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독한 문장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 1김훈의 기행산문집 <풍경과 상처>라는 빌어먹을 책, 131쪽 ‘염전의 가을_서해/오이도’ 의 첫줄에 보면 이 글이 나온다.

이 글은 글에 나온 중년의 가을보다 더 난감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그동안 빠져 있었다는 것을 나에게 뼈저리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이따위 지식은 몰라도 되는 지극히 우울한 지식이자, 우리의 현주소이며,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밝혀주어야만 하는 글쟁이의 음습하면서도 야비한 본성에 그만 걸려들고야 만 것이다.

이 한줄을 읽고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이 구절을 다시 읽기까지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다시 읽고 나서야 이 구절이 낡아버린 중년과 초로를 이야기 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 나는 가난에 시달렸을까?

This Post Has 8 Comments

  1. 마가진

    항상 똑같을 수 밖에 없는.. 흔히 다람쥐쳇바퀴로 표현되어지는 생활에 신선한 변화를 찾는것이 정말 중요한,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새삼 깨달아 집니다.^^;;

    1. 旅인

      젊을 때는 생활이 맨날 같아서 근본적인 변화를 갖고 불만이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생활이 변할까봐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현재의 이 상태를 자신 스스로 자초했으면서도 정말로는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여행이나 독서 등을 포함한 소소한 쾌락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 firesuite

    아직 중년은 아니지만..
    그 쪽으로 달려가는 입장으로서 덩달아 우울해지는 걸요? ㅠ_ㅠ

    1. 旅인

      젊은 때의 난감한 상황은 슬프면서 기쁠 수 없고, 당면한 고통이 곧 사라질 것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울면서 웃을 수도 있고 기슴 한편이 우는데 한편은 웃을 수 있고 모든 것은 사라지거나 변할 수 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때마다 난감함과 우울함은 그대로 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플로라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아직 저 문장이 멀뚱합니다^^;;;

    1. 旅인

      힘은 들지만 새로운 일들이 계속되는 좋은 때를 맞이하고 계신 탓이겠지요. 말씀만 들어도 좋습니다.

  4. 여인님도 잠시 휴식기에 들어가셨나 봅니다. 한달여 만에 인사를 드리네요. 많이 바빴던건 아니고 사실 요즘 주식이 재밌어져서 블로그 포스팅도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블로그가 방치한 거 같아 보였겠어요. ㅜ.ㅜ
    사모님 건강도 전보다 많이 좋아지셨길 바랍니다.

    1. 旅인

      두주동안 쓰고 있는 글을 끝내지 못하고 있어서…
      주식으로 재미를 좀 보셨는지요?
      집사람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너무 잠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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