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게츠이야기

雨月物語, 감독 溝口健二 1953년작

우게츠(雨月)는 <비오는 날 밤의 달> 혹은 <비 때문에 음력 8월 보름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렇다면 <별 볼일 없는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1. 전쟁

임진년 음력 4월, 마파람에 돛을 활짝펼치고 정기를 휘날리며 왜적들이 정명가도를 외치며 동래부에 이르렀고, 병자년 음력 12월 2일 청태종 홍타이지는 선양에서 병마를 일으켜 9일에 압록강을 넘었다. 왜놈과 뒈놈이 쳐들어온 이 땅의 백성에겐 적이 오는 방향은 선명하고 적(彼)과 우리(我)는 뚜렷하다.

하지만 일본 전국시대의 동란은 어떠했을까? 천황이 권력을 잃고 쇼군의 권위마저 사리진 싯점에 이르면 수많은 군웅(슈고 다이묘)들이 할거를 하는데, 이들의 야망은 다른 다이묘를 깨트려 세력을 불리는 것이며, 물러나 싸우지 않는 다이묘는 멸했다. 싸우는 자에게 흥하고 망하는 것이 조석의 일이며, 이긴 자는 또 싸우고 싸우기를 백년, 섬나라의 전국이 전쟁통이니 전국시대라 한다. 대망은 사무라이를 거느리고 높은 성채에 앉아 일본열도를 어떻게 회쳐먹을 것인가 하는 유력 다이묘들의 이야기이겠거니와 성채의 아래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전국이 동란의 와중에 있을 경우 적이 오는 방향은 알 수 없다. 어느 날에는 남쪽에서, 어느 날에는 서쪽에서, 어느 날에서 언덕을 너머, 어느 날에는 들을 까맣게 뒤덮으며 왔다. 때로 주군을 잃는 사무라이들은 해적이 되거나 화적으로 변하여 마을을 노략질했다.

온갖 방향으로 적을 마주한 서민들에게는 오늘 하루 살았다고 내일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으며, 들은 잡초로 무성하고 곳깐은 채우기도 전에 바람결에 다가온 병사들에게 노략질 당하기가 일쑤였다.

이런 전국시대의 말엽을 배경으로 우게쯔 이야기는 시작한다.

2. 지족

지족(知足)하기란 힘들다. 자기의 분수를 알기도 힘들거니와 만족하기는 더욱 어렵고 만족하되 만족하는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란 더더욱 어려우니, 안분지족은 다 헛말이다.

우게쯔 이야기는 두명의 어리석은 남편과 남편의 어리석음 때문에 희생당하는 두명의 여자들의 갈림길에 대한 이야기다.

겐주로는 부업으로 도자기를 구워파는 농사꾼이다. 그는 성실하고, 아내 미야기는 현숙하다. 하지만 매제인 토베이는 칼도 쓸 줄 모르는 주제에 터무니없이 사무라이가 되려고 한다. 겐주로의 여동생 오하마는 이런 남편이 집을 나갈까 전전긍긍 나날을 보낸다.

겐주로는 도자기를 구워 성으로 가서 팔 생각을 한다. 사무라이가 꿈인 토베이는 겐주로의 수레를 밀어준다는 핑계로 성에 가서 아무 막하라도 들어가 사무라이가 될 생각을 한다.

물자가 부족한 전국시대라서 그런지 겐주로는 그릇을 팔아 큰 돈을 벌게 되고, 토베이는 어느 군문에 들려고 하지만, 갑옷도 창도 없는 주제에 무슨 무사냐고 쫓겨난다.

겐주로는 뜻하지 않은 큰 돈을 벌자, 돈 욕심에 도자기 굽는 것에 혈안이 되고, 매제인 토베이는 처남의 일을 도와주고 돈을 얻으면 갑옷과 창을 사서 사무라이가 될 것을 꿈꾼다.

그릇을 빚어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을 때, 일군의 병사들이 마을에 들이닥친다. 병사들이 노략질과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경각의 상황에서도, 돈에 눈이 먼 겐주로는 도망갈 생각을 하기는 커녕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가마에 장작을 집어넣는다. 할 수 없이 산으로 도망쳤다가 내려와 가마를 살피니 불이 꺼져있었다. 낙심을 하며 가마를 허물었을 때 나온 그릇은 평소보다 더 잘구워졌다.

마을 부근의 성이 다른 다이묘에 의해 함락된 것을 안 겐주로 가족과 토베이 부부는 비와호에서 배를 빌려 호수 건너편 큰 성으로 가서 도자기를 팔기로 한다.

여기에서 이들의 삶의 행로는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비와호에 해적이 창궐한다는 것을 안 겐주로는 아내 미야기에게 어린 아들 겐지를 데리고 집에 돌려보내고 매제 토베이만 데리고 성으로 가려하지만, 여동생 오하마는 토베이가 철없이 사무라이가 되려고 할지도 모르니 감시를 해야한다며 따라나선다.

3. 이들의 행로

• 남편 겐주로

성으로 들어간 겐주로는 그릇을 판다. 매제 토베이가 그릇을 판 돈의 일부를 갖고 줄행랑쳤지만, 제법 큰 돈을 번 그는 아내를 위하여 기모노를 한벌 사 갈 생각을 한다. 그때 쿠즈키家의 묘령의 아가씨가 나타나 자신의 집으로 겐주로가 만든 그릇 몇점을 배달해달라고 한다.

날이 저물어 그릇을 들고 쿠즈키家에 들어서자 낡은 집에 불이 들어오며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난다. 거기에서 쿠즈키家의 딸인 와카사가 자신의 그릇에 매료되었을 뿐 아니라, 젊고 아리따우며 귀족의 딸임에도 천한 농사꾼이자 도공에 불과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와카시와 혼인을 한 겐주로는 황홀한 시간을 보내며, 집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까맣게 잊고 만다.

어느 날 시장으로 물건을 사러 갔다가 도사를 만나 자신이 와카사라는 귀신에 홀렸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 여동생 오하마

그릇을 판 돈을 들고 사무라이가 되기 위하여 도망치는 남편 토베이를 쫓아가다 그만 외딴 곳에서 떠도는 무사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만다. 그 후 그녀는 유곽을 전전하면서 몸을 판다.

• 매제 토베이

그릇 판 돈으로 갑옷과 창을 사서 군문에 든 토베이는, 패주하다가 할복 자결한 적장을 목을 자신이 죽였다고 장군에게 갖다바침으로써 제법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높히 말을 타고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자랑하려고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른 술집에서 몸을 팔고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사무라이가 되려고 했던 것이 다 아내 오하마를 위한 것인데 자신의 헛된 명예욕 때문에 아내가 정조를 잃어버리고 유곽을 떠도는 것을 알고 갑옷과 칼을 집어던지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 아내 미야기

비와호에서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미야기는 이집 저집에서 먹을 것을 얻어 연명하던 중, 아들에게 먹일 것을 병사들에게 빼앗긴다. 아들을 먹일 것이라며 돌려달라고 하다가 그만 창에 찔려 죽는다.

4. 고향으로 돌아온 후

겐주로는 귀신에게 홀려 행복을 누리고 있는 동안, 아내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자신을 기다리다가 굶주리고 전란통에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달복달 돈을 벌고자 했던 것도 결국 가족을 위한 것이었으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애통해한다. 그 사이에 돌아온 토베이도 허울좋은 명예보다 아내와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겐주로는 더 이상 과거처럼 돈을 벌기 위하여 도자기를 허겁지겁 만들지 않고 정성껏 만들기 시작했고, 토베이는 땀을 흘리며 밭을 간다.

겐주로의 아들 겐지는 아장아장 집 바로 옆의 엄마 무덤에 가서 화병의 꽃을 바로하고 인사를 하고 아빠와 고모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5. 영화에 대한 감상

이 영화는 해피엔딩일까? 해피엔딩이라기에는 쓸쓸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상실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내와 명예와 돈과 정조를 잃고 커다란 상처를 간직한 채 돌아온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쓸쓸하다.

그럼에도 해피엔딩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잃은 것이 인간의 헛된 욕망과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자리에 지족이 피어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자 미조구치 겐지의 또 다른 영화를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조구치 겐지는 장편소설 이상의 내용을 간직한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97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깔끔하고도 여유롭게 전개해냈을 뿐 아니라, 전국시대의 아비규환과 인간군상들을 사실적이고도 뛰어난 영상 속에 담아낸다. 이 영화 하나로 왜 미조구치 겐지를 구로자와 아키라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6. 여담

라쇼몽에서 죽은 사무라이의 아내로 나오고, 이 영화에서 쿠츠키家의 와카사로 나오는 쿄 마치코(京マチ子)의 가부키 여배우와 같은 자태는 귀기가 서린 듯했고 빨려드는 마력이 있다.

20100608

참고> 雨月物語

This Post Has 2 Comments

  1. 흰돌고래

    영화 한 편을 다 본 기분이에요 ^_^
    난 저 남자들 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보같다’라는 생각이 들다가,
    저도 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흑..T.T
    요즘은 중요한 뭔가를 잊고 지내는 것 같아요.

    1. 旅인

      정말 장황하게 영화보다 길게 쓴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자들은 돈과 명예라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 같습니다. 아마 영화에서처럼 참담한 후회가 없다면 돈과 명예가 다 일장춘몽이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 돈 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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