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을 가다

아내와 함께 강화도의 동막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일요일 오후가 되자 사람과 차들은 썰물처럼 빠졌고, 썰물 때라 갯펄이 수평선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출발할 때만 하여도 하늘이 드높은 날씨였지만, 날이 추워지는 탓인지 네시가 되자 안개가 피어오르는지 햇빛은 흐릿해졌고 붉은 빛이 감돌다 그만 어둠과 안개에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동막해수욕장의 갯뻘이 끝나는 곳에 보이는 섬이 영종도인듯 저녁 하늘 위로 비행기들이 계속 떠올랐고 서쪽으로 날아갔습니다. 먼 곳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떠올라 서쪽 저 멀리로 가는 모습은 낙타가 사막을 가는 것처럼 느릿했습니다.

땅거미가 지는 하늘을 향하여 이륙하는 야간비행은 아득합니다. 무슨 일 때문에, 어느 곳으로, 저리 바삐, 야간항로를 잡아 하늘로 떠오르는지…?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그 모든 세상의 우연함에 나는 늘 절망과 같은 아득함을 느낍니다.

세상에는 설명되어지거나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리라는 나의 생각 또한 아득한 것이긴 매한가지입니다.

강화도의 일몰시간은 서울보다 다소 늦은 5시 25분경이라고 합니다. 아마 일출도 2~3분 늦을 겁니다. 그리고 수평선으로 해가 내려앉기 때문에 밤은 서울보다 한참이나 늦을 줄 알았습니다. 6시가 못되어 밤은 갯펄을 따라 낮은 포복으로 까맣게 내습했습니다.

소주는 이미 샀고, 분오어판장이라는 곳에서 시중가격보다 비쌀 것이 틀림없는 회를 떠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는 화도면 사기리의 한쪽 구석에 있는데, 목가풍으로 지은 연두빛 일색으로 사진빨은 받겠지만 장식을 보면 조잡하고 소주잔도 없고 변변한 식탁조차 없는 그런 곳입니다. 한마디로 겉 포장만 있고 속알맹이는 없을 뿐 아니라 쓸데없는 장식은 펜션을 좁고 불편한 곳으로 만들 뿐 입니다.

어판장에서 뜬 회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입 안이 심심하다는 아내를 데리고 저문 길 가에 하얗게 형광등 불빛을 흘리고 있는 식당에 갑니다.

내가 잠든 사이 복층으로 된 펜션의 아랫층 거실에서 아내가 사부작거렸고, 아내가 돌아와 자는 새벽에 거실로 내려간 나는 창 가에 볼을 대고 앉아 밀물이 차기를 기다립니다.

강화도의 조수 간만의 차는 사리 때(그믐과 보름)면 9미터 이상 차이(11/6일: -11Cm~917Cm)가 나지만, 11/14~15일은 조금 때(반달)라 간만의 차가 3미터에 불과합니다. 14일 23:16분 만조 때의 수위가 612Cm, 15일 06:08분 간조 때의 바다높이는 302Cm입니다. 그리고 다시 15일 12:11분 만조 때의 높이가 568Cm이니, 바닷물이 들이차고 빠지는 모습은 갯펄 위에서 질퍽대기만 할 뿐 진군하거니 퇴각하는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둔 갯펄 저편에 석양보다 붉은 아침 놀이 번졌습니다.

7시 30분, 인천 방향에서 뜬 해는 갯펄을 금빛으로 물들였고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숙소의 밖으로 나가 분오리돈대(墩臺)로 올라갔습니다. 해안가의 높은 언덕마루에 삼사십평짜리 크기로 축성한 돈대에서는 강화도 동남에서 서남까지의 바다와 갯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수가 들이차는 지 갯펄 사이로 물길들이 번지고, 갯펄에 쳐박혀 있던 거룻배들이 선채를 바로하고 물길을 따라 조금씩 나아갑니다.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펜션을 나섭니다.

월요일 오전, 길들은 한적합니다. 길 가의 집들은 동화같습니다. 집들이 동화같은 이유는 그 땅을 파 먹고 서식하는 사람들의 집이 아니라, 펜션이기 때문입니다. 펜션들은 나그네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하여 바다가 보이는 높은 언덕배기를 깎아 세워졌거나, 아니면 가을걷이가 끝나 누렇게 말라가는 들의 한쪽에 하얀 목조 또는 온갖 봄날의 색으로 서 있습니다.

펜션은 해안도로를 따라 초지진 다리부터 외포리를 지나서도 계속됩니다. 은퇴 후의 생활을 위하여 집을 팔고 퇴직금에 빚을 얻어 펜션들을 지을 때만 하여도, 서울에서 가까우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강화의 땅값은 천정부지였을 겁니다. 개발업자와 부동산업자 그리고 난개발이 사라진 지금은 방마다 손님을 채우고 돈을 헤아리기엔 펜션이 너무도 많습니다.

석모도가 바라보이는 서쪽 해안 언덕에 당도하자 밀물과 함께 정오의 가을 하늘이 바다에 꽉들어차 있습니다.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짙은 녹색의 바닷물 위로 물비늘이 일렁입니다.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세상에는 비바람이 치는 날도 많지만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런 날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외포리 수협에서 천일염을 삽니다. 석모도 염전에 오신 소금이 아니라 신안에서 올라오신 소금입니다. 수협 건너편에 젓갈시장이 있습니다. 서울보다 비싸다면서도 아내는 마지 못해 젓갈을 삽니다.

외포리를 지난 강화도 북단 조강(祖江)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길을 잃어 그만 강화읍을 거쳐 집으로 갑니다.

가을은 서울에도 고즈넉하게 내려앉아 있더군요.

20101114~15

추신 : 오랫 만에 사카모토 류이치의 Rain을 들어보니 좋습니다.

This Post Has 8 Comments

  1. 마가진

    하나같이 작품들인 사진입니다.
    역시 바닷가는 겨울이 제철인가요?
    음악과 같이하는 글과 사진에 저도 휴식을 떠난 기분입니다. ^^

    1. 旅인

      겨울이 되기까지는 조금 남은 것 같습니다.
      저도 한 여름의 바다보다는 지금의 바다가 좋은 것 같습니다.

      디카가 좋은 것은 마구마구 찍은 후 좋은 것만 골라올릴 수 있다는 것이니… ^^

  2. 흰돌고래

    ‘음악을 들으며 여인님 글을 읽어야지’했는데,
    그만 영상에 빠지고 말았어요. ㅎㅎ

    빛이 참 좋습니다. 저기 비친 물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1. 旅인

      갯펄이 빛을 받아 그려낸 풍경이겠지요. ^^

      늦가을의 하늘의 우울함 또한 좋았던 것 같습니다.

  3. 위소보루

    한국의 늦가을의 날씨가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것만 같은 사진입니다.

    글의 느낌이 마치 낙엽이 지는 것처럼 차분하고 많은 감정을 일으키게 합니다. 예전 혼자 차를 몰고 갔던 강화도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바닷가와 바닷가를 따라 구부러진 길이며 전봇대가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편안히 쉬셨습니까 ^^

    1. 旅인

      아마 가을의 풍경들이 저를 그와 같은 감상으로 이끌어 이 글을 쓰게 했겠지요.

      갯펄로 이어진 수평선을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자연이란 인간에겐 늘 느닷없이 다가오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어제는 집에서 김장을 했습니다.^^

  4. 아, 강화도.. 작년 12월 초입에 갔던 여행이 생각이 나는군요. 위소보루님이 담으신 강화도 사진들도 떠오르구요. ^^
    그리고 지금 알게 된건데 여인님과의 공통분모가 음악도 있었군요.
    저는 여인님의 삶의 애환과 그 자잘하고도 절박한 느낌들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적 욕구가 같아서 친밀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말이죠.
    괜시리 더 반갑고 그래요. ^^

    1. 旅인

      클리티에님도 류이치 사카모토류의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이번 여행은 침묵같아서 좋았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너른 가을 하늘도 좋았습니다.

      그래요 자잘하고 생활 속의 절박한 느낌을 큰 것이나 진실이니 하는 것보다는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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