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달다가…

진중권씨의 글에 대한 댓글을 달다가 너무 길어졌기에 이 댓글이라는 것이 일대일 특정한 분에 대한 개인적인 대화가 되겠으나, 이 시대에 대한 제 소소한 생각으로 바라보아도 될 것 같아 댓글에서 여기로 옮깁니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만으로 댓글에서 여기로 옮겨온 점에 대해서는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간혹 이처럼 긴 댓글이 오고 간다는 것은 저로서는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시대가 암울하고 혼돈스럽다고 하여도, 광주항쟁 이후의 성과에 크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광주항쟁 이전의 한국의 인문학과 이후의 그것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변혁이고 단층이 있다는 것을 지금 학생들은 모를 것입니다.

그 변화의 하나는 우리나라에 비판세력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 우리의 인문학이란 설명이지, 비판기능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신예가 없는 노털들의 잔치였기 때문에, 1968년 프랑스 5월 학생운동 이후 피어난 서구의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고 또한 20세기까지 내려오지 못하고, 근대를 간신히 해석하는 정도(헤겔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마르크스는 금만 밟아도 깜빵으로 가는 시대)였으니, 인문학이란 고리타분하여 강단 밖으로 나갈 수 조차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살던 시절의 관념론조차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대학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는 가당찮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훗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 등의 실존주의까지 흘러가긴 했지만, 해석학 등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 통칭하여 탈근대(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유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포스트 모던을 살고 있으면서도 해석하고 비판해야 할 도구가 부재하던 우리나라에 인문학은 자리잡을 수 없었고, 포스트 모던 어쩌고 저쩌고 하면 내용은 공허하고 싸구려인 데, 어떻게 든 포장을 하여 상품의 가치를 높히려는 수작이나 전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물론 그런 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이런 우리나라에 1968년 이후의 서구의 사조를 수입하고 시대의 비판기능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저와 연배가 같거나 저보다 나이가 어린 일단의 신예였습니다. 그들은 1980년 초의 서울역 회군을 놓고 전술적 과오가 무엇인가를 놓고 벌어졌던 무학논쟁으로 부터 현대 한국사회의 구성체에 의문을 갖고 비판하기 시작하여, 전술적인 측면에서 준비론과 투쟁론으로 양분하여 헤게모니 투쟁양상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강단에서 제공되는 이론으로는 부족함을 절감하고 서구로부터 좌파학문과 함께 새로운 사상을 수입하여 이 시대가 어떤 것인지를 첨예하게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 뿐 아니라, 현재 학계에 유입되고 인문학의 새로운 정초를 세운 이들의 공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들의 고단한 작업이 지금의 한류라는 큰 흐름 또한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변듣보나 뉴라이트를 몹시 사랑하며, 그들의 노고에 치하를 던집니다.

예전의 우리나라에는 듣보잡이나 올드 라이트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좌익은 있어도 우익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빨갱이라고 누군가를 매도하지만, 결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는 법 없는, 그래서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 가라앉은 그 무엇이며, 기괴망측한 세력이었습니다. 그 세력의 범위를 차마 가늠할 수 없고, 그들이 가진 이념과 노선 또한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뉴라이트가 나오고, 변희재가 나오면서 모호하던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 실체를 요약하자면 듣도 보도 못한 잡놈들이라는 것이죠.

이들은 우리나라의 수구보수의 좌표가 어디 있으며, 얼마나 황폐하고 몰염치한 사고 속에 빠져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진보진영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우리 국어의 난해함과 단어의 남오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념적 정당성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집권세력에 의해 의문시되면서 국가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

애국충정으로 가득하여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이 문장은…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국가보안법의 존치여부, 양심적 병역거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문제들이 논의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청산(친일/민간인학살/군사독재)을 해야겠다고 천명하면서, 수구세력들에게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골방에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은인자중 음해의 칼날을 갈기에는 늦었다며 보수언론의 지원을 받아 2004년 가을, 뉴라이트는 발족하면서 위의 성명을 발표합니다.

여기의 집권세력은 정당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참여정부를 말할 것입니다. 이들은 이념적 정당성은 거론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과거청산에 대한 요구라는 현실적 정당성을 무시합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거론하지만, 그것이 헌법 제1조 1항에 근거한 것임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입헌 민주주의보다 문맥 상으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돈>이 헌법에 우선하며 초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1919년 3월 1일로 부터 시작된다고 헌법 전문에 나와 있으며, 그것은 이승만에서 박정희 독재정권의 걸레공화국의 헌법 전문에도 그리 못박혀 있음에도, 이들은 참여정부가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인(의문시)한다고 말합니다. 후일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두자고 하는 이들의 주장에서 그 의미가 밝혀지는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야기하지 않고 건국의 정통성을 이야기하는 시기를 바로 1945년 8월 15일 이후로 제한합니다. 그들은 1948년 8월 15일까지, 아니 그 이후 6.25를 지나 현재까지를 이야기합니다.

광복절 이전을 Delete시킴으로써 친일행위의 근거를 말살하고, 1945년에서 1948년까지 건국기간동안 좌익세력을 섬멸하고, 6.25동란에서 국가를 수호하고,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자본주의 국가를 세운 것을 정통이라고 강변합니다. 건국의 정통성이 자신들에게 있는 만큼, 건국 이전의 친일행위는 말할 것이 없고, 6.25 때의 민간인 학살, 군사독재 시의 치부는 덮어져야 하며, 용공분자를 색출 처단함으로써 국기를 수호하는데, 의당 필요한 국가보안법 등은 존치되어야 하며, 자신들이 이만큼 나라를 만들었으니, 용서를 구하거나 화해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잘못은 덮어지고 자신들의 공은 뚜렷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신보수라고 하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우익이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직도 건국시기에 좌익을 처단했던 아련한 추억 속을 더듬으며, 자신들을 우익이라고 노정함으로써, 자신들에 반하는 세력을 좌익으로 매도하려는 교활한 문법 속에서 뉴라이트라는 단어를 발굴해냅니다.

이러니 국어를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명박 정부 초기에 오렌지와 어린쥐 문제를 놓고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한 것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국어시간을 없애버리는 것이 언어의 혼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뉴라이트 발족 선언이 5년이 지났지만, 문제들은 고스란히 남아 2010년으로 넘어가고 새해에도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신영복, 홍세화씨등의 선배는 물론, 유시민, 진중권, 한홍구, 김규황 그리고 과문한 탓에 알지 못하는 무수한 진보학자들에게 저는 빚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너무 길어졌네요.

This Post Has 4 Comments

  1. 플로라

    공감하기 누르는 곳은 없나요???

    1. 旅인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제 글에는 공감할 구석이 많은 게 아니니까요.

  2. 클리티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 )

    1. 旅인

      한홍구씨의 강의에도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뉴라이트 선언문에 저와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 문구의 의미들이 지금 이루어지는 진행형이란 점이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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