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호의 뗏목

메두사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

1816.07.02일 프랑스 정부 소속인 범선 메두사호가 모리타니아 해안에서 침몰한다. 선장은 고급승무원 만 태운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다.

버림받은 147명의 선원과 승객들은 뗏목을 급조하여 올라탄다. 13일동안 표류한 이들 중 15명만 구조된다. 이들은 죽은 승객의 인육까지 먹었다고 한다.

당시 이 사건은 선장 등 지도층의 부도덕성과 무책임에 더해서, 버림받은 자들이 생존에 다다르기까지의 고통과 참혹함 때문에 프랑스는 들끓는다. 이 사건을 접한 제리코는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린다.

하지만…

메두사호에 있던 승객과 선원들은 무너져가는 뗏목에나마 올라가, 살았고, 또 살아갈 날을 기대할 수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란 것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미술 전체가 ‘개념미술’이다. 사실 현대미술은 ‘개념미술’ 이전에도 개념적이었고, 이후에도 여전히 개념적이다. 오늘날의 예술은, 물질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든지 관계없이, 모두 개념적 배경을 갖는다. 개념미술을 통해 창작은 ‘제작’의 의무에서, 작품은 ‘재료’의 감옥에서, 수용은 ‘지각’의 관례에서 해방되었다.
헤겔의 말대로 예술은 죽었다. 아니, 예술의 육신은 죽고 영혼만 남아 비물질성(immateriality)에 도달했다. 물질을 떠난 예술은 우리의 영혼처럼 마침내 파괴될 수 없는 불멸성(immortality)에 도달했다.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후기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167쪽

One and Three Chairs / Joseph Kosuth
Completion Date: 1965. Style: Conceptual Art. Genre: installation

왜 현대미술이 이해 안되고 기괴한가는 이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육신은 죽고 영혼만 남았다는 것은 예술이란 것이 산(生)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기에는 이미 유령이나 귀신의 차원으로 옮겨갔거나, 아니면 우리가 바라보는 작품이라는 것들이 죽은 것들로, 거기에는 살아있는 증거인 퍼포먼스나 해프닝이란 기대할 수 없으며, 작품 그 자체는 말라비틀어지고 시어빠진 결과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프랑켄슈타인적이거나 그림을 스쳐지난 사태들을 메마른 흔적 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이상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 작품의 (개념이나 관념에 대한 설명을) 귀로 들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말은 그러하면서도 폴록이나 워홀, 그리고 리히텐스타인의 죽은 육신(작품)이 그토록 비싼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