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은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 해는 발자크의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했건만 지금은 발자크의 소설은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카잔차키스의 소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읽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꿈꾸던 세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란 언어가 형성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보고, 듣고 한 것들이 언어로 추상화(단순화)되어야 기억할 수 있다. 매…

그 일주야 동안

일주일을 넘게 나의 블로그에 매일 천명 이상의 정말로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평소 때의 열배라서 나의 블로그가 어디에 소개라도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네이버에 문의를 했더니 <놀라셨죠?>라는 것 이외에 똑 부러진 대답은 없다.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이 백명이라도, 나는 많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길게 포스트를 쓴다면, 누가 읽을 것인가. 길게 쓴다고 해도, 드나드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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