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먹은 하루

1.

오후에 창 밖을 본다. 도시에 가득했던 갖가지 빛깔들이 침묵하고 있다. 대기 중에 섞여있는 오후의 낮은 빛 아래에서 도시는 바래고 있다. 이런 오후는 얼마나 조용한가?

이렇게 빛이 바래어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이란…

내린 눈(雪) 탓 만은 아닐 것이다.

2.

때론 삼십년전 혹은 사십년전의 그 시간이 구겨져 바로 어제이거나 한두시간 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거리를 스치던 공기의 냄새마저 느껴진다.

왜 그토록 아름다웠던 젊음에 열광하지 않았으며, 그 찻집에 떠돌던 노래소리나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詩를 읽지 아니했던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어리석었던 대신  그만 나는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 아닐까?

3.

오늘 나의 몸 어느 구석은 해야할 일을 미뤄놓고 하루 쯤을 유예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20100310

This Post Has 4 Comments

  1. 마가진

    가끔 내가 좀 더 어릴 때, 왜 이것을 안해봤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근데 더 겁나는 것은 지금도 이런저런 궁색한 변명으로 하루하루를 어제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죠.

    큰일이네.. ㅡㅜ;;

    1. 旅인

      그러게 말입니다.

      치열하게 사랑한 적도 없고 뻑시게 싸워본 적도 없고 코피나게 공부해본 적도 없으니….

      전 뭐했죠?

  2. 무언가 있지도 않았던 것..이..
    그리워지는 그런 글이네요..

    1. 旅인

      신영복 선생은 그리운 것이 그림이라고 하는데… 서정적…님도 추상화를 한번 그려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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