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古文의 경학 외에 天文曆數에 걸쳐 광범위한 지식욕을 갖고 낙양의 太學에 진학하였다. 뒤에 당시 최고의 학자 마융을 師事하고 수년 후 향리에 귀환할 때 선생으로부터 “나의 학문은 정현과 함께 동으로 갔다”고 탄식할 정도로 면학하였다. 遊學 십여 년에 향리의 학생을 교수하였다. 이후 당고의 화로 학문이 禁錮됨에 문을 닫고, 집에서 연구와 저작에 몰두하였다. 유비가 제자였다고 주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