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iii-xmmxix 집으로

숙소 근처를 배회하다가,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숙소인 테르미니역 부근에는 흑인이 많다. 부랑자들도 많다. 몇년전만 해도 로마 시내에서 흑인을 보기가 어려웠는데, 갑자기 흑인들이 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난민들은 리비아나 튀니지에서 배를 타고 몰타, 시칠리아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한다. 난민들에게는 영 불 독 세 나라가 풍요롭고, 난민에게 포용적이라는 점 외에도, 자신들의 출신지가 이들의 식민지였던 탓에 언어소통 면에서도 유리하다. 그래서 이탈리아에 정착하지 않고, 국경선을 접한 프랑스와 독일 혹은 멀리 영국으로 서식지를 옮겨갔을 것이다. 하지만 난민 봉쇄로 국경을 넘을 수 없게 된 난민들이 이탈리아에 머물게 되면서 흑인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테르미니역에서 피우미치노(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가는 승강장을 잘못 알아, 열차를 두대를 놓쳤다. 숙소에서 여유있게 나온 것이 다행이다.

공항행 특급열차는 느릿느릿 완행이다.

피우미치노 공항에 당도하니, 출국검색대와 출경세관 앞이 장사진이다. 시간이 지체되자 일부 승객들은 이러다 비행기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초조해 하기도 했다. 나도 간신히 세관을 지나고, 헐레벌떡 게이트에 당도하자 이미 게이트를 열고 탑승을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어쩐지 시스템이 엉성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시끄러운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황은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불안하다. 물어보아야 한다. 그러면 옆 사람은 나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다가 친해져서 함께 황당함을 감당하거나 아니면 이게 무슨 일이냐 따져야 하고, 때때로 하소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좀 시끄러울 뿐이다. 그들의 말을 모르는 나는 하소연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매력적이다. 그들의 강렬한 태양만큼, 낡은 유적과 유적 옆에 자라나는 로마 소나무처럼, 충분히.

떠나올 때 비행기는 쫓아오는 밤을 피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았다. 이제 비행기는 다가오는 밤의 방향으로 파공음을 내며 날았다. 밤과 비행기가 충돌하기라도 한 듯 밤은 금새 왔다. 밤이 오자 비행기는 기수를 새벽이 오는 방향으로 돌렸다. 좁은 시트에 앉아서 밤을 보내기에 삭신이 예전처럼 튼튼하지 못한가 보다. 혼절하듯 자고 깨며 비행기가 동쪽으로 가는 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에 홍콩에 도착. 두 시간 쯤 지나 갈아 탈 비행기가 대기할 게이트로 갔다. 게이트가 열릴 시간이 되자, 레디스 젠틀맨, 몇번 항공기는 정비 문제로 출항이 안된다는 방송이 떴다. 새로운 비행기가 두세시간 후에 투입된다고 한다. 새 비행기가 투입되는 게이트는 멀어서 공항 내의 열차를 타야 당도했다.

결국 오후 한 두시경에 인천에 도착할 나의 여행은 오후 네시까지 늘어졌고, 들들들 짐을 끌고 집에 당도하니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한 이틀인가 눕거나 잤다.

몸을 추스리자, 여행을 다녀왔던 일이 아득했다.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 두자.”1장 그르니에의 ‘섬’ 중 175쪽

20191023~24

xxii-xmmxix 안녕 로마

어제는 늦게 로마에 도착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 일이나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늦으막이 카타콤베로 간다. 버스는 남쪽으로 달렸다. 넓은 도로의 중앙선에 화단이 있고 거기에 로마소나무가 자란다. 아피아 가도같은 분위기다. 도로 주변으로 5층 짜리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있다. 로마의 신시가지같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간다. 여행가이드에 나온 카타콤베는 문이 닫혔다. 좀더 가니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가 있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의 입구

로마라는 신성한 도시에 시신을 묻는 것은 불법이었다. 카이사르와 베스타 처녀들과 유서있는 가문에만 허용되었다. 그래서 로마로 향하는 길 가에 많은 무덤들이 들어선다.

카타콤베가 아피아 가도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것도,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그들 가족을 위한 무덤을 아피아 가도 옆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땅을 파고 지하에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1세기 중엽부터였다고 한다. 당시의 기독교인들 또한 가난했기에 지하무덤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은밀히 이곳에 모여들어 예배를 갖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았다고 말하는데, 박해를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살리기 위하여 동분서주했다. 예수를 죽이고자 한 자들은 바리새인과 극렬 수구 보수주의 유태인들이었다. 그들의 광기 아래에서는 베드로는 물론 다른 제자들도, 가족도, 막달라 마리아도 속수무책이었다. 본디오 빌라도 만이, 새벽부터 무도한 군중과 제사장들 앞에서, 예수가 무슨 죄를 지었으며, 너희가 고발한 일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그런 일이냐고 묻는다.

본래 빌라도가 거주하고 로마 병사들의 막사가 있던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는 해안도시이자, 헤롯이 건설한 항구인 가이사랴(Caesarea)였다. “유월절을 계기로 예루살렘에서 대규모 봉기가 있을 것이다”는 따끈한 첩보가 가이사랴에 도착한다.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는 백부장 휘하의 병력으로는 봉기를 차단할 수 없었다. 빌라도는 수리아(시리아)의 총독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한다. 한편 예루살렘의 동향을 살피고, 일이백명에 불과한 병사들을 진무하는 한편, 봉기 시에 대응 작전을 세우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관저에 와 있었다.

유월절을 둘러싼 상황은 일촉즉발이었고, 결국 제사장들과 군중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끝까지 예수를 살리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한다.

빌라도와 같은 지성적인 품위와 남을 이해하려는 관대함은 당시 로마인들이 추구하는 덕이었고, 그것이 바로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었다. 그들은 인종과 종교 따위에 배타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의 종교를 토착화하고 이집트의 비교에 깊은 호기심을 표하는 한편, 소아시아의 미트라교는 물론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까지 다 용납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독교에 대해서만 왜 그토록 사박했던 것일까?

기독교인들은 유대의 전통적인 종교에 반발하고 일어난 신흥종교이자, 이들이 떠받드는 구세주라는 자는 십자가형을 받은 로마의 대역죄인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은밀하게 모여 ‘사람의 살과 피를 나눠 먹는다'(성체배수)고 한다. 게다가 이들을 지도자들 중 여성이 많고 남녀가 함께 모여 의식를 갖는다고 하는데, 이러한 의식은 성적 혼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관계 상 몹시 사악한 종교라는 편견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적시했듯이 죽음을 불사하는 이 자들의 종교적 광기는 합리적인 로마인들의 의구심을 부추겼다.

박해가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말은 나는 믿지 않는다. 신은 창조사역을 이루시고, 피조물인 인간이 신의 불완전한 창조사역을 구원사역을 통하여 완전하게 한다는 기독교 내에 함장(회교의 교리에도 이런 창조와 구원사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된 모순 또한 믿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 박해를 받고, 핍박을 가하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지 그 이유가 온당하며, 정의로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카타콤베의 어두운 공간의 어둡고 차고 눅눅한 공간이 전혀 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의 길이는 26Km에 달한다고 한다. 로마의 카타콤베의 총연장은 900Km라는 말도 있다. 잘못하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이드와 동반해야 한다. 관람시간은 약 25분이 걸린다. 지하 4층으로 되어 있다는 데, 첫층은 환기통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꽤 밝다. 첫층은 예배하는 장소와 각종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무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두번째 층 부터는 무덤들로 어둡고 깊다. 카타콤베의 골목마다, 벽에는 시신을 누일 사람 키 길이의 구멍들이 뚫려 있다.

이 카타콤베에는 16명의 교황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카타콤베를 나와 아피아 가도를 찾아보려고 하다가, 길을 잃었다. 땡볕 아래에서 한 시간 가량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산 칼리스토를 돌아 아피아 가도를 달린다. 아피아 가도가 돌로 깔려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스팔트다. 로마 소나무는 도로 주변에 자라고 있다.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4세기에 세워졌으니, 당시의 소나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산처럼 나무둥치 위에만 솔잎이 자라는 로마 소나무는 야자나무처럼 이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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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아 가도, 1하지만 로마의 전역이 아피아 가도였다. 로마소나무가 높게 자랐다.

아피아 가도의 로마 소나무는 이 길을 지나는 로마병단과 나그네를 위하여 그늘을 드리우고 잠시 비를 그을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로마에 땅거미가 진다

그리고 지친 다리를 끌고 로마의 야경을 보러 간다. 로마의 야경이 이상스럽게 슬프다.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서 에마누엘레 2세 통일기념관의 옥상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본다.

베네치아 광장 옆 도로

로마의 건물과 크고 작은 성당의 돔 위로 10월의 지친 오후가 저물고 땅거미가 진다. 도로 위로 자동차들의 전조등이 하나 둘 씩 켜지고 상점과 창문에도 불빛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불빛들은 “우리에게는 은밀한 생활이 있다. 그래서 네가 서 있는 이 거리가 더욱 낯설고 고독할 것”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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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때문에 트리야누스 시장이 연극무대처럼 보인다

통일기념관을 내려 와, 비눗방울처럼 꺼져버릴 것 같은 조명 속에 포로 트라이아노의 폐허를 보며 콜로세움까지 걸어갔다.

트라야누스 원주

어둠과 조명 속에 서 있는 콜로세움은 꼭 잔칫날 케이크처럼 보였다.

밤에는 콜로세움이 낮게 보인다

버스를 타고 베드로 광장으로 갔다. 광장의 중심부는 어둠 속에 텅 빈듯 했지만 베르니니 회랑과 베드로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광장의 바닥은 물결처럼 춤췄다.

베드로 광장에 불빛이 물결처럼 흐른다

광장에서 천사의 성까지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도 드믈다. 천사의 성에 당도했고 나는 여행을 끝내기로 했다.

안녕, 로마

201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