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에 있는 누각. 태조 때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廣通樓’라 불렀다. 세종 16년(1434년)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마치 옥황상제가 산다는 월궁의 廣寒淸虛府와도 같다하여 이름을 ‘광한루’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