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면체와 영혼의 혼례에 관한 소묘-2

2. 魔方陣

그림자를 펜에 찍어 내 삶의 처절한 이야기를 여기 쓰노니 등잔 아래에서 읽을 수 없고 해(日)를 받으면 사멸하는 것, 곧 어둠의 흔적이라. (트랜실바니아에 있는 어느 묘석에 새겨져있다고 한다)

봄은 오늘도 오지 않는다. 해가 그늘을 걷어내지 못하는 계절은 여전하였으니 누군가 노래하는 것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세계의 질서를 결박하고자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내려다보아 세간의 잡다한 언어를 제압하고 망상과 詩을 걷어내 숫자를 박았으니 그것이 낙서(洛書)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삼라만상의 추상. 여기에 죽음의 이야기는 없고 생생불식하되, 사랑 또한 말해지지 않는다.

나는 무면(無眠)하는 목숨이다. 몽유병은 없는 반면 다섯개의 영혼으로 사는데, 나머지 네명을 만나본 적이 없으며, 주소조차 모른다. 그 네명이 자행하는 짓거리를 알자고 하면 뒷담화를 해 줄 싸구려 친구들, 나에게는 동창도 이웃도 없다. 내가 사는 이 곳은 먼지를 그림자로 이겨만든 구석이며, 나에게는 이름조차 없다.

욕망하는 것은 살지 않아 시간이 없는 눈으로 보고자 한다. 풍경은 보여도 뇌수가 없는 두개골에 고인 물 속에 아로새겨진 것들. 원효가 마셨을지도 모른다. 없는 목숨(無生)으로 색(色)을 보는 방식이나 떠도는 생애(浮生)로 공(空)을 깨치는 것 사이에 다를 것은 무엇인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마방진에 대한 전말을 말하면 대략 이러하다.

오성에 숫자를 대입한 선험적 종합판단은 아니고 현상되지 아니한 표현, 이른바 예술이다. 예술이란 카바레에서 이야기되는 탓도 있으나 우(禹)가 치수 때에 거북이 등의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는 점도 고려된다. 아홉개의 칸에 있는 숫자들이 흘레붙은 숫자는 모두 15다. 불의한 법정에서 간통이 성립되지 아니한다. “절차상의 불륜은 인정되나, 부모가 다르다고 할 근거는 따로 없다.” 1가결 선포의 절차상 문제는 인정되나 법안의 효력은 유효하다.(미디어법 관련, 헌재결정문 중 2009.10.29) 고 한다. 그리하여 이는 협잡인즉 마방진이라 하자.

그 시대의 우주란 하늘이 편편하며 동그랗게 돌았다. 땅은 네모지고 움직이지 않는다. 해는 시계방향으로 돌았고, 달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았다. 과학은 우격다짐이며 계산은 주먹구구다. 그래서 풀이는 자유이며, 논리는 은유이다.

사건의 선후관계는 있겠으나, 희창(姬昌)은 유리에 유폐된다. 하늘과 땅이 서로 비벼지지 않고 삼라만상이 서로 등을 돌린 탓에 군자가 반듯해도 이로운 것이 없다. ‘막혀있다, 어찌 사람의 길이라고 할 것인가?'(否之匪人 : 周易 天地否) 사람의 길에서 벗어난 그는 서죽을 펼쳐 생과 사를 점쳤으니 그 점사를 엮어 역(易)을 만드노니, 점사는 천지상하가 내었으되 엮은 것은 사람(=삶)이라. 역에는 죽음의 기록은 없을지라도, 감당할 현실은 참담하며 길한 것은 적고 흉하며 잘해야 본전이다.

기자 : 당신의 점괘는 무엇이었오?

문왕 : 유폐의 점사는 ‘피밭에서 기다린다. 구멍으로부터 나온다'(需于血 出自穴 : 周易 水天需 六四)였오. 하루는 점을 쳐 보니 ‘오호! 네가 인(仁)하면 참으로 죽으리라!’는 점괘가 나왔오.

주(紂: 은나라 마지막 왕)는 희창(문왕)이 어질고 현명하다는 것을 듣고, 그것을 시험하기 위하여 희창의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끓인 국을 희창에게 보낸다. 희창은 자식 백읍고의 인육임을 알고도 국을 먹는다.

주 : 국을 먹지 않았다면 그를 죽였으리로되, 희창은 먹었다. 아들의 고기인줄 알았다면 어질지 아니하고, 몰랐다면 슬기롭지 아니하다. 으하하하! 자식의 고기를 쳐먹은 놈을 놓아주리라!

달기(아홉개의 꼬리를 감추고) : 놓아주면 후회하리다. 전하!

문왕을 놓아줌으로써 예와 악이 바로선 것이 아니라, 神이 광야로 쫓겨나 호곡했고 더 이상 죽음 을 사유하지 않았으며 그만 易에 미혹하였다.

헛것의 숫자로 이 생을 점하니 그 상(像)이 어지럽고 말(語)은 꼬인다. 영혼이란 그런 것이다. 말로 할 수 없을 때 말(言)되어 지는 것, 시간없는 것 사이로 비집고 나와 정신을 잠식하고 산 것들을 능멸하며 노래부르고 춤추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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