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4 13:47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아무런 향기가 없던 남자. 그에게선 비누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아무런 향기가 없던 그는 삼년넘게 내 곁에 머물렀으면서도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추억을 더듬어보아도 추억이랄 것조차 없는 남자. 그래서 나는 늘 내 가슴 속의 사랑을 꺼내보며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색깔이 다른 우정'이라고 우겨말하게 되는 그런 남자였다.

그 날도 이렇게 라일락 향기가 흩날렸다.

축제 중이었지만, 그 해도 함께 할 남자가 없었다. 축제에 가지 못했고 햇빛이 좋은 날임에도 방 그늘 아래에 나 앉아 있었다. 축제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도 없었지만, 예쁘게 차려 입고 남자친구와 함께 교정을 거닐거나, 몇몇의 커플들끼리 모여 어설픈 소개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그 자리로 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엄마는 "축제에 안 갈꺼니?" 묻고는 동창회 때문에 늦을 것이니 저녁을 차려 먹으라고 했다.

아침부터 방 청소를 끝내고 샤워를 한 후, 아빠가 사 온 블루마운틴인가 하는 원두커피를 내려 쿠키와 함께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거나, 음악을 들었다.

무료한 하루가 지나갔고, 창 밖으로 노을이 가득했다.

냉장고에서 식은 반찬을 꺼내 깨작깨작 저녁을 먹었다. 너무 조용해서, 아니 가슴 속에 깃든 외로움이 하얗게 지워질까 불도 켜지 않았다. 창으로 스며드는 형용할 수 없는 노을빛 속에서 수저가 사기그릇에 부딪혀 반짝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식사를 마치자 더 이상 노을빛은 남아있지 않았다.

TV를 켰다. 어두운 거실로 흑백의 빛을 쏟아내며 TV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도 속절없이 정적 속으로 말려들었다. 창으로 오월의 저녁바람이 미지근한 냄새를 피우며 흘러들었다. 골목 저 쪽에서 일대의 사람들이 걸어가며 떠들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그리웠다. 왠지 사는 것이란 조금 슬픈 것 같았다.

그래서 여행에 생각이 미쳤던 것 같다. 무작정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집 안을 샅샅히 뒤진 끝에 겨우 배낭을 찾았지만, 무엇을 챙겨야 할 지 몰랐다. 적당한 신발도 모자도 없었다.

대학생활 1년이 넘도록 도대체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집으로 돌아온 엄마에게 친구와 함께 1박 2일로 여행을 간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집에서 다리만 건너면 되는 고속버스터미널 대신 청량리역을 택했다.

생리가 멈췄다고 선애가 속삭였다. 명랑했던 그녀의 며칠동안의 우울한 침묵 끝이었다. 그제서야 얼굴의 한쪽 구석이 들떠있는 이유를 알았고, 그녀를 가만히 안았다. 선애는 내 품에서 "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하얀 한숨을 토해냈다.

남자가 아느냐고 물었다.

아직 혼돈스러울 뿐이라며, 생각을 정리한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그녀는, 밤에 경포대라며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남자와 함께 있다며, 모든 것은 잘 해결될 것 같다고 속삭였다. 선애의 속삭임은 늦은 밤, 해변 위로 무너지는 파도소리같았다.

바다에서 돌아온 그녀는 수업시간에도 무망의 눈빛으로 보내다가, 다시 결석을 했고 창백한 얼굴로 수업에 들어와 "저기 말이야... 비밀인데... 나 수술했어."하고 속삭인 후, 안타까운 웃음을 떠올렸다.

그 후 그녀는 술을 마셨고, 화장을 짙게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점 예뻐졌고 성숙한 여자의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나와 조금씩 틈이 벌어졌고, 화운데이션 냄새 속에 짙은 향수를 흘리며 도발적인 옷을 입고 다니는 몇몇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어느 날 선애는 겨울은 춥고, 인생은 즐길 필요가 있는거라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낮인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고 술냄새가 났다. 웃는 그녀를 더 이상 안아줄 수 없었다. 내가 감당하기에 그녀는 너무 웃자라버렸던 것이다.

경포대에 있다고 전화한 날, 어두운 방 안에 하얗게 떠오르는 두사람의 나신 위로 밤새도록 쏟아져 내렸다가 사라져버리던 그 파도소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량리에서 동해바다까지는 멀었다. 고속버스로는 4시간인 것이 열차로는 8시간이 넘게 걸렸다. 또 다음 열차까진 한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강릉에 도착하면 여섯시였다.

할 수 없이 태백선이 시작한다는 제천행 열차표를 끊었다. 사람들 틈에 끼어 간신히 중앙선에 올랐다.

수학여행 이후 처음 타 본 기차는, 평일 임에도 혼잡했다.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야 카세트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카메라를 가져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필름을 갈아끼우고 촛점을 맞추고 하는 것을 몰랐다.

나의 생활은 평범하다 못해 지루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갔다가 단과반을 들른 후 집으로 돌아와 문제집을 풀고, TV를 잠시 본 후 양치질을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잠을 드는 나날들에 익숙했다. 그렇게 단조로운 생활을 보내며 공부를 했어도 재수를 했고 간신히 선이 잘들어와 시집가는 데 좋다는 여자대학에 입학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자유롭고 젊음을 즐길 수 있다고 했지만, 일년동안의 대학생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학교 앞의 카페나 의상실, 미용실과 거리를 돌아다니는 젊은이들로 화려했지만, 나는 그 거리와 관계가 없었다. 나는 그 거리를 스쳐다닐 뿐이었다.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간단한 점심식사나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와 잡지나 책을 읽거나 때론 저녁을 준비하거나 설겆이를 하거나 했다. 휴일이면 시내로 나가 고등학교 때의 친구를 만나고 하는 것이 다였다.

열차가 출발을 하려는 지 덜컹했다. 짧은 일박이일의 여행이 시작된다는 것 설레임 때문인지 나의 가슴도 덜컹했고 마지근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열차는 역구내에 얽혀있는 철로와 철골 위에 매달린 고압전선과 난잡하게 뒤섞여 있는 객차와 화차 사이를 비비적거리며 도시의 끝, 변두리 속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카세트를 가져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책이라도 읽을까 하고 배낭 안을 뒤지니 책 대신 잠옷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실소를 하고 말았다. 갇힌 틀에서만 살던 나는 익숙하지 않은 것엔 늘 서툴렀고 어리벙벙했다.

신입생 초에 같은 반 친구들의 권유로 몇번 미팅에 나갔지만, 한쪽 구석에서 남학생들이 초조하게 뿜어대는 담배연기가 자욱한 카페에서 쪽지를 고르고 나란히 마주보고 앉아 상대편이 말을 걸 때까지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이 숨막힐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고 상대편이 말을 꺼내도 우연히 쪽지를 고르다보니 마주하고 앉았고, 이제부터 서로 좋아하기 위한 노력을 하거나 아니면 당신이 싫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에 아무런 필연성을 찾을 수 없었다.

미팅에서 만난 남자들에게는 아무런 매력도 없었다. 나보다 단순했고 게다가 자신이 대학생이라는 것을 신분처럼 생각하고, 조금 좋은 대학을 다닌다 싶으면 모든 것을 과소평가하는 터무니없는 종족이었을 뿐 아니라, 고등학교 때까지 나처럼 학교나 왔다갔다했기에 발라먹을 건덕지 조차 없는 단편적인 생활을 보냈으면서도 터무니없는 인생을 이야기했고, 쓸데없는 자기애에 빠져있는 것만 같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들은 쉴새없이 떠들었고, 다시 만날 수 없냐며 전화번호를 애걸했다. 늘 이 부분에서 나는 갈피를 접을 수 없었다. 싫다고 하지 못한 나는, 바보처럼 번호를 알려주었고, 그들은 찌르릉 찌르릉 집으로 전화를 했다. 느닷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무슨 말로 거절을 해야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으면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우리집 애는 학생을 만날 처지가 아니예요."하고 냉혹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고, 아무 남자나 만나지 말고 사내는 잘 골라가며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어떤 남자인데? 내가 보기에는 다 쓸모없어. 더 이상 미팅같은 데는 나가지 않을테니 걱정말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게 나의 대학 1학년은 지나갔다.

201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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