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학에 대해서 생각하다

어제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읽다보니 허학(虛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허학의 출전’ 1조선중기의 문신이자 양명학을 접했던 장유(張維)는 당시 성리학의 편협한 학문풍토에 대하여, 학문에 實心이 없이 명분에만 빠지게 되면 허학(虛學)이 되고 만다고 비판하였다는 말만 얻을 수 있었다. 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없다.

신영복 선생께서는 숙종조의 하곡 정제두 선생께서 당시의 공소한 성리학을 비판하며 강화도에 들어와 학문을 했고 그것이 강화학이며, 실학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신영복 선생께서 말씀하신 허학이란 바로 실학 2성리학은 공자와 맹자를 도통(道統)으로 삼고서 도교와 불교가 실질이 없는 공허한 교설(虛無寂滅之敎)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여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여기에서 도교와 불교에 대하여 주희 등 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유학(성리학)을 실학이라고 주장했다. 의 반대로서의 허학이라는 말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학문의 범위와 기존의 성리학과의 차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강화파를 지나 정조 때의 북학파 그리고 다산, 심지어는 실사구시를 입에 달고 다닌 추사조차도 자신이 실학(實學)을 했다는 것을 몰랐다.

왜냐하면 후대의 학자들이 그들이 한 학문을 구분하고 실학이라고 이름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1890년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실학에 대한 연구와 논의 그리고 명칭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논의는 1950년대 이후이나 아직도 실학의 발생연원이나 실학자, 그리고 실학의 범위는 몹시 유동적이다.

하지만 허학이라는 단어를 보자, 이 실학이라는 단어는 부지불식 간에 식민사관에 오염된 사학자들이 만든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학이라는 단어 하나로, 일부 실학자를 빼곤 조선초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선비 모두가 허학(虛學)을 한 것이 되고마는 우를 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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