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에

일요일 저녁에 찍은 사진이다. 해가 더 낮아져 하늘이 더욱 붉어진 때를 찍고 싶지만, 아파트와 건물들로 둘러싸인 이 곳 서울의 동쪽은 노을이 가라앉는 서쪽과 너무 멀다.

때로 내가 사는 세상은 왜 대지와 하늘과 바람, 숲과 강, 산, 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뒤덮는 빛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산다는 것은 그 속에서 숨쉰다는 것이겠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제공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하루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처마 밑으로 새어나오는 저녁밥이 뜸드는 겸허한 냄새를 맞이하면 기도처럼 느껴진다.

여름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오후의 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면 찹싸알떡 사요~ 메밀무욱 하는 밤골목의 소리라도… 하지만 거리에는 아이들이 사라졌고, 남아있는 아이들은 더 이상 뛰놀지 않는다.

금요일 저녁, 작은외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토요일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어머니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모께서 부산에서 오셨고, 암으로 투병 중인 중간 외삼촌이 오셨다. 두분을 보고 어머니를 보자, 갑자기 쓸쓸해졌다. 재작년 오빠를 보내고, 어제는 막내남동생을 보냈고 또 다른 남동생마저 암으로 투병 중이란 사실 앞에서, 어머니의 가슴 한구석이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서러웠다.

장례식장 안에서 바라본 어른들은 어린 시절 내 앞에서 그토록 건장하고 당당하셨건만, 세월에 하얗게 바랜 모습이었고,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촌들의 얼굴 또한 한쪽 구석이 바래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국 그리스전을 보았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그렇게 사는 모양이다. 가슴이 터지도록 뛰는 선수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일요일 오후는 하늘이 맑고 드높았다.

20100615

This Post Has 14 Comments

  1. Hoya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별세하셨을 땐.. 그 와중에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내 자신이 참 싫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죽음을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제 자신에게 섭섭한 마음도 들더군요..
    아마도, 살아있다는것..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어서 그런 듯 합니다..;

    초면에 이상한 소릴 중얼거려서 죄송합니다~ 여인님!^^

    1. 호야님. 어릴때부터 다정하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할머니(제가 대장할머니라 불렀던)분이 돌아가셨는데, 그날 처음 본 재기를 차는 기쁨에 들떠서 마당에서 계속 재기를 차고 있었답니다. (그걸 재기라 부르는 게 맞는지? 발로 차는 거요. 발로 찼다가 다시 내려오면 또 차고 또 차고..)
      외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할머니께서 절 엄청 사랑해주셨는데…

    2. 旅인

      반갑습니다, 호야님. 저희는 초면이 아니라 몇번 이웃집에서 뵌 적이 있지요. 간혹 호야님댁으로 들러보기도 합니다.

      죽음이란 살아있었던 사람이 살아있을 사람들에게 베푸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이 선물을 감사하게 받고 자신의 삶을 더 보람차게 가꿔나가야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 흰돌고래

    아름답고 슬픈 것이 많은 세상이에요. 어쩌면 슬픈것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이 슬픈 것도 같고요.

    1. 旅인

      맞아요. 노을을 보면 늘 가슴에 슬픔이 차오르는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 사랑도 고요한 마음으로 내려가면 슬픔과 기쁨을 분간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3. 마가진

    하늘 사진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글을 읽고나니 조금 다른 아름다움으로 하늘이 다가오네요.
    아름답다는 표현에도 참으로 세세한 감정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일 수록 사별에 따른 고통보다는 잠시 떠나는 것으로 그리고 다시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듯 한 것을 느끼곤 합니다.
    이 하늘 아래선 항상 수많은 감정이 공존하는 것인가요?
    편안한 영면에 드셨었길 기원합니다.

    1. 旅인

      외삼촌께서 뇌일혈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이라, 한편으로 섭섭하지만, 자리보전을 하고 지낼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족들에겐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외삼촌이 돌아가신 것을 보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제 곁에 계실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저를 우울하게 하더군요.

  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님께 다정하게 대해 드리세요.. 그리고, 어머님께도 위로를 전합니다..

    1. 旅인

      아마도 외삼촌께서는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
      예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5. 선수

    저두.. 위로를 전합니다..

    저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한국에 나가보지 못했어요..
    저도 어머니께 잘해야겠슴다 ㅠ_ㅠ

    (그리고 사진이 멋집니다 ㅜ.ㅜ)

    1. 旅인

      멀리 떨어져 계셔서 가보지 못한 마음, 더 섭섭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멀리 계시지만 워낙 사이가 좋은 두분 사이라 그냥 효도이겠지요.^^

      집 안에서 뒹굴다가 찍은 사진이라 그저 오후의 빛이 좋았을 뿐 입니다.

  6. 못내 떠나보냈던 제 할머니가 떠올라 눈물이 나네요. 여인님도 마음이 많이 울적하셨겠어요. 전 햇살에 투영된 무지개빛 잎사귀들을 보고 있으면 그래도 조금은 평안해지더라구요. 거기다 바람까지 불면 금상첨화죠.
    저도 돌아오는 주말엔 바람도 쐬고 사진도 찍어보고 그래야 겠어요.
    그리고, 영화 나눔 고맙습니다. 재밌게 볼께요. 여인님 리뷰 다시한번 찬찬히 읽어봐야 겠어요. ^^

    1. 旅인

      요즘 쓸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영화관람평이나 쓰고 있습니다.

      요즘 돌아가신 분들을 뵙는 것이 잦은 탓인지 울적함은 잠깐이고 또 사는 것에 치여 그냥 그냥 보내는 모양입니다.

  7. 위소보루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었는데 글들을 보니 그 하늘이 슬퍼졌습니다. 전 아직까지 죽음이란 것에 무덤한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싫은건지 아니면 잘 모르는건지,, 그저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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