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8

울림통

KLH 32을 샀다. 1971년에서 74년 사이에 생산된 이 조그만 스피커는 너무 오래되었거나 값싼 탓에 제품에 대한 사양서를 찾아볼 수 없다. 앰프의 볼륨을 얼만큼 키우면 스피커가 터질 것인지 알 수 없다. 스피커의 한쪽 통은 불혹의 세월을 건너다 굴렀고 한쪽 귀퉁이가 깨지고 이그러졌다. 8인치 우퍼, 2.5인치 트위터를 가진 낡고 못생긴 이 스피커는 울림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 같다.

사십년동안의 울림이 스며든 통에서 내는 소리는 가슴에 와서 울린다.

거대한 뿌리

김수영은 1968년 술집에서 나와 걷다가 보도 위로 뛰어든 버스에 치여죽었다고 한다. ‘거대한 뿌리’는 47살의 생애를 감당하다 그렇게 무너진다.

나는 1950년대의 서울을 기억할 수 없다. 명동백작은 1950년대, 이승만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결국 이야기는 박정희의 쿠테타로 끝이 난다.

12년의 이승만의 반공 독재는 끝나고 1년 간 민주와 자유를 이야기한 끝에 18년의 군사독재와 7년의 군사독재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민주와 자유 곁에 왔는데, 아직도 이 나라는 반공과 빨갱이가 서슬 퍼렇게 통한다.

극우의 논리

“도대체 반공이라는 게 뭐요? 그것도 사상이야? 공산주의에 반대한다, 그것도 사상이냐고? 사상이란 것은 말이오, 이선배! 이러이러한 것이 좋으니 이렇게 하자. 뭐 그런 것 아니오? 이게 좋으니, 그 쪽으로 가자. 그게 사상 아니요?

그런데 내 주장은 하나도 없고 나는 반대다. 그런 게 무슨 사상이냐고? 그러니 이승만이가 독재하는 것이요……”

명동백작에서의 이 김수영씨의 말은 제 16부, 2004.10.31일에 방영되었다. 2004년이란 ‘친일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자 본격적으로 뉴라이트가 활동을 시작한 해이다. 위의 김수영씨의 말에는 우리나라의 수구세력이라는 것의 실체가 들어있다.

친일했다. 너 나쁘다. 네 행동은 반민족적이다. 라고 말하면, 너 빨갱이지?라는 대응논리다. 하지만 너 빨갱이지?하고 묻는 사람들의, 공산주의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사실이, 너 빨갱이지?라고 묻는 논리의 전부다. 세상의 논리 중 가장 무서운 논리는 단순무식이다.

성격검사

회사에서 성격검사를 했다. 내가 스스로는 한번 받아보고 싶지만, 회사에서 하는 것은 꼭 나의 치부를 들춰내기 위해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꼽고 드럽다.

검사 결과를 요약하면, 나는 세계나 사물, 개념에 대하여 구성된 이미지를 마음 속에 가지고 있으며, 외부세계에서 합리적인 질서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큰 그림을 보려고 하며 서로 다른 대상들이 어떻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지를 쉽게 파악한다고 한다. 반면에 전체적인 사물의 윤곽이나 밑그림이 없이 부분적인 것으로 뭔가를 이해하는데 애로를 겪는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이런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커왔던 것 같다. 아이들은 ‘가’를 ‘가’라고 읽고 썼지만, 나는 왜 ‘가’를 ‘가’라고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년동안 글을 읽지도 못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한문이라면 하늘천, 따지 등을 쉽게 배웠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글도 못읽는 바보라고 했지만, 산수시험(선생님이 문제를 불러주었다)같은 과목은 몹시 쉬웠고 바보라기에는 너무 훌륭한 성적을 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글을 안다고 생각했고 그 즉시 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다.

고1 때 공통수학까지 전교에서 수위의 성적을 내곤 했다. 고2가 되고 미적분에 들어가면서 나는 무너졌다. 선생은 미적분을 푸는 방식을 가르쳤지만 미적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주질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 나는 미적분을 풀 수 없었고, 전교 수위를 달리던 수학성적은 그만 반에서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이 성격검사의 결과가 맞는다면 나의 내부에 만들었던 세계의 모델은 10살 때까지 나를 부단히 괴롭혔고, 그 이후 이십대의 중반까지 현실과 부합했기에 나름대로 편안하고 고요한 생활을 누렸다면, 그 이후 나의 내부의 세계는 부단히 외부의 현실과 충돌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관 속에 안주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옥의 47번지

글을 쓰고 싶다. 지옥의 47번지로 가기 위한 히치하이킹에 대한 글이라든가, 시간의 비가역성에 대한 고야의 그림에 대한 변주곡, 혹은 삶의 의미가 만들어내는 파라독시컬한 삶의 무의미에 대한 소고의 37쪽의 다섯번째줄, 존재하지 않았던 천사의 이름에 대해서 말이다. 혹은 연금술이라고 불리워지거나 아니면 더럽거나 음탕한 것, 그리고 추잡한 것들을 존재하되 있지는 아니한 것, 가령 그림자와 같은 것에 섞고, 끓이고, 우려내 사랑의 묘약을 만들고 불사에 이르는 것들을 만드는 비법을 그려내고 싶다. 태고에는 마술이었을 것이나 오늘에는 헛소리일 것이라.

20120110

명동백작

이 글이 정말 김수영씨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한번 참고할 만 하다.

내가 왜 이승만이를 미워하는가 하면 이 늙은이가 독재를 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사상으로 반 씩 갈라놓고 서로 의심하고 죽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오. 이 늙은이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놨단 말이오. 그런데 무슨 개나발 같은 시고 음악이고 그림이오! 미치고 발광하는 수 밖에…!

인민군 군가도 부르고 이승만 욕도 막하고 그래야 자유가 있는거요! 입이 근지러운데 그걸 참고 살라고 하면 그건 빨갱이보다 더 무서운거요!

(2004.9월부터 방영한 EBS문화사 시리즈 1편 – ‘명동백작’ 17부에서 김수영씨의 말)

EBS문화사 시리즈 3편이 ‘지금도 마로니에는’으로 예전의 서울대 문리대였던 대학로의 1960년대초를 그리고 있다. 이 시리즈는 참여정부 시 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MB정권 하에서 이 드라마를 본다. 도올의 강의를 그만 두라고 한 EBS가 만든 드라마라고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마로니에는’을 EBS에서 보면서 1960년대의 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명동백작’을 보면서 6.25 전쟁이 끝난 후의 1950년대를 그려볼 수 있다.

삶이, 전쟁과 사상으로 갈라지고 찢어지고, 끼니가 없어서 식구들이 굶거나 외상을 그어야 하는 형편에도 시인, 예술가들이 명동에 모여 술을 마셔야 하는 세태를, 그때는 그래도 人情이 있었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쌕쌕이가 날고 야포가 터지고 사람 목숨이 개돼지 값만도 못하던 세월을 넘은 탓에 앞 날을 기약하지 못한 까닭인지 참으로 알 수 없다.

명동백작인 이봉구(소설가)를 중심으로 김수영, 박인환, 전혜린, 오상순, 이중섭 등의 인물들이 나온다. 극중에 나오는 김수영의 삶의 굴곡이 너무 진하다. 문인으로 서울에 남았다가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탈출했으나, 우리 측에 잡혀 빨갱이라고 거제도에 수용되었다가 간신히 살아 나와 생존의 의미였던 아내(김현경)를 찾아갔을때, 아내가 친구와 살림을 차린 것을 보았고, 다시 아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모멸감은 그의 시에 관통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과 반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박인환은 김수영에게 순수한 우정을 간직한 사람이지만, 김수영은 박인환을 통속적이라고 멀리하고, 전혜린은 어린 것이 싸가지없고 이유없이 절망하고, 오상순은 도통한 듯하고, 이중섭은 그리움에 지쳐 무너지고…

아무튼 ‘지금도 마로니에는’ 만큼 재미있고 볼만한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