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간 여행

여행이란 것은 엄밀하게 자기 의지로 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돈 써가며 하는 일은 뭐든지 즐겁고, 돈받아가며 하는 일은 무엇이든 지겨운 일이라는 것은 살아가다 보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돈 받아가며 하는 일이 즐겁다면 출세는 따논 당상일 것이다.

대학 여름방학 때 잠시 만나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종로의 양지다방에 나간다는 것이 그만 지리산, 소백산 등지를 떠돌다 영주에서 청량리로 가는 중앙선 완행에 올랐을 때…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른다고. 집안 식구들에게는 일주일 이상의 전화 한통없이 실종이 되었다는 것을 불현듯 떠올리고서 집으로 가는 열차깐에서 한 숨을 쉬었던 것이 생각난다.

지난 주 토요일. 출근하겠다는 것을 부하 직원들이 격주 휴무는 쉬셔야 합니다하고 강권하는 바람에 집에서 쉬면서 뭘하고 놀면 잘 지낼까하면서 비디오나 한편 볼까하고 있었다.

면도를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리다 꺼졌고 뭔가 찜찜한 느낌에 면도를 마치고 회사에 전화를 했다.

직원은 전화를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으니 푹 쉬십시요라는 말만 했다.

다시 핸드폰이 울렸고 잘 아는 거래선의 목소리가 “저~”하고 불길하게 울렸다. “아무개 업체 부도가 났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나는 듣지 못했다고 말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담당직원에게 전화를 넣었다. “목포에서 터졌다고 하던데~” 담당직원은 허둥대며 연락을 해보겠다고 하더니, 십여분 후에 “사실인 것 같습니다. 목포로 가야겠는데요.”

목포나 광주로 가는 비행기는 바람 때문에 결항이었다. 한 시간 뒤 결국 부하직원의 차에 실려 서해안 고속도로 위로 올랐다.

마누라가 말하듯 나에게는 현실감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부도 소식을 듣자 손을 쓸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했고, 더 이상 초조해 하거나 허둥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명했다. 추수가 끝난 들을 보자 이것은 단지 세월에 끌려가는 여행이라는 생각 만 가슴을 스칠 뿐이었다.

홍콩에서 돌아온 뒤 가을여행을 하고 싶어 작년에 아내와 함께 설악을 갔던 적이 있었다. 한계령을 지날 때 차가 스치는 바람에 떨리던 단풍과 약간의 푸른기가 감도는 가을 오후의 햇살들이 그리웠던 것 같다.

만경평야 위로 차가 지날 3시경에 새까만 새때들이 공활한 창공을 마치 하루살이 떼처럼 날고 음울한 단조의 가을걷이가 끝난 평야와 일점오센티의 길이로 잠시 스치는 지평선 등이 보였다. 그리고 평야의 끝을 가로질러 변산반도로 달려가는 연봉들이 옹벽처럼 만경평야의 남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는 하염없이 남행하였고, 부도 회사에서 회의를 가진 후 여관을 찾아 전전하다 결국 환락가로 변모한 선창, 북항에서 밤을 맞이했다.

다음날 바람이 세차진 듯, 항공편이 결항되어 부하직원을 목포에 떨궈놓고 열차로 다시 상경하는 길에 불현듯 젊은 시절 친구에게 끌려가 상경하는 열차에서 내쉬던 한숨이 기억난다.

열차에서 졸다 깨어나 차창 밖을 보면 만추의 햇살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열차의 흔들림과 낮은 목소리로 도시락 등을 외치는 홍익회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가족들을 보면 아무 것도 감탄할 것이 없고 세월이 조용히 흘러 어딘가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20021031

北이라는 단어는 공허함과 낡은 인생이 깃드는 뒷골목이라는 느낌은 저만 갖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북창동이나 북항이라는 지명이 주는 느낌은 흐릿함과 메밀묵 사려~찹쌀떡과 맹인의 피리소리, 이불깃에 깃든 살냄새 등이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빛이 밝을수록 북으로 돌아서서 보는 하늘이 투명하고 깊기에, 가을과 겨울이 어울어집니다.

목포는 항구라지만 내가 목포에서 본 항구는 저물녘에 만난 북항 뿐이었습니다.

선창가는 비린내나는 구정물 사이로 육자배기가 흐르는 환락가가 아니던가요? 뚜~소리와 통통거리는 배의 잔잔한 엔진소리에 나이든 술집작부의 인생이 흐르고 인생도 그렇고, 손님도 그렇고, 고달픈 인생이 찌든 인생을 달래는 진짜 입냄새나는 환락은 거기에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요즘은 환락도 기교가 있어야 하고 노는 것도 폼나게 놀지 못하면 빙충소리를 듣는 때라 환락 또한 노동입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는 목포에서 끝나는 것으로 되었으나, 도로를 북항까지 연장하면서 공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래서 북항으로 들어서는 진입로에는 횟집이 즐비합니다.

그리고 횟집이 끝나는 곳에 옹졸한 부두가 있습니다. 전에 부도 난 회사의 사장과 저문 바다를 낀 창가에서 세발낙지를 능지처참해가며 소주를 기울였죠.

환락가라고 하지만 몇군데의 모텔과 나이트클럽을 빼면 단지 횟집과 술집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환락가가 아니고 먹자골목 정도이겠지요.

이번에 가보니 고속도로 개통 초기에 북항에 북적이던 차량들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도로 위로는 황량한 바람 만이 불고 식당에는 텅빈 자리 만이 요즘의 불경기를 을씬년스럽게 보여주었습니다.

너무 많이 주절거렸습니다.

현운대행, 아우라지 강을 접어들며

황동규 씨의 시(글)는 늘 읽기가 좋습니다. 읽는 사람에게 적절한 이해의 문고리를 놓아두고, 때론 깔깔하기도 하고 쌉쌀한 듯한 언어를 섞어 돈까스 옆에 보리밥을 퍼 놓은 듯하고 가을날 어스름때 뚝방 길을 걷는 듯 하기도 합니다.

정선은 젊은 시절, 여행에 대한 광기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여백이었습니다. 설악산이 그 명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남겨둔 여백이었다면, 정선은 그냥 나의 머리 속에 텅빈 공간이었습니다.

회사에 들어와 가 보지 못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어느 봄날 행장을 꾸려 정선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제천에서 구절리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저는 탄광촌을 처음 보았습니다. 마을 위로 까만 먼지들이 흘러다니고, 아이들은 계곡을 향하여 기울어진 마을에서 부시시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개울에는 먹물이 흐르고 잿빛 위에 흐르는 삶의 곤함을 아주 가벼운 감상으로 보았습니다.

기차는 증산에서 루프식으로 언덕을 올라 강을 건너고 절벽 아래로는 태백으로 흐르는 강물에 정선에서 내려오는 녹색조의 강물과 탄광촌에서 흐르는 석탄물이 만나 흑백의 뚜렷한 선분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산업사회의 잿빛과 오지를 지나는 청정함이 조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정선읍은 아우라지의 강물에 씻기어 갈 듯 초라한 모습으로 봄날의 햇빛 속에 한가롭게 졸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소금강을 가기 위하여 화암약수터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화암에서는 정선 소금강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경치가 좋은 곳은 광대골이라고 했습니다.

화암약수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광대골로 갔습니다. 광대골 안에는 무당개구리가 가득했고 우리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길을 돌아나왔습니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개구리 있는 곳에 뱀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처절하게 절감했습니다. 왠놈의 뱀들이 그리 많은 지…

광대골을 나와 우리는 지나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때 눈 앞에 좀 폭이 넓은 개울물과 석벽이 보였습니다. 멀리서 뻐꾸기가 울었고 한가함을 갑자기 느꼈습니다.

버스가 왔고 우리는 정선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후일에 나는 광대골을 나와 우리가 서 있던 곳이 몰운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북에서 길을 내려와 화암으로 가는 소금강의 초입에 있는 몰운대는 물론 높아져 가는 석벽으로 구름이 사라지는 곳이지만, 방향을 바꿔 정선에서 사북으로 가는 길의 몰운대는 2차선 하늘이 잠시 공터를 만드는 곳, 구름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제 사북과 고한을 흐르는 강물은 잿빛을 잃고,
자~ 돈내고 돈먹기의 환락의 길목으로 바뀌었지만…

추신: 정선은 윤흥준 교수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의 편명으로 답사기를 지은 곳입니다. 나는 이 멋진 편명에 반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기(네다바이)를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수령의 우리 말 번역이라는 것에 흠칫 놀랐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 이은 가장 멋진 번역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