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동안

1. 티스토리로 오고 난 후,

점차 이웃분들의 포스트가 줄어들고 있다. 매일 이웃분들의 블로그에 들러보지만, 더 이상 올라오는 포스트가 없다. 그러면 방과 후에 놀러나갔는데 친구가 하나도 없는 쓸쓸한 오후의 골목같다.

소통하기 어려운 티스토리다.

2. 지난 일주일동안,

월-e, 제니의 초상, 종착역, 엔젤하트, 작은 신의 아이들, 지난 여름 갑자기, 우게쯔 이야기(雨月物語) 등의 영화를 보았다.

작은 신의 아이들(1987년작) : 정상인이 청각장애인을 사랑하여도 그녀의 침묵 속으로 내려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목소리보다 수화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 준 영화.

지난 여름 갑자기(1959년작) :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캐서린 헵번 연기는 거짓과 진실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공포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우게쯔 이야기(1953년작) : 구로자와 아키라보다 더 뛰어나다는 미조구치 겐지의 이 영화는 남자들이 얼마나 철없는 인간들인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일본 목각인형같은 모습으로 나오는 멸망한 다이묘의 딸의 연기는 귀기가 서렸다.

3. 다시 읽는 바다의 기별 중에는,

그해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렸고 빗속에서 나무와 짐승들이 비린내를 풍겼다. 비에 젓어서, 산 것들의 몸 냄새가 몸 밖으로 번져 나오던 그 여름에 당신의 소매 없는 블라우스 아래로 당신의 흰 팔이 드러났고 푸른 정맥 한 줄기가 살갗 위를 흐르고 있었다. 당신의 정맥에서는 새벽안개의 냄새가 날 듯했고 정맥의 푸른색은 낯선 시간의 빛깔이었다. 당신의 정맥은 팔뚝을 따라 올라가서, 점점 희미해서 가물거리는 선 한 줄이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들어갔다. 겨드랑 밑에서부터 당신의 정맥은 몸속의 먼 곳을 향했고, 그 정맥의 저쪽은 깊어서 보이지 않았다. 당신의 정맥이 숨어드는 죽지 밑에서 겨드랑 살은 접히고 포개져서 작은 골을 이루고 있었다. 당신이 찻잔을 잡느라고, 책갈피를 넘기느라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느라고 팔을 움직일 때마다 당신의 겨드랑 골은 열리고 또 닫혀서 때때로 그 안쪽이 들여다보일 듯했지만, 그 어두운 골 안쪽으로 당신의 살 속을 파고 들어간 정맥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고 사라진 정맥의 뒤 소식은 아득히 먼 나라의 풍문처럼 희미해서 닿을 수 없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읽고 가볍게 떨었다.

사랑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그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너무 많이 내려서 온 몸이 젖었고 가슴이 불어터질 정도였지만 나는 나를 넘어서 여자의 풍경 속으로 다가간 적이 없다.

20100606

This Post Has 8 Comments

  1. 여인님 영화 많이 보셨네요. 다음 포스팅은 영화리뷰일듯 ^^;; 티스토리로 이사와서 한산해진 것도 있지만, 저는 페이퍼 써야할것이 있어서 괜히 바쁜척이 됐어요. 평일 오후에는 바쁘니깐 주말에만 들어오게 되는것 같아요. >_< 그래도 여인님과 소통은 놓치지 않고 싶습니다.

    1. 旅인

      그러고 보니 조금만 있으면 학기말고사 그리고 방학이네요. 요 며칠동안 낮이면 땡볕입니다.
      영화 리뷰라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다양한 플롯을 가진 영화를 보다가 예전 영화를 보면 줄거리가 몹시 평면적이고, 다이나믹한 면도 적고 해서요.

  2. 흰돌고래

    저도 ‘어떤 영화를 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여인님은 많이 보셨어요 🙂
    T.T 쓸쓸한 티스토리.. 우연인지 필연인지 티스토리로 오고 나서 왜 이런지 모르겠어용.
    <바다의 기별>의 구절은 인상적이에요.

    1. 旅인

      김훈 씨의 저 글을 읽으면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좀 어두컴컴한 카페같은 곳에서 서로 아무 말없이 침묵 너머로 상대의 숨결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냥 흑백영화를 중심으로 다시 보고 있습니다.
      정말 티스토리는 이웃소식도 소원하고 소통을 위한 마땅한 장치가 없습니다.

  3. 마가진

    정말 소통면에서는 텍큐가 상당히 잘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간만에 꽤 떨어진 곳의 비디오대여점을 하나 발견해서 영화를 빌려보았습니다.
    저는 가벼운 영화와 글을 주로 접하는 편입니다.^^;;;

    1. 旅인

      저도 쉽고 가벼운 영화를 좋아합니다. 사랑하고 울고 웃고 하는 멜로물을 좋아합니다. 그런 영화는 보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죠.

      티스토리는 다른 점은 좋은데, 너무 소통을 위한 장치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4. 선수

    월이 보셨네요? 왈왈~ 너무 귀엽지 않던가요?ㅎㅎ 저두 여인님 포스트보고 엔젤하트 지금 다운로드 중입니다

    1. 旅인

      월이는 목욕 세수만 자주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근사한 청년 로보트이지요.^^

      엔젤하트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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