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若鏞(1762~1836).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美庸, 호는 茶山·俟菴·籜翁·苔叟·紫霞道人·鐵馬山人·門巖逸人, 당호는 與猶堂이며, 시호는 文度이다.
정조가 승하하자, 이듬해 정월 조선 교회는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의 천주교 탄압령을 시작으로 탄압을 받았는데, 이를 신유박해라고 부른다. 이때 정약용과 그의 둘째 형 정약전은 정약종과는 달리 이미 천주교를 버린 뒤였으나, 노론에서는 이미 이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약종만 천주교 신자일 뿐,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에 거리를 둔 점이 확인되면서 사형에서 유배로 감형되었다. 그리하여 정약용과 정약전은 유배되었으며, 정약종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아 참수를 당해 죽었다. 정약용은 18년간의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의 이 유배 기간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의 저술 대부분이 이루어졌으며, 둘째 형 정약전도 물고기의 생태를 기록한 ‘자산어보’라는 명저를 남겼다. 고난을 겪음으로써 학자로서의 지성이 자라는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이다.
생모는 해남 윤씨 尹小溫으로 尹德烈의 딸이며, 공제 윤두서의 손녀, 고산 윤선도의 오대 손녀이다. 다산은 강진유배 중 외가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