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전에 “밥 한그릇”이라는 포스트에서 경제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무지막지한 말을 쓴 적이 있다.

(경제학의) 전제조건은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되,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뻔한 이야기이며, 이 세상이 한마디로 <餓鬼道>라는 이야기이다. 일단 여타의 변수는 시장에 영향을 그다지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가격과 수량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아귀지옥>은 수요 공급곡선을 놓고 볼 때, 인간의 욕망이라는 심리태와 상품(재화와 용역)이라는 물질태가 <돈>이라는 지수에 수렴되면서 이익도 손실도 없는 평형을 이룬다고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환상이다. 완전경쟁시장은 경제학의 논리가 춤추는 무대인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UTO-MARKET>인 것이다. 그러면 이른바 부르조와도 프롤렐타리아도 없다.

하지만 이 말에 의미를 둘 필요는 전혀 없다. 이 글은 경제학 관련 전과목을 C와 D로 깐 어느 학부졸업생의 그럴 듯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수요와 공급의 함수관계를 말로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봉급쟁이인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다행이게도 시장이란 비평형적이며, 왜곡되어 있다, 이러한 왜곡된 시장에서 우리는 <제로섬>을 향한 피튀기는 경쟁을 하는 것이다. 버는 놈이 있으면 잃는 놈도 있다. 죽지 않기 위해서 기업은 시장에 좌판을 벌이고 우리를 그 위에 세우고 <자! 골라, 골라>를 외치게 하는 것이다.

완전경쟁시장이 존재한다면 장돌뱅이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되고, 나는 <백수>라는 궁색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경제학의 함수로 표현하고 담을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왜곡>의 문제이고 정보와 시장을 지배하는 힘(권력)의 독점(비평형)이라는 문제이다.


1. 백서(White Paper)로서의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삼성을 통해서 본 한국재벌의 경영권 편법 증여와 기조실의 역할 그리고 권력기관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백서>라고 칭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한번 읽고 치워버릴 책이 아니다. 학술 및 정부정책에 반영할 엄청난 분량의 예시와 돈과 권력의 상관관계, 기업의 오너쉽이 한국경제 및 국가권력기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들어 있어서 백서(white paper)로서의 가치가 상당하다.

특히 이 책은 제 3의 기관이나 리포터들에 의하여 자료가 수집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부정한 행위와 편법 증여의 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사람의 고백적 성찰을 바탕으로 하고 비리과정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사례들이 줄줄이 나열되고 있다.

이런 책이 한사람의 기억과 논리적인 검증을 통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간간히 개인적인 울분과 변명이 글 속에 섞여있다고 하더라도 책의 논지와 세간의 혹평에 대한 법리적인 비판(아니 상식적인 궤에서 벗어나지 않는 비판) 등이 읽는 사람의 감정을 전혀 자극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2.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 1항 :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에는 평등의 조건에 대하여 명확하게 규정한다. 우리는 <법 앞>에서만 평등하다는 것이다. 법의 옆과 뒤에서는 여지없이 불평등하며 강자의 논리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법을 만들고 법 앞에서 만이라도 평등하게 다루어달라고 국가에 요구한다. 법이 도덕의 최소라는 점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최소한의 평등을 요구한다.

하지만 삼성의 경영권 편법 증여를 검찰과 법원에서 정당화해주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은, ‘국민이 법 앞에서 마저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과 우리의 사법제도가 <돈 앞>에서 전혀 기능을 못했다는 것을 이 책은 적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는 내내 삼성과 그의 일가, 가신들에 대해서 비난할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고, 소유권의 증여 및 상속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며,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것이 경영학은 물론 이 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삼성, 아니 이건희 씨 가족은 그에 따랐을 뿐이다. 법이 이처럼 무력하고, 사회적으로 견제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그 정도의 금권을 향유하고 있다면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식의 도치된 문법을 바탕으로 요설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혜는 바로 야비함이다.

삼성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들은 자본주의 정글 속에 자신의 삶을 내다놓고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욕구와 이기심을 바탕으로 불가피하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국면에 직면한다.

3. 아아 대한민국

국가가 무엇인가를 다루는 사회계약설을 보면, 자연권을 그대로 방치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 발생하며 인간의 무자비한 투쟁상태로 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인간은 계약에 의하여 강력한 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홉스)으로 부터 불평등의 원인을 사유재산에 의한 것으로 보고 국민의 일반의지로서의 국가가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루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서 국가는 법률적 절차에 따라서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제한하고 상속에 있어서 정당한 댓가를 지불(상속 증여세)하게 해야 하며, 국민 개개의 자유와 평등의 신장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민주주의가 하나의 정치체제로 요청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이념이 된다. 절차적으로는 법에 따른다.

불행하게도 김용철 씨의 백서를 보면, 국가는 국가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 눈을 가리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할 사법부는 약자이면서 주권자인 국민에 편에 서지 않고, 강자(삼성 이건희 일가와 기조실)의 편만 들어주었다. “국가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시장에 넘어갔다”고 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빌어, 국민 전체를 위하여 봉사하는 정부가 아니라 일부 재벌을 위한 정부라는 것,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삼성공화국’이란 국가의 모든 권력은 삼성(혹은 시장, 재벌)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뜻이다. 국민에게 있어야 할 권력(주권재민) 만 이양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생존을 담보하는 돈과 정보, 일자리, 시장, 언론(광고를 통한 언론지배) 모두를 지배한다.

4. 국가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

이 말의 전후문맥은 잘모르지만, 그동안 고도성장을 위한 재벌 위주의 정책과 그 댓가인 정경유착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재벌은 무소불위의 금권을 형성했다. 참여정부에 와서 반본환원, 권력의 주체인 국민의 뜻에 입각하여 정부를 운영하려고 했으나,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손써 볼 방도가 없을 정도로 정부가 금권에 오염되어 있었고, 참여정부 및 대통령 자신 역시 재벌의 손아귀 속에서 놀아났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침통한 술회로 나는 이해한다.

당시 현직 대통령의 술회가 저러하다면, 김용철 씨의 말은 맞고, 국민인 나는 이 나라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며, 오로지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김용철 씨는 시장에서 모든 정보와 힘이 삼성 등 몇개의 재벌로 집중됨으로써,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으로 신규 창업자들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방해할 뿐 아니라, 하청 하도급 업체는 재벌들의 원가절감을 위하여 고혈을 짜냄으로써 도산상태에 이르게 하고, 재벌들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제공하는 일자리마저 줄고 있다며, 한국경제에 대한 공헌보다 오히려 피폐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실이다. 돈에는 국경이 없다. 그래서 한푼이라도 더 벌리는 곳으로 돈은 가게 마련이다.

김용철 씨의 백서에는 이러한 이야기 외에도 그동안 왜곡된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우리 속에 자리잡은 비틀리고 기형화된 윤리관에 대한 본인 자신의 착잡한 소회마저 깃들어 있다. 자신이 속하고 밥벌이를 하던 조직에 대한 배신과 양심선언 사이의 거리, 도덕의 최소라는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과 법원이 인맥, 학연과 지연에 얽혀 떡값을 받고 양심과 도덕에 반하여 사악한 권력으로 우뚝 서 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하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의가 부재한 나라에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삼성과 재벌의 탐욕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그것이 기업의 생리이며, 인간은 이기심을 바탕으로 무한한 욕구를 가진다. 그것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삼성과 재벌에게 스스로 자제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그들이 자제한다고 해서 믿을 수 없다. 그들에겐 항상 윤리와 도덕, 국가에 앞서 돈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은 그것을 견제해달라고 정부와 권력기관을 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뇌물을 떡값이라고 받아먹고 스리슬쩍 넘어갔다. 그들은 질주하는 거대한 이기심과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의의 칼날을 오히려,

죽은 권력과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존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들이댔다.

그리고 용산에서 화재가 났고, 미네르바가 잡혔고, 전총리가 돈을 먹었다고 성마른 소리를 짖어댔고, 스폰서 검사가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묻는다. 이 나라가 과연 대한민국이냐고? 민주주의 공화국이 맞느냐고?

하지만 강자에게 침묵했던 그들은 약자들에게 봉건주의의 문법으로 준엄하게 말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공자의 정명론을 떠올린다.

國國民民父父子子

“나라가 나라다워야 국민이 국민다울 수 있고 어른이 어른다워야 어린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다.”

참고: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 ,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등에 대한 재판

참고: 삼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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