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3 퇴근길

1. 책 도착

일요일 밤에 주문한 책이 퇴근시간 전에 도착했다. 흰돌고래님께 ‘야스퍼스의 불교관’을 읽고 간신히 불교를 이해했다고 말한 후, 갑자기 다시 읽어 보고 싶어 책을 주문한 김에 야스퍼스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함께 읽지 못한 김훈 씨의’풍경과 상처’를 주문했다.

2. 풍경과 상처의 서문

거기에 筆耕(필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연필로 밭을 간다. 글을 쓴다는 것이 누구에게는 노동이고 땀을 흘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서문_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내 初老의 가을에, 상처라는 말은 남세스럽다. 그것을 모르지 않거니와, 내 영세한 筆耕은 그 남세스러움을 무릎쓰고 있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
  … 나는 내 몽롱한 언어들이 세계를 끌어들여 내 속으로 밀어넣어주기를 바랐다. 말들은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다. 여기에 묶어내는 몇 줄의 영세한 문장들은 듣지 않는 말들의 투정의 기록이다. …    <후략>

3. 놈의 전화

퇴근하는 길에 놈의 전화를 받았다.

놈은 나의 목소리를 탐문하듯 가래가 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몇번 더듬었다. 지하철의 쇠바퀴가 선로를 철커덩 밟고 지나는 소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목소리로 놈이 누군지 알았다.

“아무개니? 웬일이냐?”
“스애끼! 아직 죽지 않았구나?”

내가 놈에 대해서 잠수를 탄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있었구나”라는 말은 정작 내가 해야 할 말이었다.

살아가기가 지랄같다며, 지금 광주에 있다고 떠들어댄 후,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놈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했다. 그 전의 놈의 핸드폰 번호는 백악기에나 사용되었던 017이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가 놈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주었던 번호였다. 그리고 불통이란 말에, 놈에게 전화를 했다.

공일칠-띠또띠-띠띠또뚜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놈은 그만 행방불명되었고 나로부터 아득히 멀어져 갔다.

나는 놈의 행방불명이 아쉽지 않았다. 아주 내 눈 앞에 얼씬도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있다면, 놈은 빈대주의자였다. 나 돈 없다와 커피값 니가 내라를 당연히 읊어대면서도 정작 친구로 상갓집에서도 쓸 일없이 철저히 무용한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친구를 욹어먹는데는 도가 틔였고, 잊을 만하면 별 것도 아닌 고민거리를 한보따릴 짊어지고 나타나 “너 술 한자 사라.”고 했다. 놈은 우리가 놈의 불행하지도 시덥지도 않는 이야기를 즐기는 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놈의 이야기를 통해서 놈의 앞 날이 얼마나 찬란할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놈에게 미래란 오직 하나,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 이외는 없어보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로또도 없었으니 아주 깜깜했다.

자신이 편하고 좋으면 스리슬쩍 사라졌다가, 늘 고개를 꺾고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놈은 자신의 불행을 풀어내 놓으면서 세상에서 자신만큼 불행한 놈은 없으며, 불행을 감내하고 있는 자신을 위하여 친구인 나는 커피값과 짜장면값은 무한으로 리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놈이 나타난 두번째 대목 쯤에서 늘 그렇게 말했다.

“넌 정말 개새끼다. 너는 너만의 불운과 아픔 밖에 없다. 누구나 알지 못할 아픔과 고통이 있는 법이다. 내가 너를 보고 개새끼라고 하는 것은 너는 남의 아픔과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너의 고통과 불행만 진짜라고 한다. 하지만 들어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놈은 사라졌다 다시 내 앞에 나타날 때마다, 자신의 불운과 아픔을 착실히 키워서 나타났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키우고 또 키워서 “자 봐 정말 아프겠지?”하고 내 앞에 한 보따리를 늘어놓았다.

그 후 더 이상 불운이 악화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자, 자신을 한정짓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놈은 불운과 아픔에 대하여 불감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면의 삶에 쫓기고 허덕이면서 남에게 돈을 빌리거나 카드값을 연체시키고 나에게 나타나 갚을 기약없는 푼돈을 빌려갔다.

그리고 나의 친구의 돈을 빌리고 나에게 나타나 그것이 왜 투자인지를 설명했다. 나는 투자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친구를 불러서 설명해야 할 일이라고 역정을 내자 놈은 나에게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고, 내가 놈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 전화는 없는 전화번호였다.

“여기는 광주인데, 살다보니 서울에 한번 올라가지 못한다. 서울에 올라가면 술 한잔하자.”하고 서둘러 끊은 놈의 전화번호를 들여다보며,

삶의 모든 국면이 불운이고 아픔인데 앞날이 있고 젊었던 그 시절에는 돌파할 힘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냥 불운이고 아픔이자 수치라고 말하고 싶었다.

또 다른 놈의 이야기

13 thoughts on “20110103 퇴근길

  1. 김훈의 서문을 보면 우리의 기억이란 트라우마(Trauma)이다. 나는 이에 동의한다. 아물지 않은 상채기 위에 포개지는 풍경이 더욱 아련하다.

    1. 한 해가 시작되었는데 힘내셔야죠.
      늘 웃을 수만 없기 때문에 우울도 맞이하는 것이지만 함께 떠내려가지 말고 잠시만 우울하세요.

  2. 무어라 결론 내리기가 모호하신 친구분이신 듯 하네요.^^;;

    저도 걸리버여행기와 해저2만리 완역본을 구했습니다.
    가벼운 소설이지만 완역본을 읽어보면 어릴 때 청소년을 위해 출간되었던 위 소설들을 읽었을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1. 그래도 친구입니다.^^

      그 걸리버여행기에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가 나오겠네요. 사실 소인국이야기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정치풍자소설이라고 하던데…
      한때 줄 베르느의 소설을 무척 즐겨읽었던 때가 있는데, 저 해저이만리를 읽을 때가 냉전 때라 무슨 급 핵잠수함 개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생각이 납니다.

  3. 여인님의 글을 읽은 후부턴 김훈 소설을 읽을때 서문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게 됩니다.
    상처위에 포개어 지는 풍경이라, 그 말이 참 아련하면서도 가슴이 저릿합니다.

    밑의 친구분 일을 읽고 있자니 친구와의 관계라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유기적으로
    얽히는 듯한 관계라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간혹 연락을 하는 것을 보니 그 친구분은
    여인님께 의지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1. 김훈씨의 글은 읽을 만큼 읽었는데도, 그래서 이제는 진부해질 만도 하고 다 본 듯하기도 한데… 여전히 좋습니다. 특히 서문이라고 하지만, 글을 마치고 쓴 글인듯한 서문에서 작가의 속내를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친구 – 참 어려운 말입니다. 이제는 질척거리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낙야성 십리허에 있다는 북망산으로 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1. 저도 노신의 글은 몇편 읽어보지 못했는데, 글의 힘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중국에는 노신 뿐 아니라 그의 형 주작인(周作人) 또한 문장에선 이름이 있더군요. 노신은 혁명가처럼 보냈다면 그의 형은 자상한 것 같습니다.
      너무 열렬히 읽지 마시고 즐기시기를…

  4. ‘3. 놈의 전화’는 짧은 수필이라고 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짧지만 순간적으로 폭~ 빠져들어 다 읽어버렸네요. ^-^

  5. 정말 피곤한 친구군요. 자신만이 옳고 자신이 가장 힘들다는 사람을 대하기란 여간 피곤한 게 아니죠. 어떻게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계속 자신의 주장만 해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또한 위로가 되네요.
    저만 피곤한 친구가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죠.ㅎㅎ

    1. 그래도 친구라서 그런지 연락을 하지 않으면 그립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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