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못난 제자의 독백

부모님께 했던 거짓말 중에 가장 죄송스러웠던 거짓말이 있으세요?
블로그씨는 학원 등록한다고 받은 돈으로 사고 싶은 물건을 샀어요


아시는 분은 다 아는 사실이고……
어머니나 아버지께서도 너무도 뼈저리게 아시는 오래되고 서글펐던 사실.

명백하게 강요된 거짓말을 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 나는 나중에야 알았던 허위와 비리를 위하여 아홉 살의 나이로 어른들의 흔들리는 세계를 위하여, 어머니의 가슴이 아프지 않도록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것이 뼈저리게 죄송스러웠고 서글펐다.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아버지가 불현듯 저녁을 함께 하시다가

평생을 교단에서 분필가루로 밥술을 얻어먹은 사람으로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네 국민학교 이 학년 때 담임은 정말로 추악하다 못해 사악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네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교감이 되신 후, 교육의 일선인 교단에 서 있었을 때의 평교사로서의 당신에 대한 회오도 어리신 듯 몹시 서글프게 들렸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자 은사이셨던 그 분이 정말로 추악한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일제고사라는 것이 다가오고 있었고, 담임은 우리에게 성적을 올려야 된다며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닥달했지만, 꼴통인 나에겐 강 건너 불처럼 아무 현실감 없는 것이었고, 나의 현실이란 책가방 안에 교과서나 연필, 공책이 없어도 학교만 왔다 갔다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었고, 일제고사 답안지에 내 이름만 적어 넣으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시험 전날. 담임은 반에서 이른바 꼴통들을 불렀다. 물론 거기에는 나도 끼어있었지.

너희들 시험보기 싫지? 그래서 선생님이 너희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내일은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된다.

비록 내가 꼴통이라 공부도 지지리 못하고 글도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담임이 의도한 바가 뭐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일제고사의 반 평균성적을 망쳐버릴 것이니까 오지 말라는 것임을 나는 알았고 학교를 쉬라는 그 즐거운 말씀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책가방은 무거웠다.

다음 날 아침, <담임선생이 학교 오지 말라고 했어>라고 말하지 못하고,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엄마의 가슴이 미어질까봐. 남들은 재잘대며 학교 쪽으로 가는 데, 나는 점포의 함석 문을 세워두는 건물 틈새에 책가방을 찔러 넣고 동네 뒤 켠에 있는 인왕산으로 올라갔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로 간 오전, 산에는 정적과 이슬로 가득했기에 풀숲에 누울 수도 없어 양지바른 바위에 누워 하교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늘은 파랬고 시간은 누랬다. 그때 구름이 스쳐 지나갔고, 나의 인생이 이미 글러 버린 것 같다는 빌어먹을 생각이 스쳐 지났고, 하교시간을 알리는 정오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까지는 까마득했다.

산 아래 동네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산을 내려가 함석 문 사이에서 책가방을 꺼낸 후,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잘 다녀왔니?>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나의 이 거짓말을 알고 계셨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내 마음이 상할까 아는 체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의 담임은 두 사람에게 서글픈 거짓말을 시킨 셈이다.

어느 날인가 둘째 때문에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이러 저런 말을 하는 가운데

저희가 애들 때문에 얼마나 희생을 하는 줄 아세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 부부는 그 말이 가진 아니꼬운 뉘앙스에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학교에 자식을 보내고 있다는 죄로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참으로 희생하는 자들은 희생하고 있다는 선생도 정책을 짜내기에 골몰하는 문교당국도 아니라, 단지 부모와 학생이며, 찌드는 것은 나라의 백년대계다.

아마 나의 담임은 은퇴를 하신 지 오래 전일 것이고,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정년퇴임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 까? 그녀도 자신이 한 평생을 인재육성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희생하셨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아! 선생들이여! 더 이상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지 말지어다.
단지 자신이 학생들 때문에 밥술을 얻어먹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못난 제자의 독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