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뭇 것도 아닌 자의 변

‘객지’를 읽은 것은 행운이다. 방랑이란 헤르만 헷세의 소설처럼 낭만적이고, 고독하며, 오랜 도보여행 끝에 깊은 침엽수 숲을 벗어나 호밀이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을 걸어가는 것인 줄 알았다. 고1 2학기가 끝나가고, 아무 것도 아닌 아이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책이라고는 교과서 외에 읽어본 적이 없다는, 친구 녀석의 팔 겨드랑이 사이로 혐오스럽게 뾰족이 나온 책 모서리를 보았다. “그것 모냐?” “책이다.”…

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다

황석영씨 이야기 그저께 <하루…및 잡담>에 황석영씨에 대한 짧은 글을 올렸다가 그만 내렸다. 그저께는 그만 우울한 날이 되고 말았다. 나 같은 찌질한 사람은 세상을 굳건하게 딛고 큰 소리도 치지 못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흐리다. 그럼에도 그 굴곡된 시절 속에는 내 가슴을 대신하여 말해주거나 그 시절의 번지수를 밝혀줄 사람은 희소했다. 그들은 늘 감방에 있었거나 연금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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