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라 마디간

Elvira Madigan(1967)

1785년 작곡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안단테는 1967년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난 후, <엘비라 마디간>으로 불리워지게 된다.

영화가 한국에 개봉된 것은 1972년 중앙극장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1975년 경복궁 옆에 있던 <불란서문화관>의 지하에 있는 16mm 상영관에서 보았다.

지독하게 공부를 하기 싫던 고등학교 2학년, 그렇다고 뚜렷하게 나에게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신정권이 좋았다면, 정부에서 보충학습을 없애라 하면 그냥 없앨 수 밖에 없었기에, 8교시가 끝나면 우리를 붙들어둘 것이라고는 담임의 지리한 종례 밖에 없었다.

공부를 작파한 나와 나의 친구들은 남은 시간에 할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때로 술을 마시거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그런 것은 늘 제 자리를 맴도는 것에 불과했고 나에게는 앞 날에 대한 아무런 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생 연인들이 가득한 문화관의 지하로 스며들어가 교모를 벗어 가방 속에 찔러넣고 값싼 가격(개봉관 가격이 150원인가 할 때, 30원인가 한 것으로 기억한다)에 아무 영화나 보았다.

그때 이 영화를 보았다.

35mm나 70mm를 상영하던 대한극장 등 개봉관의 오리지널 사운드는 극장이 넓은 관계로 소리가 크고 쟁쟁했다. 반면 문화관의 지하는 16mm의 영화를 상영하는 관계 상 크기가 오붓하여 소리를 울리기에 적당했는지 모른다.

이 영화는 노란색과 연두색이 깃든 덴마크 시골의 풍경과 엘비라 마디간의 얼굴과 자태, 그리고 화면을 채우는 모차르트의 음악 밖에 남는 것이 없는 영화다.

어떻게 식스틴이 마디간을 만나고 서로 사랑에 빠졌으며, 그들의 사랑의 깊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조용한 영화다. 그들의 사랑의 깊이는 마지막, 풀밭에서 나비를 잡으려고 하는 아직 꽃피지도 못한 아리따운 18세의 처녀 얼굴 저 쪽에서 터지는 총성과 잠시 간격을 두고 또 다시 울리는 총성으로 가늠할 수 밖에 없다.

정사(情死),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주어진 선물인 사랑은 때론 치명적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불란서 문화관을 벗어났을 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저녁의 바람이 훅 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호주머니를 털어 저녁을 사 먹을 것인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수하게 나의 귓전을 스쳐지났던 음악이 무슨 음악인가를 친구에게 묻고 있었다.

친구는 말했다.

“얌마, 넌 그딴 것도 모르냐? 저 곡명은 엘비라 마디간이야.”

친구는 그 음악이 모차르트의 곡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를 수도 있다.

35년 후인 어제, 다운받아놓고 일년이 지난 엘비라 마디간을, 새로운 이웃인 슈풍크님의 글을 읽고 다시 보았다.

슈풍크님의 글에는 “그토록 잔혹한 영화를 본 일도 없었어”라고 쓰여 있다.

이 영화는 1889년에 유럽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육군 중위였고, 아내와 자식이 있던 저스틴 스파레백작은 18세의 엘비라 마디간으로 불리우던 소녀 알리스 헤드비히 옌센과 함께 덴마크의 숲 속에서 자살을 한다.

이 뉴스는 당시에는 비난거리였겠지만, 영화 속에서 이들의 비련의 도주는 애틋하고, 엘비라 마디간이 배가 고파 들꽃을 따 먹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아리다.

이 영화로 스웨덴 영화를 세계에 알린 보 위더버그 감독은 그 후 변변찮은 영화 몇편을 남긴 후 타계를 했고, 당시 17세였던 여우주인공 비아 데게르마르크는 완성된 이 영화를 보고 더 이상 영화 찍기를 고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TV 드라마 몇편에 출연한 뒤 그만 은막에서 사라지고 만다.

슈풍크님이 잔혹하다고 했지만, 정작 나에게 잔혹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의 가슴을 들뜨게 했던 비련의 이야기가, 이제는 그다지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는 것이다.

심장을 둘러싼 근육들의 경화현상 때문일까?

참고> Elvira Madigan

This Post Has 8 Comments

  1. 슈풍크

    아, 그거야말로 잔혹이군요.
    저역시 처음 보았을 때의 감흥이 조금 사그러든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저는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누구라도 시간이 흐르면 얼마간은 흐려지고 무감해진다는 것.
    그런 걸 확인하고 싶을 때, 또 이영화를 볼 것 같습니다.
    그토록 눈부시고 잔혹한 영화가 있었다는.. 기억만이
    남기를 바랍니다.

    75년의 불란서문화관, 30원짜리 영화,
    열여덟의 꿈없는 까까머리..
    아, 상상하니 이것도 오래된 영화 속 장면 같네요.
    여인님께선 모범생이셨을까요, 반항아셨을까요?
    어느 쪽이라도 잘 어울리시는데요. 하하.

    1. 旅인

      동창들은 절 보고 어용학생이라고 합니다.^^

      같이 영화를 보았던 친구는 절 보고 당시에는 사부라고 했지만, 지금은 영화계에선 알아주는 제작자입니다.

  2. 마가진

    여인의 시선과 음악이 정말 잘 어울리는군요.
    늦은 시간이 여인님 덕에 풍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사랑 따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보다
    더 힘들때가 있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1. 旅인

      저는 마가진님이 세상을 누구보다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마가진님도 때로 힘들어지는 때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심프슨 부인을 사랑했던 윈저공은 영국왕위를 내놓고 결혼했지만, 말년에는 사랑을 위해서 왕위를 내놓은 것을 후회했다고 하더군요.

      사랑이란 믿을 것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3. 저도 저 위의 슈풍크님의 답글처럼..
    75년의 까까머리.. 소년인 여연님을 생각합니다..
    음악 좋습니다. 🙂

    1. 旅인

      그때 나이가 17살, 사랑을 하기엔 충분한 나이였는데 전 왜 시금텅털한 냄새 밖에 나는 것 없는 친구와 저 영화를 멍청하게 본 것일까요?

      크~ 까까머리 때문에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4. 흰돌고래

    귀에 익은 음악이에요:) 제목이 안단테였구나..

    슈풍크님과 여인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영화 내용을 짐작해보지만.. 역시나 직접 보고 느끼는게 제일 좋겠죠? 히히..

    1. 旅인

      참으로 귀에 익지만 곡명을 모르는 음악들이 많지요?
      예전에는 그 곡명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아둥바둥 알고 싶지는 않지만 때론 아는 음악이 나오는데 곡명을 모르면 알았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 것을 보면 아직도 뭔가를 내려놓지 못하는 제가 한심스럽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