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무능

아버지의 무능을 좋아한다. 당신께서는 돈을 잘 벌지도 못했고, 집에서는 자상하지도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남의 집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뿐이었다. 나도 아버지를 ‘사랑하되 좋아하지는 않는다'(주1)고 할 수 있다. 대학 졸업반 즈음, 당신께서는 교감이 되셨고, 교감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몹시 앓으셨다. “아버지 왜 그렇게 아프세요?”“그러게 말이다. 아마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서류나…

시간의 얼룩

여태까지의 일은, 한 일과 하지 못한 일 그리고 해야 할 일들, 즉 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의 일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다.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은 여기에서는 하루의 일을 마쳤다는 뜻이다. 나의 봉급은 나의 근로(일)와 등식의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스쳐지난 시간의 값어치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의 일이란 시간의 얼룩들이다. 시간이란 축내려고 하면 할수록 가지 않는…

어느 소도시의 하루들

어느 소도시로 일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숙소에서 자지만, 때론 서울의 집으로 빨랫꺼리를 가져가거나 밑반찬을 들고 다시 이 곳 소도시로 내려옵니다. 이 곳에서 머문 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보았던 반세기가 훨씬 지난 극장 건물에 아직도 붓으로 그린 간판이 걸려있는 것이 보이는 이 곳은, 아주 낡은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무너지고 사라지기 위해서 있는 것…

옆구리와 미생

유홍준의 詩, ‘옆구리’를 읽으면 옆구리가 결리거나 쓰라리거나 뭔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옆구리마저 없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내 옆구리가 아니라 내가 막대기나 뾰족한 것으로 찔렀을 때, 텅빈 저들의 옆구리다. 미생 1~6편을 보았다. 살자고 다니는 직장이 그토록 살벌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직장이라는 곳에 입사하려고 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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