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책

읽으시기 전에…

이 글은 어떤 면에서 주역개론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주역에 관심이 없으신 분께는 지겹고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글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우연하게 오래 전에 꾸었던 꿈에서 보았던 부호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부호의 일부를 찾아냈고, 그 부호를 통하여 易의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위치한 글이기에, 읽으시기 전에 이 글과 관련된 <무너진 도서관>이라는 포스트를 읽는다면, 지겨움이 약간 덜어지고 주역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와 함께 제가 꾸었던 오래된 꿈의 실체가 조금은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Yi/Letter

1. 꿈, 무너진 도서관 혹은 무의미의 도서관

그 꿈에서 본 아래 위로 각 8字, 16字의 부호는, 주역의 팔괘(八卦)의 중괘(重卦: 괘가 상하로 2괘가 놓인 상태)와 유사한 것 같다. 주역에는 이른바 진리라고 하는 것은 없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진리가 있다고 하여도,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꿈을 꿀 당시 만해도, 세상에는 진리가 있고,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면 낮은 차원의 진리와 거짓이 궁극적인 차원에 흡수되면서 현상계의 모든 것이 설명되고 이해되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역동마저 진리의 질서 속에서 자리잡고 해석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십대 후반이었던 그 시절에는 잠에 들기만 하면 꿈을 꾸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나는, 그 전까지만 해도 호오의 감정에 따라 자의적으로 꾸밀 수 있었던 인간관계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직장이라는 조직 속에 내가 그냥 편입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직면했다. 그럼에도 내가 사회나 직장이라는 거대한 장기판 위에 놓인 일개 말에 불과하며, 일개 쫄은 조직에서 요구하는 규칙을 받아들이고 댓가로 봉급을 받아 살아가야 한다는 숙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출근하고, 취향과 무관한 무의미한 일들을 반복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계속되리라는 사실은 늘 우울했다.

억압된 가슴 때문인지 날이면 날마다 꿈을 꾸었다. 하늘을 나는 꿈, 슬프지만 입이 없는 관계로 울 수가 없어서 숨이 막혀 깨어날 수 밖에 없는 꿈, 큰 홍수가 났는데 태양을 건져내 하늘에 올려주는 꿈, 벌거벗은 아이에게 덮어주기 위하여 이불을 들고 아이의 뒤를 쫓아 하염없이 겨울길을 걷던 꿈, 빛을 따라가다 그녀를 만나 포옹을 하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꿈, 무수한 꿈들이 나의 베개 위를 스쳐 지나갔다.

16字에 대한 꿈을 꾼 것도 그때였다.

가장 행복했던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꿈이지만, 깨어나면 현실과 꿈이라는 극명한 차이 때문에 슬펐다. 반면 16字에 대한 꿈은, 꿈 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부호들이 담고 있는 의미 속에 세상을 모두 포괄할 진리라는 것이 있다고, 꿈 속에서 현실보다 더 명료하게 인식했다.

16字 속에 우주의 모든 지식이 응축되어 있는 그 꿈은 신비로웠다. 방 안의 풍경과 책들의 속삭임과 책에 적힌 글들, 그것들은 현실에서 부딪는 견고한 개념과 지식과 같이 견고하고 부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호흡을 하고 있었으며 거대한 질서와 시간과 공간, 명암 및 안과 밖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함께 뒤섞이고 현전하는 그런 것이었다.

모든 풍경과 질서가 사라지고 눈 앞에 남은 단 16字.

그것을 마주하고 우주에 편만한 지식 전부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내가 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궁극적인 진리나 진실마저도 꿈과 함께 조만간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꿈 속에 갇혀있는 궁극적인 진리를 꺼내, 현실이라는 세계로 옮겨놓고 세상을 희롱하던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짧은 꿈 속에서 16字를 외우기 위하여, 나는 300년이라는 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부호들을 외울 수 없었다.

그 부호들은 분명 주역의 팔괘는 아니다. 꿈 속에서는 한자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한자도 아닌 상형문자였고, 해독할 수 없는 질서를 갖고 있는 단순한 기호였다.

2. 변화의 책

주역의 팔괘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냐면, 300년동안 외우려고 했지만 외우지 못했다는 것은, 글자가 표현하는 의미는 고착된 반면, 팔괘의 의미는 고착되지 않고 대괘와 위치에 따라 의미가 부단하게 변화하고 한 부호마다 다양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의 易의 괘에 있어서 陰(∙∙)陽(–)의 부호는 지금과 다르다고 한다. 주역 이전에 연산역(連山易)과 귀장역(歸藏易)에 쓰인 부호는 방점(•)과 꺽쇠(ㅅ)와 같은 전혀 다른 부호가 쓰여졌다고 한다. 또한 64괘의 배열도 달라 주역에 있어서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위천(乾爲天)에서 시작하지만, 귀장역에서는 땅을 상징하는 곤위지(坤爲地), 연산역에서는 산을 상징하는 간위산(艮爲山)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본 부호는 주역 이전의 고대의 팔괘의 부호이거나, 아니면 미래에 있을 부호일수도 있다. 그리고 부호의 배열의 순서 또한 다를 수 있다.

귀장역이거나 연산역 혹은 주역이라고 해도 다 점책이다. 부단하게 변화하는 자연세계를 접하면서 인간에게 미구에 닥쳐올 것들이 무엇인가를, 무당들이 서죽을 늘어놓고 물은 점사(占辭: 점을 쳐서 얻어낸 말)들의 모음집일 것이다. 동물의 희생제가 있었던 고대의 귀장역이나 연산역에서는 서죽보다 거북점을 치거나 뼈조각에 글을 써서 점괘를 얻었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사들은 전쟁, 입시, 송사, 결혼 등 알 수 없는 앞 날을 예단해보고자 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잠정적인 시간동안 유효할 뿐이며, 상황이 종료되고 시간이 지나면 효력은 사라진다. 그러니 진리라고 할 보편성은 결국 획득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주역 속에 진리라는 것은 당초 부터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변화의 책(주역)을 놓고 동양에서는 진리를 찾기 보다, 현상세계의 생장소식(생성 변화의 추이)을 살펴보고,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어떻게 적절한 삶(관계)을 이루어 갈 것인가에 골머리를 썩여왔던 것이다.

변화의 질서 속에 궁극적인 진리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변화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고, 주역이 우주와 인간사의 질서를 괘와 상 안에 포괄적으로 습합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지속되어 왔다. 이런 질서를 수적으로 규명하고자 상수학으로 발전되어 왔고, 상수학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괘의 질서 뿐이지, 의미는 아니라며 상수학에 반발하여 왕필에 의한 의리역이 발전하기도 했다.

원만한 삶은 역동적인 자연과 인간 간의 관계 속에 놓여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위상(位相)과 변화(卦變) 그리고 대칭된 관계(對卦)를 바라보며 적절하게 대응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맞이하는 결과는 길흉회린(吉凶悔吝)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행동방식에 허물이 있거나(咎) 허물이 없는 것(无咎) 밖에 없다.

길흉회린의 도표…
Good&Bad/diagram

吉 : 행운, 행복, 善, 得
凶 : 재난, 불행, 惡, 失
悔 : 뉘우치고 恨이 되는 것
吝 : 인색하고 곤궁하게 되는 것

易을 바탕으로 한 동양적 사유는, “내가 저 사람에게 잘하면,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서구의 인과론적인 사유보다, “아무리 저 사람에게 잘해도, 저 사람의 위치는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상황(위치)이 아니”라는 관계론적인 사유가 발달된다. 보편적인 관념에 따라 행동하기 보다, 자신과 상대편이 처한 위치를 가늠하며, 특수한 상황 속에서 처신을 해 나가야 한다는 상대성 원리에 입각한 복합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물론 하늘의 사덕(四德)인 원형이정을 본 받은 인예의지(四端)에 입각하여 처신을 한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라는 보편적인 사유는 있지만, 늘 타당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상황은  늘 변하며, 대응 또한 변해야 한다는 것이 易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3. 변화의 책을 읽는 방식

나이브한 주역은 64개의 괘사와 384개의 효사로 되어있는 단순한 것이었을 것이다. 각괘나 각효에 붙는 문장 또한 몹시 짧아서 통상 10자 이내다. 그러니 원초적인 주역은 글자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사천오백자[(64+384)X10자] 이내일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이 삼천자이니 분량 상으로 1.5배 정도인 부피가 얼만 안되는 책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주역 본문에 주석과 같은 단(彖)과 상(象)이 붙고, 건, 곤 두괘가 주역의 머릿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문언(文言)이 붙는다. 또 부록과 같이 계사, 서괘, 설괘, 잡괘 등이 붙어 꽤 분량이 늘어났지만, 이 변화의 책은 그 분량보다 읽는 방식 때문에 중중무진(重重無盡), 끝이 없다.

보르헤스는 불교의 삼천대천세계와 삼세(과거 현재 미래)가 부처님이 깨달음을 설하는 한 지점에 응축되어 있는 화엄세계를 ‘알레프(א)’라는 소설로 표현한 것처럼,’모래의 책’을 쓰면서 주역을 염두에 두었을 지도 모른다.

주역은 무극에서 태극, 양의, 사상, 팔괘, 육십사괘로 변천해 나간다. 이 변천에 나타난 부호들에 다양한 의미를 달고, 그 상징을 통하여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살핀다.

이러한 과정에 신비화되면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타난다. 하도는 복희씨가 황하에 출현한 용마(龍馬)의 등에서 본 55개의 점으로 이를 바탕으로 팔괘를 만들었다고 하며, 낙서는 우왕의 치수 때에 낙수에서 신귀(神龜)의 등에 있는 45개의 점을 보고 홍범구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河圖 洛書…
Hado&Lackseo/diagram

이런 신비화와는 달리 하도∙낙서는 전설시대를 지나 주역이 만들어지고 천년이 지난 전한말에서 후한초 사이에 만들어진 도서라고 한다.

하도는 음수 2→4→6→8로 움직이며, 양수 1→3→7→9로 움직이면 중앙을 중심으로 태극문양의 움직임이 형성된다. 하지만 낙서의 움직임은 보다 복합적이다.

낙서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 기술했지만, 신귀의 등에 나타난 점을 숫자로 배열하면 가로 세로 대각선의 숫자의 합이 모두 15가 되는 마방진이 된다.

洛書에 대입한 八卦…

낙서의 숫자 배치

천문, 건축, 사신, 오행을 대입

이 낙서에 입각한 배치는 동아시아의 문화코드로 자리한다.(자세한 내용은 마방진 洛書에)

모든 건물과 축성의 기본이 된다. 우리 도성의 사대문의 경우 천지의 4德인 원형이정에 맞춘 인간의 4端인 인예의지를 배치하여 문의 이름을 짖고 계절과 방위에 맞춰 설치한다.

동양의 오방색(五方色) 또한 여기에 준하는 데, 태왕사신기의 四神, 즉 청룡은 봄을 상징하며 오행은 나무로 그 색은 푸르다. 주작은 여름을 상징하며 오행은 불로 그 색은 붉다. 백호는 가을을 상징하며 오행은 쇠로 그 색은 하얗다. 현무는 겨울을 상징하며 오행은 물로 그 색은 검다. 중앙은 사신을 제어하고 사계절의 흐름을 주재하며, 오행은 흙으로 그 색은 누렇다.

이러한 오행과의 상관관계 상 이조시대에 기우제는 물을 상징하는 북문, 숙정문 옆에서 치뤄졌다고 한다.

우주론에서는 태양은 양의 정기로 1→3→9→7 양수의 방향으로 돌고, 달은 음의 정기로 2→4→8→6 음수의 방향으로 돈다고 보고 배치하였다.

4. 배치, 들뤼즈의 사유

이런 질서가 진리라고 볼 수는 없다. 서구에서도 진리란 언어규칙에 따른 것일 뿐, 더 이상은 아니라고 한다. 니체는 “진리란 반박되지 않는 그러한 종류의 오류”라고 하며, 언어라는 기표는 기의와 분리되어 있으며, 데리다는 기표가 기의를 찾기 위하여 기표와 기표 사이로 무한히 유랑한다고 차연(差延: differance)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진리는 즉 문법적 환상이라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안다는 것은 안다는 믿음이고, 진리란 확실하다는 믿음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른바 존재나 진리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은 Be 동사에 입각한다. 그러나 사건이라는 것은 A에서 B로 진행하는 Become 동사에 입각한다. 음양오행 중 오행의 行은 목 화 토 금 수의 5원소라는 존재(be)보다, 나무에서 불에 나며, 불이 타고 나면 재(흙)가 생기며, 흙에서 쇠가 나오고, 쇠를 녹이면 물이 되고, 물에서 나무가 자란다는 생성(become)에 집중한다.

특히 하나의 사물이 이웃항과 접속하면 어떤 의미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사건(Event)이라고 한다. 하나의 공이 네트와 접속하면 배구공이 되고, 바스켓과 접속하면 농구공이 된다.

이런 생성(Become)과 사건(Event)을 예단하고 사건에 대처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易이다.

괘의 배합, 생성과 사건…

※ 여기에서 본괘 지산겸의 상하괘가 바뀐 것이 착종괘 산지박이며, 본괘가 뒤집어진 것이 도전괘 뇌지예이며, 본괘 지산겸의 양효는 음효로 음효는 양효로 바뀐 것이 배합괘 천택리다.

本卦(地山謙)
卦辭: 겸(謙)은 형통하다. 군자에게 끝이 있으리라.
象: 땅의 가운데 산이 있는 것이 겸이다. 군자는 많은 것을 덜고 적은 것을 더하고, 물건을 재어서 공평하게 베푼다.
彖: 귀신은 가득한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준다. 사람도 가득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錯綜卦(山地剝)
卦辭: 박은 가는 곳마다 이롭지 않다.
象: 산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이다. 위로서 아래를 두텁게 하고 집을 편안케 한다.
彖: 박은 긁는다는 뚯이다. 아래의 5개의 음효가 양효를 침범하는 뜻이다.

倒轉卦(雷地豫)
卦辭: 예는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움직이는데 이롭다.
象: 번개가 치고 땅이 떠는 것이 예다. 선왕이 이로써 음악을 짓고 덕을 높혔다. 신에게 크게 제사지내 조상에게 절하고 고한다.
彖: 순한 것(地=坤:순하다)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雷=震:움직이다)이다. 예는 순한 것을 가지고 움직인다. 천지도 그렇게 움직이거늘, 하물며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움직이는 것에 있어서랴?

配合卦(天澤履)
卦辭: 범의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하다.
象: 위에는 하늘, 아래는 못(호수)가 리다. 군자는 이로써 아래와 위를 살피고, 백성의 뜻을 정한다.
彖: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밟는 것이다. 하지만 즐거이(澤=兌:기쁘다) 강(天=乾:굳세다)에 응하는 까닭에 범의 꼬리를 밟아도 물지 않는다.

낙서의 질서와 괘의 설명도 주어진 기표(팔괘 혹은 숫자) 위에 임의의 기의(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이며, 질서에 정합성이 있다고 진리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규칙과 질서 속에 자신과 사물을 구속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이며, 자연에서 이탈하는 인위이며, 인간의 사유인 것이다.

여기에서 서양의 사고는 인과론 즉, 언어의 인접성(결합관계)을 중심으로 사고하며, 동양의 사고는 유사성(계열관계)에 치중한다. 문법적 결합관계는 언어의 Logic에 무게를 두게 되고, 각 단어와 기호 사이의 유사성에 치중하다보면, 사물과 사물 사이의 비교나 역학관계 등에 중시하게 된다.

주역에서는 Logic을 찾기 어렵고, 각 괘와 괘 사이의 비교, 관계 등의 사유가 가득하다.

이제 주역을 읽는 법을 살펴보자,

점을 쳐서 천화동인괘가 나왔고, 5효가 동효(動爻)라면, 일단은 본괘는 천화동인, 동효가 변한 지괘는 이위화이다.

여기에서 본괘(천화동인)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현재 처해있는 상황으로 점의 체(體)에 해당한다. 그리고 지괘(이위화)는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노력과 주변환경에 따라 앞으로 진행되어갈 과정(用)을 의미한다.

현재의 상황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하여,

◎ 도전괘 : 본괘를 아래 위로 뒤집어 엎은 괘(화천대유)로 제3자의 눈으로 본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거나
◎ 착종괘 : 본괘의 상하괘를 바꾼 괘(여기도 화천대유)로 위와 아래간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 상황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보거나
◎ 배합괘 : 본괘의 음양을 반대로 한 괘(지수사)로 드러난 상황(지수사)과 내재된 상황(본괘인 천화동인)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 호괘 : 본괘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아래의 초효와 위의 상효를 없애고, 2,3,4 효를 하괘로 3,4,5를 상괘로 늘어놓아 본괘의 숨어있는 성격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직선적이고 단순한 인과론적 사고보다, 다양한 시점(視點)에서 포괄적인 시각으로 상황과 관계를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띄고 있다.

그래서 주역은 한 괘가 나왔을 때, 책의 이쪽 저쪽을 살펴보아야 하는 책이며, 책의 끝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本卦와 對卦괘들…
ChangeOfGwae/diagram

각 효의 위상은 득중, 정위, 응비 등의 효와 효간의 역학관계를 보는 것이 있다.

卦에서 爻의 位相…
ValueOfPosition/diagram

대충 위상에 대한 내용은 주역의 효사에 나온다. 하지만 효사를 보다 잘 해석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위상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 정위: 초효, 삼효, 오효는 기수의 자리다. 그래서 양효가 자리를 잡으면 제자리를 잡았다(正位)고 본다. 이효, 사효, 육효의 경우는 우수의 자리로 음효가 자리를 잡으면 좋다고 본다.
◎ 득중(중정): 상괘와 하괘의 가운데(오효와 이효)는 괘의 가운데이자 중심으로 그 자리에 효가 제자리를 잡으면 득중(中正)했다고 좋게 본다.
◎ 응비: 상하 괘의 사이에 효가 음양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 응(應: 서로 화합함)으로 서로 사이가 좋고, 음음, 양양으로 마주하면 서로 견주며 으르렁댄다고 비(比: 서로 견줌)라고 본다.

이런 정위, 응, 비는 줄을 잘 서야 크게 고생 안하고, 조직에서는 사람을 잘 만나야 괴롭지 않다는 동양적인 사고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림에 나오는 수화기제는 주역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나오는 괘로 주역에서 위상으로 볼 때, 가장 좋은 괘다. 하지만 주역에서는 별로 안좋은 괘로 본다. 모든 자리가 안정되고 효 사이의 관계도 돈독하다. 더 바랄 것 없는 상태로, 정체되어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래서 변화와 순환하는 주역의 이상에 반하는 괘로 본다.

5. 다시 꿈으로

화이트헤드(백수광부?)가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다면, “동아시아의 3000년 철학의 모두 주역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도올은 말한다. 이만큼 주역은 동양의 모든 문화, 예술, 의학, 과학, 철학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데아나 주역의 질서나 다 진리가 있거나 그에 다가가겠다는 몽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데올로기와 권력과 힘이 개입된다.

어느 날 꿈에서 나는 이와 같은 몽상을 만났고, 그 꿈에서 우주의 모든 지식이 기록되어 있다는 아카샤(आकाश)가 16字로 응축된 책을 만났던 것이다.

꿈 속 그 방 안에서 본 광경보다, 경이적인 것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와 진리, 그리고 질서와 모든 것이 16字에 함장될 수 있다는 그 사실이었다.

그 꿈을 꾼 이후 오랫동안 그 꿈을 잊지 못하고, 내가 보았던 16字를 기억해내려고 했다.

최근에야 그 부호들의 일부가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지만 일부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억해 낸 부호들은 다음과 같다.

NewGwae/diagram

16字 중 일부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16字의 부호 중 7字를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상하 각 8字라면 1字가 더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꿈의 진리는 어그러졌지만, 나는 이 부호들로 의미가 없어서 더 큰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방대한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

그러한 질서는 바로 El Libro de Arena가 될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쪽이 나타나고 , 읽은 쪽은 사라져버리는 책, 즉 모래의 책 말이다.

This Post Has 4 Comments

  1. 위소보루

    이번에 출장가면서 알렙을 가져가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는데 그 글을 읽다가 여인님의 이 글을 보다보니 좀 더 구조가 이해가 되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네요 ㅎ

    가뜩이나 형이상학 적인 것들도 어려운데 주역은 그것들을 초월해버리고는 아무것도 아닌 척 해서 이해하기가 더 아리까리하고 보기가 어려운것 같습니다 ㅠ.ㅠ

    1. 旅인

      알렙이 들어있는 책은 좀더 보르헤스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책이죠?

      주역은 형이상학이나 철학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생성되기 이전의 사유이기 때문에 사유의 흐름을 주재하는 메타적인 것이 없어서일까요?

      주역의 법칙성이나 질서 따위도 주역이 만들어진 이후 탐구된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낙서에 팔괘를 배속한 것도 당위성이나 필연성보다는 자의적인 것 같습니다.

  2. 연학

    잘 읽었습니다. 🙂

    1. 旅인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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