궤변 아닌 궤변을 늘어 놓는다. 즉 노자가 말하는 도를 도라고 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는 의미의 명료한 해석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연기관계에서 아버지의 아들, 자식의 아버지, 이모의 조카 등으로 타자로서의 나의 갈라짐을 어거지로 나라는 존재를 설정하여, 자기동일성(Identity)을 확보한다고 한다. 나의 차를 누가 긁었을 때의 가슴에 쭈악 기쓰가 가는 느낌 등의 것들이 하나의 집착을 만들고,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믿게 한다고 한다. 만약 나의 차를 누가 긁었을 때, 긁힌 것은 차요, 나는 나다 라는 자기동일성(我相)이 사라지면, 공포와 분노 등이 사라지고, 삼라만상에 깃든 나(梵我一如)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우주 삼라만상과 나의 차이를 잊었을 때, 결국 나는 사라지고 우주에 넘치는 의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하기 얼마 전에 자신이 이 세상에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不立文字)는 말씀을 남기신 이유도 이런 데에 기인하지 않는가 싶다.

결국 간화선을 방편으로 삼는 선가에서는 화두를 들어 참구해나가는 과정에서 公案(古則: 정부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국민이 준수해야 할 사안을 뜻하는 말이나, 이것을 선가에서는 고래로 조사들의 말씀·문답 등 부처 조사와 인연된 종강(宗綱)을 수록하여 공안이라 함)을 선(禪)의 과제로 삼는데. 이 화두가 말이긴 한데, 만법의 실상을 말로써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방편을 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不立文字, 敎外別傳이란 한마디로 말도 되지 않는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佛道)이고 로직이고 자시고 간에 되는대로 가르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느 땡초가 나타나 되든 안되든 씨부리면 법어(法語)요, 산이라면 산이 되고, 물이라면 물이 되고, 똥이라면 똥이 되게 되어버린 것이다.

선가에서는 불법(大道)는 무문(無門)이라 한다. 큰 진리는 문이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 결국 크게 열려져 있어 어디가 문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는 뜻이건만, 조사가 든 화두에서 문을 찾아온 것이 산문의 현실이며, 불법을 얻겠다고 아예 방문까지 시멘트로 공구리치고 들어 앉아 참구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대도무문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길 없는 길>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조사들이 걸어간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며, 그 길은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부처가 보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보이면 조사도 작신나게 패 죽이라고 한다. 그들 선지식이 참다운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럴 듯한 길이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위에 대한 환상을 없애기 위하여 아예 문이 없다고 한 것인 데, 버젓한 문은 공구리치고 벽을 뚫고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돌대가리 아니면 어찌 그 벽을 박살내고 나가리오?

그런고로 스승이 낸 화두에 대한 사지선다식의 정답은 없다.

조주가 고양이를 두동강이 낸 남천에게 그럼 정답이 뭡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남천 또한 조주처럼 짚신을 머리 위에 올린 채 방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수능시험이나 토플에 물들어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진실은 진실로 천차만별, 도는 똥덩어리에도, 불경에도, 코딱지에도 있으나 그 묘용은 항상 틀리며, 그때 그때 다르다.

여기에서 120살까지 살았다는 조주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을 방편으로 조주에서 놀았던 만큼 古佛이요 뭐요 하며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TeaNGo/Others

조주스님의 속성은 학씨 법명은 종임이다. 778년에 나서 897년에 입적을 하였으니, 세수로 백이십까지 살았다. 그는 산동성 조주부에서 태어나 조주에서 죽었다. 그래서 조주라고 한다.

僧問趙州, 萬法歸一, 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 作一領布衫. 重七斤

중 하나가 묻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조주가 말하길 청주에 있을 때, 베 적삼을 하나 만들었거든, 그런데 무게가 일곱근이야.

조주 스님은 똘중이거나, 심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纏垂手: 저자거리로 돌아가 손을 드리우다)의 경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화두에는 서릿발과 같은 날카로움과 무게가 없고 해학적일 뿐이다. 그의 화두를 보면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 배에 가스가 차면 방구를 뀌는 평상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120살이나 살았나 보다.

여기에서 조주의 에피소드를 나름대로 그려본다.

EPISODE 1.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원문은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 이다. 이 공안은 선가에서 화두로 자주 쓰였다고 한다.

어느 날 학승이 와서 묻는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스님은 방 밖 뜰에 커다랗게 자라난 잣나무 위로 가을의 햇살이 쏟아져 일렁이는 것을 본다. 조사? 그 말라비틀어진 것이 이 땅에 와서 남긴 것이라고는 쉰내 나는 그따위 질문 밖에 더 있느냐? 그가 이 곳에 왔다면 그것은 네 놈들에게 자유를 주러 온 것이다. 아해야!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저 아름다운 잣나무를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스님은 탄식처럼 말한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학승은 무연한 스님의 대답에 화가 난 듯 말한다.

“비유로 말씀하지 마십시요.”
“난 비유같은 것은 모른다.”
“다시 묻겠습니다. 조사께서 서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에서, 아름다운 잣나무의 자태와 빛의 일렁임을 너는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네가 진정으로 고개를 돌려 저 마당에 자라있는 저 잣나무를 본다면, 더 이상 달마가 온 까닭을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텐데…

조주는 방 밖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EPISODE 2. 차나 한 잔 들고 가지(喫茶去)

조주가 살던 산동성은 북쪽이라 좋은 차가 없다. 아마 남쪽에서 온 누군가 조주에게 잘 가르쳐 달라고 뇌물로 주었는 데, 사람 좋은 조주는 이놈 저놈 아무나 차를 대접하곤 한 모양이다.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어느 학인을 보고 스님이 물었다.

“이 곳에 와본 적이 있나?”
“처음입니다.”
“그래? 그럼 차나 한 잔 들고 가지!”

그리고 또 다른 학인이 왔다.

“이 곳에 와본 적이 있나?”
“네! 전에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차나 한 잔 들고 가지!”

그때 옆에서 그 모양을 보고 있던 한 스님이 물었다.

“선사께선 이 곳에 왔던 사람이나, 처음 온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차나 한 잔 들라고 하십니까?”

그 질문에 나같은 똘중은 아무 놈이나 붙들고 차도 한 잔 못할 팔자네 하며, 화두고 조사선이고를 떠나 조용히 앉아 따스한 차 맛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 원주,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고 가지 그래!”

EPISODE 3. 내려놓아라(放下着)

엄양이 조주스님에게, “다 버리고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찌하면 됩니까?(一物不將來之時如何)”하고 물으니, 스님이 “내려놓아라!(放下着)”하고 말했다. 아무 것도 없는 데 버리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싶어,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버리라고 했어도 버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반문하자 스님은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게나.”라고 했다는 데서 출전을 찾을 수 있지만, 이 이야기보다 다음 이야기가 조금 나은 것 같다.

초심자가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드리자 평소에 뇌물을 좋아하던 스님은 곳감이라도 가져왔을까 하고 물었다.

“뭘 가져 왔누?”

대덕인 줄 왔더니 이 놈의 영감탱이가 뭘 바라는 걸까 하며, 쭈뼛쭈뼛 말했다.

“스님 얼굴이나 잠시 보고 갈려고 그저 빈손으로 왔지라…”

조주스님은 자신의 질문으로 초심자의 마음 속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자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한다.

“그럼, 내려놓게.”

영감탱이가 안 가져왔다는 데, 뭘 내려놓으라는 거야, 산 속에 산다고 산적보다 더 하네 하며,

“아무 것도 없는 데 무엇을 내려 놓으라구…?”

그는 사람이 평상심으로 살아가기가 이토록 힘들구나 하며, 한숨을 한번 쉬며,

“그럼 계속 들고 있어.”

EPISODE OTHERS

조주의 화두는 하나로 요약하면, 평상심이다.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보는 마음처럼 힘든 것이 또 있겠는가. 우리는 산을 보면서 돈 계산을 하고, 물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갈 걱정을 한다.

한 스님이 선사를 찾아와 인사를 드렸다.

“저는 공부한 지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큰 스님께서 일장 훈시를 하며, 마음을 닦고 용맹정진하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냐! 저녁 공양은 했느냐?”
“예”
“그럼 바리때(스님들의 밥그릇)나 씻어라.”

* 자다가 봉창 : 마음을 닦는 것이나 설거지나 一如한 즉, 그릇이 마음이요. 마음이 그릇이다.

참선하는 중이 조주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스님 가장 다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은 다급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으이씨! 오줌이나 눠야 겠다. 이런 사소한 일도 나처럼 늙은 중놈이 직접해야 하다니…”

하고 뒷깐으로 갔다.

그런 즉 일체의 불법이 다 먹고 싸고 자고 난 연후에나 가하니, 趙州木(뜰 앞의 잣나무)이 푸르름은 어찌된 까닭일까?

무풍교 위에서

DancingWindBrdg

통도사 무풍교

금각사를 읽다가 벽암록 63칙 남천참묘의 해석을 보자 불현듯 통도사가 생각났다. 아마 남천참묘의 구절보다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79년의 여름, 통도사에 이틀인가 삼일인가 머물던 그때를 생각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남천(보원)스님이 고양이를 칼로 두동강이 내다(南泉斬猫)>는 남천 슬하의 땡중들이 꼴베기를 하다가 만나 새끼고양이를 서로 자기 것이다 라고 우기는 사태가 벌어지자 남천이 꼴 베는 낫을 들어 “너희들이 올바른 해결책을 구하면 고양이를 살려줄 것이고, 구하지 못하면 즉각 베어버리겠다”라고 하자, 대답이 없었다. 그에 남천은 고양이를 베어 죽인다. 그 날 저녁, 수좌인 조주가 돌아왔고 남천은 제자에게 오늘 낮에 여차저차 했는 데 너라면 어찌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짚신을 벗어 자신의 머리에 올린 채(제 64칙 趙州頭載草鞋) 나가버린다.
그 모양을 본 남천은 “아아, 오늘 낮에 네 놈이 있었다면 고양이 새끼는 살았을 텐데.”라고 탄식한다.

금각사의 주지 다야마 도센은 <남천이 고양이를 벤 것은. 자아의 미망을 끊어 망념과 망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비정한 실천으로 고양이의 목을 자르고 일체의 모순, 대립, 자타의 확집을 끊은 것이다. 이것을 살인도(殺人刀)라 일컫는다면, 조주의 그것은 활인검(活人劍)이다. 흙투성이가 되어 천대받는 신발을, 무한한 관용에 의하여 머리 위에 올려놓음으로서 보살도를 실천한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주인공의 친구인 가시와기는 <고양이가 미의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간과하고 있지… 미라는 것은, 마치 뭐라 할까, 충치와도 같은 거야…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정말로 같은 것일까? 만약 이것이 원래 나의 외부 존재였다면,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나의내부와 연결되어, 내 통증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 이 놈이 존재하는 근거는 뭘까? 그 근거는 나의 내부에 있었을 까? 아니면 그 자체에 있었을까?… 알겠나? 미란 그런거야. 그러니까… 고양이는 죽었어도, 고양이의 아름다움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토록 해결이 안이했던 것을 풍자해서, 조주는 그 머리에 신발을 올려놓았지…>라고 말한다.

금각사 주지의 해석이 벽암록의 주소류에 달린 고답적인 것이라면, 가시와기의 해석은 남천참묘와 조주의 짚신의 본의와 상통되지는 않을지라도, 그의 연기론적인 해석은 나가르주나의 정치한 공관론적인 사유에 맞닿아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벽암이 채집한 공안들에 대한 구구절절한 해석은 쓸데없는 구업(口業)에 불과할 뿐,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될 수는 없다.

그해 여름, 경봉선사가 계시던 요사채의 뒷문을 열었을 때, 보리수를 보았고, 햇빛이 쏴르르 소리를 내며 잎을 흔들고 지나는 정적에 잠시 떨었고, 숲의 삼엄함 때문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내가 아~하고 낮은 소리를 내자, 잎사귀 사이에 맺혀 있던 햇빛들이 분분히 떨어져 오후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로와 그 빛들을 맞으며 기지개를 켰다.

후일, 내가 벽암록이나 흔한 공안을 보면서 저 위의 64칙에 나오는 조주할아버지 이야기에 늘 따라붙던 그 趙州木(뜰 앞의 잣나무: 庭前柏樹子)에 대한 영상은 늘 그 보리수가 대신하곤 했다.

아마 금각사를 읽으면서 통도사를 떠올린 것은 통도사에 도착한 그 날, 백운암에서 우리를 맞이하러 내려온 방장과 고시생들이 들려준 그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조주의 머리에 올린 짚신이 어쩐지 백운암의 주지를 떠올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운암에 기거하던 고시생들은 주지를 도리우찌라고 불렀는 데, 그는 50cc짜리 오토바이로 산길을 드라이브하는 일을 즐겼고, 염불도 제대로 못했다. 그는 늘 도리우찌를 쓰고 다녔는데, 도리우찌라는 것이 꼭 짚신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술이 얼마쯤 들어갔을 때,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여기에서 벌어진 일이 서울의 신문에는 났나 모르겠네?”

그 말이 나오자 이구동성으로 야 그런 일이 신문에 나면 이 곳이 이렇게 조용하겠냐, 그 일이 사실이겠냐, 사실이다, 아니다 하면서 시끄러웠고, 술집 여주인까지 거들며 그것이 사실이라며, 요 며칠 전 그 지서에서 일하는 순사가 와서 자신이 확인을 마쳤다면서 넌지시 막걸리 주전자와 안주를 올려놓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인데요?”하고 우리가 묻자,
“혹~시 시~간이라고 아요?”
“시간이라면?”
“시체에 흘레붙는 것 안있습니껴?”

나는 놀랐지만 흥미가 있었기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니까 갱찰이 따묵읏따 아입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달 전 쯤 통도사 앞의 여관에서 젊은 처녀가 자살을 했다. 검시관이 오기 전까지 지서의 젊은 경찰이 자리를 지켰고, 검시관이 와서 사인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정액이 발견되었고, 자살이 아니라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과정에서 젊은 경찰이 죽은 여자가 너무도 예뻐서 그만 덮쳤다고 자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경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궁금하지요?”

그는 막걸리를 한모금 쭉 들이키고,

“재수가 좋을라카면 그리도 되는기라. 그 소리를 듣고 지서장캉 양산서장캉 심정이 우옛겠습니껴? 문디이같은 자석 때문에 모가지가 날라간다고 목을 쭉 빼놓고 있을 때, 서울서 죽은 처녀의 아버지가 비까한 리무진을 타고 지서에 턱 나타난 것 아입니꺼. 양산서장이 눈썹을 휘날리며 지서에 도착하니, 처녀의 아버지가 죽은 처녀를 따 묵은 갱찰을 붙들고 뭐라캤는지 아능교?”
“뭐라고 했는데요?”
“아이고, 우리 사위~ 했다는 것 아입니까.”

그 후 처녀의 아버지는 경찰서장을 불러다 자신이 모처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이 사건을 서울에 올라가 잘 처리할 것이고 어려운 일 있으면 자신한테 연락을 하라고 명함을 남긴 뒤, 젊은 경찰을 불러다 자신의 딸이 처녀귀신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해주었으니 자신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라며, 꽤 거금의 금일봉을 손에 쥐어주고 떠났다는 것이다.

엄혹한 유신시절에 벌어진 이 기묘한 사건을 들으며, 엽기적인 그 사건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런 일들이 모처에서 나온 아무개요라는 말로 그냥 덮어지는 사태에 대하여, 웃음으로 우리는 분노했고, 시체의 썩은 냄새에 정액을 반죽하여 풍문을 만들어 숨쉴 수 없을 정도로 강포한 유신체제에 키들거리며 비굴한 반항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통금 전에 암자로 돌아가기 위하여 술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기가 그 처녀가 죽은 곳 아닙니까.”하고 누군가 여관의 이층 창문을 가르켰다. 그리고 우리들은 읍내를 벗어나 적송냄새가 가득한 통도사 앞을 지나, 산길을 따라 백운암에 도착했다.

괜찮다는 우리의 말에도 불구하고 고시생들은 방 한 칸을 우리에게 비워주었다. 산중이라 모기가 별로 없음에도 그들은 모기장을 쳐주고 사라졌다.

잠이 오지 않아 방문을 열어 둔 채 풀냄새가 섞인 밤 공기가 방 안에 스며들도록 내버려두었다. 풀벌레가 쓰륵쓰륵거렸고 간혹 어둠의 깊이를 확인해 주려는 듯 까끙하고 산새가 울었다. 그러나 어둠이 만든 평면 속에 갇혀있던 산과 수풀이 그 소리로 해서 하염없이 넓어지고 산봉우리와 계곡이 그 공간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나 새가 어느 방향에서 우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친구는 잠이 들었고, 나는 처녀의 죽음을 생각했다. 왜 자살을 했을까? 젊은 경찰이 죽은 그녀를 겁탈하고 있을 때, 그 처녀의 얼굴은 죽음으로 부르튼 백랍같은 색으로 썩어가는 약간 달짝지근한 냄새를 피우고 있던 것은 아닐까? 혹은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검은 눈동자 위로는 어물전의 죽은 생선의 눈에 피어나던 무망의 안개와 같은 것이 피어나지는 않았을까? 그는 죽은 여인의 그 눈을 바라보며 그 짓거리를 할 수 있었을까? 아니야, 스스로 자살한 여인이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돼. 죽은 시체의 어느 부분을 보고 젊은 경관은 성적욕망을 느꼈을까? 입술이었을까, 아니면 눈썹? 하얀 목이거나……

아니면, 죽엄이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성적 자극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아닐까?

젊은 경관의 음욕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수채 구멍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구멍은 그냥 마구 빨아들이기만 할 뿐 아무런 반향없이 무화될 것이고, 자신이 가진 수치와 사악함과 비굴함에 대하여 젊은 여인의 죽엄은 바위처럼 무관하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젊은 경관의 아랫도리에 힘이 가게 했고, 싸늘하고 메마른 그녀의 살 속에 자신의 뜨거운 것을 쏟아내게 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야 욕정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고 엽기적인 섹스란 하나의 광기에 불과할 뿐이야……

다시 쑥꾹하고 밤새가 울었고, 어둠이 방문을 넘어와 나의 어깨를 짖누르기 시작했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저것을 잠그지 않으면 산 이슬이 내려 아침이면 추울텐데… 추울텐데… 하면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추위에 깨어 방문을 닫으려 하니 동쪽이 희끄무리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 방 밖으로 나가 백운암 뜰이 비탈로 끝나는 곳에 섰다. 발밑으로 동해까지 영남알프스의 연봉들이 주욱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 안개는 산능성이들을 따라 희미하게 피어난 듯 했으나, 아침 해가 떠오르자 수증기처럼 말려 오르며 구름이 되었다. 아니 구름으로 보였다. 발 밑 산들의 정수리가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아침이 되었다. 그 아침은 너무 투명하고 돌연히 밝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둠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했다. 어둠이 오는 대신, 동해 쪽으로 툭 터진 언덕 위에 세워진 백운암에 찾아온 아침은 도시의 아침이 시시각각 빌딩과 골목 사이로 변화하는 것과는 달리 한시간 동안이나 요지부동 변화없이 그대로 였다. 해는 눈 앞에 정지한 듯했고 수평으로 날아온 햇빛을 감당할 수 없어 눈길을 돌려야만 했다.

우리는 아침 공양을 끝내고 통도사 소개를 시켜준다는 고시생을 따라나섰다. 그는 9년동안 절에서 살았다고 했다. 사법고시라는 것이 그에게는 생활에 대한 면죄부처럼 보였다. 그는 돈 한푼 벌지 못하면서도 도시에 있는 아내에게 아무런 자책을 느끼지 못했고, 자식을 3개월동안 보지 않았으나 그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에 대한 지금의 무책임함은 고시패스라는 그것 하나로 충분히 배상될 것임을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고시합격이란 돈오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그에게 고시합격에 이르는 길이란 점진적이 수행의 결과라기 보다 갑자기 찾아오는 돈오라는 혜능의 남종선의 방향이었다.

“고시 패스란 죽어라고 공부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야. 되어야 되는 것이야. 삼년은 죽어라고 했지. 그리고 나서 이 이치를 알았지. 깨닫고 나니 산사의 염불 소리가 듣기가 좋더군.”

그러나 그가 뻑하면 읊어대는 ‘미필적 고의,에 대하여 설명을 해달라고 하니, 그 법률적 용어를 몹시도 난해한 철학적 개념으로 풀어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미필적 고의의 주체도 사건도 사라져 버린 그런 것이었고, 모든 인간의 행위는 연기적인 세계관에서 볼 때, 몽땅 미필적 고의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 또한 식물을 죽이는 행위이며, 우리는 그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도 밥을 먹는단 말씀이야. 그러니 범우주론적으로 볼 때, 그것 또한 미필적 고의 아니겠어?”

산을 내려온 우리는 개울을 건너 천왕문인가의 밑으로 해서 통도사로 들어섰다. 통도사에는 사찰에서 볼 수 있던 단청의 울긋불긋한 색이 없었다. 나무에 먹인 자주빛과 역청의 색이 나무 속으로 스미면서 퇴화되고 오래되고 메마른 나무의 색이 그 색깔의 밖으로 번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통도사를 처음으로 보았다. 건물들이 세워졌을 당시의 인위의 거친 틀이 낡고 삭아서 자연과 다름이 없는 불이(不二)의 변경에서 서성이고 있었고, 정자방으로 지어진 대웅전에 들어섰을 때, 부처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계단과 같은 제단 만 있고 그 위에는 짙은 대웅전 그늘에 물든 빈 바람만 있었다. 그 뒤로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다는 사리탑에서 한 여름의 백랍같은 햇빛이 전 안으로 흘러들었고, 매미가 거친 숨을 뱉아내며 울기 시작했다.

통도사에는 삼보고찰이자 오대총림으로 다수의 전각이 많았음에도 볼 것이 다양하지 않았다. 평지에 세워진 건물들은 모두 같은 색으로 소박했고, 이조 중기의 양식으로 지붕의 무게로 하염없이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산 사면이 아닌 평지에 모두 같은 눈높이로 펼쳐진 사찰은 보기에 편안했고, 낡았음에도 처마가 좁고 수직으로 힘의 균형을 받는 전각들은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사찰의 향기는 해인사나 송광사보다 깊었다.

“이 영축산은 구룡지라고 해. 자장 율사께서 창건할 때 여덟마리의 용을 죽이고, 한 마리는 눈이 멀게 하여 이 연못에 가둬두었다고 하지. 그래서 이 연못의 물은 한치 깊이도 보이지 않지. 아무도 이 연못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

대웅전의 옆 건물의 바로 옆에 직경이 1미터도 안되는 못에는 한송이 연꽃이 피어있었고, 그의 말대로 물이 탁하여 물 안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번 손을 넣어보아도 좋아. 용에게 물리지 않음 다행이지.”

나는 차마 손을 그 연못에 넣어 볼 수 없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신비하지.” 통도사를 벗어날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개울을 따라 읍네 쪽으로 걸어갔다.

늘씬한 적송림에 들어갈 때 즈음에,

“저길 봐! 저 바위 등에 난 채찍 자국들… 용들은 죽어서 돌이 되었지. 아직도 채찍자국 위에서는 가뭄 때에도 물이 흐르지, 마치 용들이 피 흘리는 것처럼…”

우리가 읍내에 들어서기 위하여 무풍교를 지날 때, 그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서라고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부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는 손을 높이 흔들며 읍내에 들어섰고,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을 시켰다.

“아까 우리가 서 있던 다리 이름이 뭔지 알아?”

모른다고 했다.

“무풍교! 바람이 없다는 무풍교가 아니라, 춤출 무, 바람 풍, 바람이 춤추는 다리이지. 나중에 돌아갈 때 한번 느껴봐. 다리의 바로 옆에 한점의 바람이 없더라도, 다리 위에만 서면 바람이 불지. 센 바람도 아니고 잔잔한 바람이 춤추듯 불지. 그 다리를 건너면 또 바람이 없어요.”

“왜 그렇지요?” 우리가 묻자 그것은 암자로 돌아가면서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짜장면을 먹고 읍내를 떠돌다가 백운암으로 향했다.

다리 옆에는 없던 바람이 무풍교 위에 서자 이마에 난 땀을 식히기에 적당하게 불었다. 우리는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다리 난간에 기대어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내려다 보았다.

“저기 보이는 조그만 봉우리 보이지? 저기가 여의봉이야.”

그가 가리키는 곳에 봉분같이 동그랗게 생긴 봉우리가 있었다.

개울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안을 가르키며,

“저기가 영취산의 용들이 엎드려 있는 곳, 용구(龍口)이지, 용의 아가리.”

거기는 산능성이들이 몰려 내려와 포복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끝은 짙은 숲들로 어두웠다.

“장님이 된 용이 저 여의봉을 물기 위하여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서, 이 무풍교 위로 용의 숨이 바람이 되어 춤춘다는 것이지.”

그래서인지 바람 속에 숨이 토해내는 습기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살아있는 용을 보고 싶지 않아?”
“어떻게 볼 수 있다는 거죠?”
“저 쪽 용의 아가리가 있는 곳으로 가면 볼 수 있지. 날 따라와.”

우리는 다시 통도사를 지나 개울에서 발을 담그고 놀다가 산길을 조금 거닐다 극락암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본전의 뒤의 행랑채와 같은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바로 여기가 용의 아가리야. 우리는 용의 입 속에 든 어리석은 중생이구.”하고 말한 뒤, “스님… 스님… 큰 스님, 저 처운입니다.”하고 소리를 낸 후, 작은 요사채의 방문을 열었다.

두평이 채 안되는 방 안에는 덩그라니 서탁과 퇴침 만이 놓여 있을 뿐 이었다.

그는 놀러가셨나 하며, 빈방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섰다.

“오늘 자네들, 용보기는 글렀네. 용이 하늘 빛이 보기 좋아 날아갔나 보이.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뭐해?”하고 그는 퇴침을 목에 괴고 빈 방에 벌렁 누웠다.

우리는 쭈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서며 “여기가 어느 스님의 요사채이길래…?”하고 물었다.

“경봉이라고… 마음씨 좋은 돌쭝이 사는 데 라네…”
“경봉스님이요?”

당시는 아직 성철스님이 조계종정이 되지 않았을 때로, 해인총림에는 성철, 영축총림에는 경봉선사가 조실로 법맥과 선통의 기틀 위에 앉아 있었다고들 말했다.

후일 82년에 경봉스님이 열반하여 다비를 치루고 난 후, 그의 몸에서는 단 일과의 사리도 찾을 수 없었으나, ‘93년에 입적한 성철스님의 몸에선 백과에 가까운 사리가 나왔다고 했다.

나는 경봉스님에 대하여 하나도 모른다. 그가 쓴 글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다. 단지 그의 텅 빈 방과 뜰 앞의 보리수 만 보았을 뿐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이 뭡니까?(祖師西來意)라고 묻는 제자에게 조주스님이 뜰 앞에 잣나무(庭前柏樹子)라고 대답을 했던 아니면 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喫茶去)라고 말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성철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지랄같은 화두를 남기고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하여 묵언정진을 통하여 백과의 사리를 얻었다면, 차라리 달마고 잣나무고 차 한잔이고를 일거에 내려놓고(放下着) 영취산 아래 개울물에 발이나 씻을 일이었는 지 모른다.

사리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면, 그의 말대로 경봉은 마음씨 좋은 똘중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건건하여 자강불식하다는 하늘에서 근육을 볼 수 없듯, 용이 사라진 자리에 흔적은 없는 것이었다.

“거기 미닫이 문을 열어봐. 뜰에서 멋진 보리수를 볼 수 있을꺼야. 대덕이 머물던 곳의 보리수 열매를 내려 백팔염주를 만들어가지면, 아마 온갖 번뇌 망상은 사라지고, 많은 공덕을 이룰 수 있을꺼야.”

나는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오후의 햇살이 쏴르르 흐트러졌다가 다시 모였다. 뭔가 하늘을 향해 날아갔는 지도 모른다. 혹시 용이었을까? 빛이 다시 모이자 뜰에는 정적이 감돌았고 그 가운데 보리수가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나는 뜰로 내려갔다.

그리고 보리수의 그 뒤틀린 둥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주역 건괘의 용구(用九)에 보면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모든 용을 보되, 머리가 없으면 길하다.(見群龍 无首吉) 이것에 대한 해석은 그대들의 자유일 뿐이다.

조주 할아버지의 화두(뜰 앞의 잣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