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날의 잡상

새벽부터 내린 눈이 그치자 저녁이다. 오후 다섯시의 서쪽은 소복히 쌓인 눈으로 밝다. 도시의 도로 위에 늘어섰던 차들은 폭설에 갇히고 간혹 길에 나온 차들은 서행 중이다.

폭설 그리고 마비. 정지된 도시는 고요한 듯하다.

지붕 위에 쌓인 눈들은 일부는 녹으며 고드름이 될 것이고, 또 낮은 겨울 햇살에 서서히 증발하며 반짝일 것이다.

신정 휴일동안 집에서 그냥 보냈다.

베란다에 놓아두었던 산세베리아 잎이 맥없이 무너졌다.

담배연기를 빼내기 위하여 열어둔 베란다의 창문 사이로 스며든 차가운 겨울 공기가 그만 산세베리아 잎맥 사이로 흐르던 수분을 얼어붙게 한 모양이다.

산세베리아의 잎은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한 채, 모로 누웠다.

무너져 내린 잎을 자세히 보면, 얼어붙은 부위가 짙은 색으로 멍들어 있다. 그 부위의 세포막은 결빙으로 터지고 수분이 지나가는 물관은 동맥경화처럼 막혔을 것이다. 그리고 잎의 아래와 위의 생명은 단절되고 꺽여버렸으리라.

널브러진 산세베리아를 보자 처참하고 서글펐다.

회사의 창 밖으로 내려다 보니 건물과 아파트의 마당에 심은 향나무나 소철 등이 폭설을 뒤집어쓰고 하얗다.

저들은 어떤 생의 열기로 이 혹한을 넘기는 것일까? 아니면 가지와 잎 속의 물기를 빼고 단지 메마름 하나로 살아가는 것인가?

살아있는 것들의 열기도, 혹한을 넘기는 겨울나무의 메마른 침묵도, 다 부럽고 존경스럽다.

폭설이 내린 도시의 동천 사이로 새라도 한마리 난다면 이 도시의 정적은 산산조각 날 것 같다.

20100104 오후에…

This Post Has 10 Comments

  1. 善水

    단지 메마름 하나로 살아가는가 하는데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왠지 그냥 기분이 좋네요~ㅎㅎ (??) 때가 되면 열기로, 메마른 침묵으로, 그렇게 다 살아간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그냥 살아있는것이 장하게 생각되었나봐요 하핫!

    눈이 무척 많이 왔나봐요,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1. 旅인

      기상청 발족 이후 최대의 눈이라고 합니다. 거리에 차들도 보이지 않고… 회사 창 밖에는 버스가 간혹 한두대씩 지나갑니다.

      내일은 영하 12도

      선수님은 열기로 살아가고 저는 메마름으로…^^

      학기는 곧 시작하겠지요?

  2. 마가진

    저도 오늘 한 낮에 대로에 차들이 별로 없어 신기하면서도 은근 좋았더랬죠.^^;

    마지막 산세베리아의 글은 현대시조를 읽는 것처럼
    먹향이 느껴집니다.

    1. 旅인

      산세베리아가 굵은 난초처럼 생겨서인가요???

      그러고 보니 어제 하얀 눈밭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윤곽들이 화선지에 그려진 정경같기도 합니다.

  3. 흰돌고래

    아 멋지다.
    저도 나무가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나무를 더 알고싶어요 ♡

    (여인님 학교에서 한자 배우기로 한거 수강인원이 모자라서 취소됐어요. ㅠㅠ 그래서 그냥 혼자 하려구요.. 한자책이 한 권 있긴 한데, ‘삼자경 주해’도 주문했어요. 눈이 많이 와서 늦게 도착할거 같아요. 히히)

    1. 旅인

      요즘 한자를 배우기는 정말 힘듭니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책에 한자가 나왔는데, 요즘은 한자를 배워도 실제 생활에서 한자에 노출될 기회가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삼자경 재미있을 겁니다.

      저도 나무를 알고 싶습니다.

  4. 클리티에

    에구에구, 산세베리아도 따뜻한데 둬야 했는데, 추워서 얼어 죽었나 봐요.

    공기정화 작용 하시려면, 식물 키우기 그러시면 숯을 놓아보셔요. 취향따라 보면 귀엽기도 하더라구요.

    1. 旅인

      가장 문제는 저나 집 사람이나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는데 애지중지 알뜰살뜰 살피고 하는데 영 잼병입니다.

      아무튼 살펴줄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입니다.

      에구 불쌍한 것들…

  5. 쏘울

    안녕하신지요?
    새해도 벌써 일주일을 지나고 있는데,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
    누군가 그러더군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니까 복이 올때 까지 기다려라 하는 듯 보여서 많이 만드세요 라고 한다고 합니다. ㅋㅋ

    한동안 여러가지가 신산 하여 여기저기 기웃 거리지도 않고 일에만 빠져사느라 흔적조차 못 남겼습니다.

    그나저나 여인님은 트윗 않하십니까? ㅎㅎ
    제 트윗 @ScanMAC 입니다.

    1. 旅인

      새해에 복많이 받으십시요. 심천에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거기도 요즘은 몹시 추울 듯 싶습니다.

      서울은 추위와 폭설이 겹쳐 오늘에야 겨우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새해들면서 저도 괜스레 마음만 바쁠 뿐 입니다.

      트윗계정만 만들어놓고 전혀 쓰질 않고 있습니다. 체질이 아닌 모양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