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명단이 쓴 이야기

요즘 M사 사태와 관련하여 배현진 아나운서와 김성주 아나운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착찹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M사 파업에 참여했다가 2012년 5월 11일 방송에 복귀한다. 배는 사내 계시판에 “더 이상은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적어도 뉴스앵커로서 시청자 이외의 그 어떤 대상에도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오늘 제 일터로 돌아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파업 중의 노조를 탈퇴한 후에 방송에 복귀한다.

방송 복귀 배경이 게시판의 글처럼 앵커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파업에 계속 참여할 경우 천신만고 끝에 올라간 앵커 자리를 다른 아나운서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감 탓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바램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변대로 시청자 앞에 앵커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책임을 다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복귀 이후의 M사의 보도는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 즉 진실을 알리고 시청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저녁 9시에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는 보도는 내용없고 호도된 쓰레기였다. 시청자들은 그녀의 데스크에 보도기사를 올리는 M사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불렀다.

시청자들을 위하여 사수한 그녀의 자리는, 오히려 배신의 자리이자, 부패한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오욕과 함께 공허한 기사들로 데스크 위는 지저분해 졌다. 그녀는 매일 하얗게 분칠하고 나와 빈혈기가 도는 원고를 또박또박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배의 경우 자신의 사명감 때문에 M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힐난을 받아야 한다면, 김성주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는 M사의 아나운서로 근무하다 프리랜서 선언을 한다. 프리랜서 생활이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그는 과거에 자신이 근무했던 M사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때 마침 M사 노조에서 파업을 했다. M사에서는 런던올림픽에 보낼 아나운서가 필요했다. M사는 김에게 복귀 제의를 했고,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띄고 런던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기회를 잡은 그는 올림픽 중계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다양한 프로그램에 (때로는 자식들과 함께) 출연하면서 제2의 아나운서 생활을 화려하게 펼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선택에 뚜렷하게 비난할 구석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재수없게도 누군가 문득 그를 생각해냈고, M사의 노조와 대중 앞에 그를 소환해낸다.

주진우 기자는 지난 9월 13일, M사 상암동 본사에서 열린 언론노조 M사 본부 총파업 집회에 참석하여 M사의2012년파업을 언급하며 “김성주가 (마이크를) 특별히 많이 잡았다”며 “전 그런 사람이 더 미워 진짜 패 죽이고 싶다”고 한다.

2012년 당시 김은 “일단 회사가 어렵고, 시청자들이 올림픽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일단은 M사를 위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M사에 오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파업이 얼마나 심한 상황인지 잘 몰랐다”는 말을 한다. 물론 “중간에 M사의 파업이 끝나게 되면 미련 없이 그들에게 자리를 주고 물러나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위하겠다고 하는 M사란 무엇인가? 시민이 기대하는 M사, 직원이 만들어가는 M사, 정권이 좌지우지하는 M사, 사측이 의도하는 M사 중 방점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방점은 그 넷 중 어디도 아니라 다섯번째 자리인 자신에 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M사의 당시 파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그리고 파업이 끝나도 물러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가지고 배제되고 지원되고 그런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원했던 그러한 이해집단들이 있는 거죠. 그런 부분들의 구조를 화이트리스트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이원재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대변인의 말에 입각하자면, 김이야말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M사 복귀를 획책하게 만든 화이트리스트 구조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저열한 욕망이 소근대는 하얀명단이 작성되고, 그 이면에 짙은 그림자로 또 다른 명단이 암각되는 구조라면, 블랙리스트에 기재된 사람들만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고자 할 수 없이 변절할 수 밖에 없었던 자와 자신의 밥그릇을 거머쥐고자 했던 자들 또한 양심과 정의 앞에서 번민하고 유린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밥을 먹고 난 후

12시 30분이 좀 지나서였을거야. 아파트의 틈 사이로 햇빛이 내려왔어. 빛은 차곡차곡 쌓인 도시의 미세먼지 사이로, 낙옆이 떨어지는 속도로 천천히 내려앉았어. 빌어먹을 미세먼지에 대해서 저주를 하면서도, 빛이 타락한 공기를 밀쳐내며 밝음을 펼치려는 정경이 아름다웠어. 멸망하고 난 뒤, 세상의 잔해를 뒤덮은 먼지 사이로도 빛은 그렇게 깃들겠지.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거야. 몸이라는 것, 그것 없이, 정신이라든가 넋만 홀로 있다면 어떨까? 신체라는 물리적 한계가 없는 넋과 정신이 아픔이라든가 아름다움과 더러움, 더 나아가 쾌락을 느낄 수 있을까? 느낀다면 물리적 한계가 없겠지. 결국 끝이 없는 고통과 쾌락이 되고 말 것이라는, 그런 허접한 형이(形而)적인 생각들 말이야. 하지만 영혼이나 정신과 같은 형이상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없지만, 사유를 통해서 느끼기란 더욱 어렵지. 안다고 해봤자, 결국 내 몸은 밥에 굴복하고 말 것이라는 정도지.

그러니까 영원같은 것보다, 밥이라는 구체의 것에 굴복하다보니 살(肉)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었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유같은 것은 없을꺼야. 이유가 있다면 자살을 한다거나 이런 고민같은 것 없이, 그 이유를 붙들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며칠 만 더 이 지상에 남아 있게 되기를 바라는 날이 다가올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