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화

虛和

얼마 전에 허화라는 단어를 보았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알 듯하면서도 그 뜻을 알기 어려운 이 단어의 출전은 없다. 이 단어는 추사가  만들어낸 모양으로, 서자인 김상우에게 남긴 글이나, 제자 김석준에게 보낸 서한에 나타날 뿐이다.

김석준에게 보낸 글에서는 의미를 발라낼 수 없으나, 아들 김상우에게 남긴 글에서는 어렴풋이 허화의 뜻을 유추해볼 수 있다.

“글씨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허화’인데, 말하자면 텅 빈 마음과 제 갈 길로 물 흐르듯, 꽃피듯 나아가려고 하는 글씨의 의지 사이에 이루어지는 화해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허화라는 단어를…

인위가 자연 속으로 습합하거나, 자연이 인위 속으로 스미는 것으로 이해했다. 자연은 자연으로 존재할 수 있으나, 인위는 인위로만 결단코 존재할 수 없다.

즉, 글의 먹이 종이 속으로 스미는 것이나, 물감이 번지는 것, 혹은 위대한 건물이 무너지고 그 기둥이 비바람에 마모되어 결국 자연이 되어가는 과정,

아니면,

인간의 야멸찬 삶이 결국 죽음이라는 허무와 하나가 되는 그 과정으로

이해한다.

虛和란…

인위와 자연의 악수, 있음과 텅빔의 포옹, 삶과 죽음과의 입맞춤이다.

20101122

This Post Has 6 Comments

  1. 마가진

    저는 글자그대로 “비어있는 것과는 무엇이든 동화할 수 있다”라고 생각해 봅니다.^^;;
    ㅎㅎ 제가 너무 단순하지요?

    1. 旅인

      和하기 위해서는 가득차서는 아니되겠지요. 마땅히 비어있어야 되겠지요.

      …挺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는데(爲), 그 비어있음(無=虛)에 그룻의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利)이 되고, 없음은 쓸모(用)가 된다 라는 도덕경의 말씀이 마가진님 때문에 떠올랐습니다.

      利(이로움, 날키로움, 지식)가 결국 用(쓸모)에 복속한다는 사실이 문득 좋응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봉봉

    아, 정말.. 저도 사모하는 단어… 저는 절대로 이를 수 없는 경지.. ㅜ.ㅠ

    1. 旅인

      서정적..님께서는 이 의미를 정확히 알고 계신 듯 싶습니다.

      저는 추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단어를 보면 매료되곤 합니다.

  3. 흰돌고래

    처음 보는 단어인데
    저는 공(空)이 떠오릅니다.
    언제나 멈춰있지 않고 흐르고 변하는 것이어서 정해진 형태가 없는 것이요.
    물 흐르고 꽃피는 것은 변화의 과정이므로 무상(無常)한 것 곧 텅 빈 마음

    <오래된 미래>에 심취해 있었더니 꼭 불교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ㅎㅎ

    1. 旅인

      완당이 쓴 이 단어의 뜻은 벼루 3개가 밑창이 뚫어지고 붓 천개가 몽당 붓이 될 정도로 글을 열심히 쓰다보면 나중에는 잘쓰려는 악착같은 의지가 없어도 글씨가 되는 경지가 되며, 이때의 글이 자연스럽고 서권기와 금석기가 녹아들어간다는 뜻 같은데….

      저는 이를 이런 뜻으로 이해하고 쓰려고 합니다. 만약 화선지에 붓으로 선을 긋는다면 제가 긋고자 한 선이 인위고 먹이 종이로 스며들어가는 그것은 자연인데, 선(인위)과 스밈(자연) 사이의 그을 수 없는 경계를 허화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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