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의 책을 사고 나면 작가의 말을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남겨놓으려 한다. 결국 유혹에 지고 만 나는 작가의 말을 펼친다.

작가의 말은 짧고 때론 소설과 무연하여 뜬구름같고, 그의 생애의 허허로움을 관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언어에 기대어 찾아내지 못한 내 생애의 허허러움 속에 깃든 가려움을 그의 허허로움의 메마른 손톱으로 벅벅 긁는다. 내 생애의 허허로움에 진물이라도 피는 냥 세상도 허허롭다.

때마침 겨울이 왔고 아토피성 피부염이 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김훈의 글…

부처가생명의기워늘마라지안은거슨(…) 마라여질쑤인는거시아니기때무닐거시다. (…) 창조나진화는다한가한사람드릐가서릴터이다.

구르미산매글더프면비가오드시, 나리저물면노으리지드시, 생명은저절로태어나서비에젓꼬바라메쓸려간는데, 그처럼덧업는거뜰이어떠케사랑을할쑤잇꼬사랑을말할쑤인는거신지, 나는눈물겨웟따.

도리켜보니, 나는단한번도’사랑’이나’희망’가튼다너드를써본적기업따.
중생의말로’사랑’이라고쓸때, 그두글짜는사랑이아니라사랑의부재와결피블드러내는꼬리될것가타서겁마는나는저어햇떤모양이다.

그러하되, 다시도리켜보면, 그토록덧업는거뜨리이무인지경의적막강사네한뼈믜근거지를만들고운신처를파기위해서는사랑을거듭말할쑤바께업쓸터이니, 사랑이야말로이덧업는거뜰의중대사업이아닐꺼신가?

젊은 날의 숲 342~343쪽, 작가의 말 중…

일부러 김훈씨의 글을 소리내서 한번 읽어보시라고 저리 써놓았습니다. 저리 써놓고 보니 활자가 하나의 이물로 타자화되고 눈으로 단순히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목에 걸려 울음이되고 소리가 되는 내면의 갈증같아 더욱 좋습니다.

참고> 내 젊은 날의 숲

This Post Has 9 Comments

  1. 마가진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데다 소리나는 대로 적어놓은 글이 마치 이상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읽기가 그리 수월치는 않은데… 각 단어단어 하나하나가 따로 놀지않고 서로 융합되어 같은 글일 텐데도 또박또박 철자법에 맞게 쓴 글과는 온기가 느껴집니다.
    물론, 김훈님의 글이니까 더 그렇게 느껴지겠지요.^^;;

    1. 旅인

      김훈씨의 이 글을 몇번이나 읽으면서 ‘아하! 그래서 사랑이라고 하는구나’하고 제 덧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머리로, 눈으로만 읽다보니 표음문자인 한글을 그만 표의는 아니지만 표음문자가 지닌 음운의 분절을 통하여 소리로 변환치 않고 그냔 익숙한 기호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소리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2. 위소보루

    전 그래서 아직도 김훈씨의 글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체에 힘이 있는 것은 알겠으나 그 깊은 뜻을 되새김질할만한 능력이 안되어 매번 그 내면의 힘을 다 파악하지 못하겠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칼의 노래를 다시 한번 손에 쥐어봐야겠습니다.

    1. 旅인

      김훈씨의 글을 읽으면 정말로 우리의 가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책의 문체는 진부한 느낌도 들지만 아직도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문장에 끝에서 제 숨끝이 멈췄다 다시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2. 위소보루님도 칼의 노래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김훈소설 되게 좋아하는데 뭐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기 보다는 그 문체가 너무도 제 스타일이라서 양보는 안되더라고요. 예술과 어떠한 성향을 마주하기 시작하면 시작도 끝도 없네요. 물론 미당이나 여러 변절자에 대한 것들이 되려 독자한테 거부감을 주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전 적정선에서 별개로 보기로 자체적으로 타협을 했어요. ㅠㅠ(물론 그런 사람들이 좋다는 건 절대 아니고 옹호할 생각도 없어요).

  3. 사상과는 달리 문장은 너무 뛰어나서 김훈 소설 읽을 때마다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문장은 정말 우리나라에 누구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문입니다.
    원래 미문 추구와 정치적 보수는 일맥상통하죠. 정치적으로 진보적일수록 문장이 명료하고 담백하고 수식이 없으려고 하죠. 실질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취급하려는 태도가 파시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나치를 옹호했던 하이데거도 철학자 중 문장이 매우 미문이거든요. 이 두 연관성은 정말 연구 대상 같아요.

    1. 旅인

      저도 김훈씨가 약간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 본질적으로 김훈이나 김용옥 이런 사람들은 보수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수라는 말은 그만 욕이 되어버려서…^^

    2. 旅인

      아참 이 내 젊은 날의 숲을 읽다보니 전에 클리티에님이 다녀오신 수목원의 정경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4. 흰돌

    이게 뭔말일까.. 하다가 소리내어 읽어보니 이해가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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